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민의 정치레이더 20] 자만은 곧 오만을 부른다

‘언더도그(Underdog)’효과란 직역하면 ‘깔려 있는 개’라는 뜻입니다.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약세에 있는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게 유권자들의 동정심이 작용해 지지가 쏠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될 사람을 밀어주자’는 식으로 우세한 정당과 후보에게 지지가 더 몰리는 ‘밴드왜건(Bandwagon)’과는 반대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6.13지방선거가 한 달도 안 남았습니다. 판세는 더불어민주당에 기울었다는 얘기가 많이 들립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를 보나, 민주당 정당 지지율로 보나, 각종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야당은 맘 편히 깃발 꽂을 데가 없어 보입니다.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여파가 가시지 않은 모양입니다. MB(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구속된 마당에 지난 10여년 정권을 쥐락펴락했던 분들은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시간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야당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스러지고 말까요? 10년 가까이 정권을 잡았는데 켜켜이 쌓아둔 ‘내공’이 없을까요? 이순신 장군도 열두 척의 배로 백 척이 넘는 왜군을 물리쳤으니,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싸운다면 이길 확률이 아주 없는 건 아닐 겁니다.

시간의 흐름을 굳이 임진왜란 당시로 거슬러가지 않더라도 정치적 ‘언더도그’ 효과는 빈번했습니다. 2010년 이후 각각 두 번씩 치러진 총선과 지방선거를 보면요. 선거 직전까지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선두를 달렸던 정당이 모두 졌습니다.

가장 최근이었던 2016년 총선을 살펴볼게요. 역대 선거 중에서 여론조사가 ‘대(大) 망신’을 당한 선거였지요. 대부분 여론조사 결과 여당인 새누리당의 과반 확보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참패를 예상했습니다. 야권이 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열하면서 야권 표가 갈릴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결과는 어땠습니까. 민주당이 123석을 차지하며 새누리당(122석)을 근소한 차이로 이기고 원내 1당이 됐습니다. 국민의당(38석)도 선전했습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옥새 들고 나르샤’ 기억하나요. 집권 여당이던 새누리당은 지지율 고공행진에 도취해 자만과 오만으로 점철돼 있었습니다. 친박(친 박근혜)으로 대표되는 인사들의 전략공천이 서슴없이 이루어졌습니다. 친박과 비박(비 박근혜)이 ‘박(朴)’ 터지게 싸웠습니다. 공천파동은 결국 새누리당에 압승이 아닌 뒤통수를 치고 말았지요.

하나 더 볼까요. 2014년 지방선거. 선거 일주일 전만해도 여당인 새누리당 정당지지율은 새정치민주연합(현재 민주당)을 크게 앞섰습니다. 하지만 광역단체 17곳 중 9:8로 새정치민주연합이 새누리당을 이겼습니다. 당시 새누리당은 세월호 프레임에 갇혀 있었지요.

수도권 시·도지사 3곳 가운데 인천과 경기 두 곳에서 이겼지만, 지방선거의 상징인 서울시장 선거에서 완패했습니다. 충청권에서도 사상 최초로 야당인 민주당이 충청권 4곳 광역단체장 모두 싹쓸이했지요.

모처럼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고, 1년이 지났습니다. 과연 민주당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가고 있을까요?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에 편승해 묻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지금 야당의 주장대로 과거 새누리당이 ‘박근혜’를 앞세워 정권을 주물렀던 것처럼 민주당도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하는 건 아닐까요. 박근혜 새누리당처럼 민주당도 문재인에만 의존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민주당의 ‘원팀(ONE-TEAM)은 문 대통령의 ’원(1) 팀’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옵니다.

국정원 댓글 조작사건이나 드루킹 댓글 조작사건이나, 선거를 앞두고 불어온 북풍(北風)을 보면 과거 정권이나 지금 정권이나 흡사합니다. 민생 파탄과 청년실업은 박근혜 정권이든 문재인 정권이든 오십보백보입니다. ‘샤이보수’들이 우르르 투표장으로 나갈 수도 있습니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가 내건 인사 7대 원칙을 지방선거에 준용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충청권은 어떻습니까. 비리 혐의로 구속됐다가 적부심으로 나온 후보를 공천했습니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선관위가 고발한 국회의원 후보에게도 공천장을 줬습니다.

재‧보궐선거 방지 서약을 한 국회의원은 의원직을 사퇴하고 지방선거에 도전했습니다. 그 자리에는 통상적인 절차도 무시한 채, 애매모호한 ‘전략경선’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후보를 내려고 합니다. ‘촛불민심’, '민주주의', ‘공정과 정의’를 외치는 집권 여당 민주당입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충청권 공천 작업에 관여한 민주당의 핵심 인사가 저에게 건넨 말입니다. 기사화는 말아달라는 요청에 실명 공개 없이 워딩만 밝힙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왜 나뭇잎이 흔들리지 않았을 리 있겠나.”

이만하면 ‘우리도 그래서 망했다’는 새누리당과 뭐가 다를까요?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했습니다. 이번 주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범계 민주당 대전시당위원장(서구을)과 지방선거 관련 인터뷰를 했습니다. 인터뷰 말미 누군가 불쑥 들어왔습니다. 5선의 박병석 의원(서구갑)이었습니다.

그는 전반기에 이어 이번 후반기에도 국회의장직에 도전했습니다. 마침 그날 민주당 경선이 있었는데요. 그는 경기도 출신 6선 문희상 의원(경기 의정부갑)에 고배를 마셨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을 응원하고 지지해 준 의원들을 방마다 찾아다니며 인사했습니다. “경기도는 39석이고, 충청도는 11석이었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죄송하고 고맙습니다.” 정정당당한 경선이라면 이처럼 승복도 아름답습니다.

김현철 변호사의 말입니다. “국민은 자신을 대신하여 주권을 행사할 사람을 선출하는 순간에만 주권자일 뿐, 곧바로 그 대표자가 행사하는 권력의 지배를 받는 대상이 된다.” 《지배당한 민주주의》(2018. 르네상스) 오늘은 5.18광주민주화 운동 38주년을 맞는 날입니다. 민주당에는 더 없이 뜻깊은 날일 겁니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산화해간 민주 열사들의 넋이 숭고한 희생이었음을 국민에게 알리려면 자만과 오만 보다는 겸손해야 합니다.

충청도를 연고로 한 프로야구 팀 한화이글스가 거침없이 질주 중입니다. 올 시즌 누구도 그 팀을 상위권으로 간주하지 않았습니다. 야구에 이런 명언이 있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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