[손창규의 과학으로 읽는 한의학] 두뇌와 대화를 한다

손창규 대전대 한의학과 교수.

한의학에서 인제의 장기를 크게 장부(臟腑)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음의 기관에 속하는 장(臟)과 양의 장기에 속하는 부(腑)를 합한 것이다, 장(臟)에 속하는 것은 간, 심장, 비장, 폐, 신장과 같은 실질장기로, 이들은 오장(五臟)이라 하며 속이 동일한 조직으로 꽉 차있는 기관들이다. 부(腑)에 속하는 것은 담낭, 위, 소장, 대장, 방광 등처럼 속이 비어있으면서 채웠다가 비우는 일을 반복하는 기관들이다. 일반적으로 이들 신체 장기들을 오장육부(五臟六腑)라고 지칭한다. 여기서 음의 장기인 오장(五臟)에 속하는 기관들은 몸의 깊은 곳에 위치하면서 생명 유지에 절대적이어서 잠시라도 없으면 목숨을 잃는다. 반면에 육부(六腑) 속하는 기관들은 양의 장기로서 상대적으로 인체의 외부에 위치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없어도 생명을 유지할 수는 있다.

혹 독자들은 우리 몸의 정 중앙을 입에서부터 항문까지 연결하는 위와 소장 및 대장과 같은 소화관들이 상대적으로 몸의 외부에 위치한다는 것에 의아해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구슬에 실을 매어서 입으로 삼키면 입에서 항문까지 약 9m정도의 길이가 밖과 연결되었다는 것을 연상할 수 있다. 즉 밖을 감싸고 있는 피부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세군들이 살고 있는데, 피부와 장관을 비롯하여 우리 몸에 거주하고 있는 미생물의 숫자는 대략 사람 세포수의 약 3배에 해당하는 180조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학자들은 300~1000여 종의 미생물들이 있으며 70kg 정도의 성인에서 살고 있는 세균들을 다 모으면 약 0.2kg이나 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우리 몸에 살고 있는 이러한 미생물들을 총칭하여 미생물총이라 한다. 이러한 미생물총의 약 90% 이상이 대장에 존재하는데, 따라서 우리가 매일 보는 대변에는 약 20조 정도의 미생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사람의 장내미생물들은 개인에 따라서 많은 차이가 있는데, 엄마의 장내미생물과 유전자, 음식섭취 및 환경에 의하여 결정된다. 최근의 많은 연구에서 장내미생물들의 상태가 질병의 예방이나 혹은 치료에도 중요함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특히, 당뇨병, 심장병, 고혈압, 비만과 같은 대사성 질환을 비롯하여 알러지성 질환, 만성 간질환이나 신장질환, 대장암 및 퇴행성 뇌질환의 발생에도 관여하는 것이 알려졌다. 심지어는 이들 미생물들이 그 사람의 식사와 기호품을 선택하게 한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예로, 어떤 사람이 갑자기 고기가 먹고 싶다고 느끼는 것은, 사실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장에 있는 미생물들이 사람에게 그렇게 유도한다는 것이다. 

장내미생물은 우리의 건강에 어떻게 이런 많은 영향들을 끼치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현재 생명과학계에 가장 뜨거운 이슈이다. 그것을 설명하는 방법이 장-장내미생물-뇌의 연결 축(Gut-Microbiota-Brain Axis) 이론이다. 그동안에 장과 뇌와의 연관성은 다양하게 알려져 있었는데, 매우 흥미롭게도 장내미생물종이 이들을 연결하는 중매자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장내미생물들이 면역이나 신경호르몬 및 신경자체에 변화를 준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2017년에 3대 생명과학지 중의 하나인 “Cell“지는 흥미로운 논문을 실었는데, 퇴행성 뇌질환 중의 하나로 운동장애가 생기는 파킨슨병이 장에서 시작되는 병일 수 있다는 동물실험 결과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 연구자들은 파킨슨병 모델 쥐를 이용하여 장내미생물을 없앤 '무균 쥐'보다 장내미생물을 지닌 '보통 쥐'에서 심한 파킨슨병이 생기는 것을 관찰하였다. 또한 '무균 쥐'에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장내균을 이식하였더니 건강한 사람의 장내균을 이식받은 쥐보다 심한 증상을 나타내었다. 

건강을 위해서는 우리의 몸에 함께 살고 있는 미생물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건강한 장내미생물 환경의 안착은 신생아부터 영향을 크게 받는 것이 알려지면서 아주 어린 시절의 항생제 남용에 대한 부정적인 연구자들의 조언이 있다. 한의학에서 복부의 위장관은 태어난 후의 가장 중요한 근본(後天之本)이라 하여 질병치료의 중심으로 삼는데, 많은 한약처방들이 장내미생물총을 건강한 패턴으로 바꾼다는 연구결과들이 보고되고 있다. 약물의 효능을 혈액으로 흡수되어 병소에 도달하는 약물의 농도 중심으로 설명하는 현대 약물학에 새로운 이론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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