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학호남진흥원’이 광주광역시에 문을 열었다. 호남 지역에 산재해 있는 각종 역사 자료와 문헌 등을 발굴하고 연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미 1995년에는 경북 안동에 이른바 영남 유교문화권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한국학진흥원’이 생겼다. 한국학호남진흥원은 안동의 한국학진흥원과 같은 취지로 호남에 설립된 한국학 연구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학연구원’은 소재지가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기관의 명칭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한국학연구 기관’이란 의미가 드러난다. 과거 영남유학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학이었다는 퇴계 후학들의 자존심이다. 영남 유학자들이 남긴 학문적 성취를 발굴하고, 이를 번역해 내는 일을 한다.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일도 한다.

사단칠정(四端七情)을 놓고 퇴계와 논변을 벌인 고봉 기대승은 호남인이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중에 학문을 불태운 곳도 호남이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이수광이 ‘지봉유설’에서 “근래의 시인은 대부분 호남에서 나왔다”고 한 말까지 인용하며 과거 호남 인재의 풍부함을 강조한다. 한국학호남진흥원은 호남 선조들이 남긴 문학적 성취를 발굴 연구하면서 전문가들을 양성하게 된다.

안동의 한국학진흥원은 한 해 예산 규모가 200억원 대가 넘는다. 그 가운데 인건비 등 운영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20% 안팎이다. 40억 원 정도는 경북도가 대주고 나머지 대부분은 용역비 형식으로 정부 지원을 받는다. 광주의 한국학호남진흥원도 일단 운영비에선 안동의 절반 정도로 시작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안동과 같은 모델이다. 양 기관 모두 기본적으로 정부 재원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같다.

선조들의 학문적 성취로 따지자면 충청도도 빠지지 않는다. 이이-김장생-송시열로 이어지는 기호학파의 근거지는 충청이다. 그런데 충청의 선조들은 아직 영호남과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충남도와 논산시가 논산에 ‘충청유교문화원’을 추진하고 있으나 기관 성격이 영호남과는 다르다. 안동의 한국학진흥원과 광주의 한국학호남진흥원은 정부가 허가한 지자체 출연기관이지만 충청유교문화원은 정부 허가가 필요없는 단순한 종교문화시설에 불과하다.

충남도는 앞으로 정부 허가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보이고는 있으나 허가를 받아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광주와 전남도와 힘을 합쳐 10년 노력 끝에 작년 하반기에 허가를 받아냈다. 연구 대상과 연구 인력 등의 조건을 따져서 생산성이 있다고 판단해야 허가를 해주기 때문이다. 안동은 영남정권 덕을 크게 봤고 광주도 작년 호남정권(문재인 정권) 덕을 본 셈이다. 안동의 국학진흥원이나 한국학호남진흥원처럼 되지 않는다면 충청유교문화원은 한낱 관광시설에 그칠 것이다.

전주 한옥마을 안에는 한국고전번역원 전주분원이 있다. 고전번역원은 조선왕조실록을 낸 민족문화추진위원회가 정부 기관으로 바뀌면서 새로 얻은 이름이다. 송하진 전북지사가 전주시장 때 지금의 한옥마을 개발하면서 유치에 성공했다. 전주분원은 시민들을 위한 강좌를 연중 개최한다. 고전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은 무료로 들을 수 있다. 전주 시민들은 전주시장의 덕이라고 칭송한다. 충청 주민들은 이런 혜택을 못 보고 있다.

대전에서도 일부 인사들이 고전번역원 분원 유치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다. 한때 충남대 교수가 유치를 위해 뛰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정치인 가운데는 김칠환 전국회의원이 현직 의원 때 관심을 가졌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전 충남 시도지사 중에는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얘기는 없다. 김 전 의원은 “한때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으나, 누구보다 시도지사 등 자치단체장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되지 않는 일이라는 점을 알았다”고 했다. 충청도는 자기 선조를 모시는 데조차 영호남에 뒤지고 있는 꼴이다. 이번 선거에선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는 후보라도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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