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헌석의 ‘예술계 산책’]

강헌규 시집, 가르다 호숫가의 추억.
강헌규 시집, 가르다 호숫가의 추억.

평생 존경받는 언어학자로 대학에서 국어교육을 지도하던 강헌규 시인이 시집 '가르다 호숫가의 추억'을 발간하였습니다. 1994년에 첫 시집 '행복한 소크라테스이고 싶어라'를 발간한 지 4반세기 만에 8시집을 발간하였으니, 평균 3년에 1권씩 발간한 셈입니다.

8시집의 서문에서 시인은 '옛적 어떤 시인이 애써 쓴 시들을 나뭇잎에 써서 물에 띄워 보냈거나, 태워버렸다는 글을 보았다. 참으로 대인군자라는 생각이 몸서리쳐지도록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그 흘려버리고 태워버린 시가 남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 좋을까를 생각하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고 허정의 경지를 선망하면서도 작품의 망실을 아쉬워하는 내면을 투영합니다.

그러면서 '내 머리에 떠오른 이 어리석은 생각, 느낌들은 나를 키워주고, 가르쳐주고, 먹여 살려주고, 보호해 주신 부모님, 형제자매, 이웃, 내 나라의 덕택임을 나는 알고 있다. 위에 대한 보답이 될는지는 모르지만, 이것이 밥값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다.'고 자신이 시를 빚는 일이 <결코 매명(賣名)은 아니다. 내 삶의 한 방식>이라고 밝힙니다.

이러한 내면의 울림은 일상에서 찾은 제재를 통하여 발현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행(幸)도 만나고 불행(不幸)도 만납니다. 강헌규 시인이 발목을 다쳐 목발을 짚고 다닌 것은 불행 중의 하나일 터이지만, 그로 인해 공감하는 작품 한 편을 구하였으니 달리 보면 ‘불행만은 아닐 터’입니다.

작품 「발목 탓에 목발을 짚고 나서」에서 삶에 대한 인식의 변주(變奏)를 만납니다.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를 부러워했는데/ 상감마마로 받드는/ 발목을 모시고 있는/ 목발을 스치고 지나가는/ 무심한 내 이웃을 부러워하다가/ 이제 걸음마를 배우는/ 거울 속 나를 보고 대견해 한다.>는 형상화를 만납니다. 세상에는 우사인 볼트와 같은 건각(健脚)도 있게 마련이고, 평범한 이웃들의 다리도 있게 마련이고, 서정적 주체처럼 발목을 다친 사람도, 혹은 나을 수 없는 다리로 평생 힘들게 사는 이웃도 있게 마련입니다.

또한 작품 「아침과 저녁의 차이」에서처럼 <아침에 보던/ 모든 아름다움은 기쁨>이었는데 <이 저녁에 보는/ 모든 아름다움은 서글픔'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병원에 오면 가면'에서처럼 '병원에 오면/ 모두가 환자다.' 의사도 간호사도 보호자도 문병 온 이도 덩달아 환자가 된다는 인식 역시 강헌규 시인의 시적 제재로 기능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세상의 여러 사람과 사물들이 작품에 반영되는데, 자신에 대한 염결성(廉潔性) 주문 역시 작품의 주요 제재입니다.

 

세월을 살면서 아직도

사념(邪念)을 떨치지 못하는 나 이제

조금은 학처럼 살고 싶다

그렇게 살다가 죽고 싶다.

 

한 해를 인고(忍苦) 속에 살다가도

이 혹독한 계절을 나목(裸木)으로

곧추 서서 묵상(黙想)하는

너는 누구인가.

 

벌써 봄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이 계절을 인내하고 있는 걸까?

 

나는 너이고 싶다

늙을수록 더욱 청청한

죽어도 서서 죽어 아름다운

너, 나무이고 싶다.

 

― 「나는 나무이고 싶다」 일부

시인은 늦가을에 노란 잎을 떨구는 은행나무 아래에서 감득(感得)한 제재를 자연스럽게 승화시킵니다. '모든 목숨들의 죽음은 슬프다.'는 명제에도 불구하고, 은행나무는 '고요를 안고 지상(地上)으로 숨지는/ 너의 분신(分身)마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나무'여서 천지간에 형언할 수 없이 큰 복을 받은 나무라고 노래합니다.

리헌석 전 대전문인협회장·문학평론가 겸 아트리뷰어.
리헌석 전 대전문인협회장·문학평론가 겸 아트리뷰어.

 

그리하여 시인은 천복을 받은 은행나무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삿된 생각을 떨치면서 학처럼 고고하게 은행나무처럼 곧추 서서 묵상(默想)하는 삶을 영위하고자 합니다. '늙을수록 더욱 청청한/ 죽어도 서서 죽어 아름다운' 은행나무이기에 그를 닮고자 합니다. 아예 그 은행나무이고 싶다고 속내를 밝힙니다. 이는 연년익수(延年益壽)하더라도 더욱 청신(靑新)하고자 하는 시심, 하늘이 부를 때까지 염결한 내면을 지키며 꼿꼿하게 살고자 하는 시심의 발현입니다.

누구에게나 일상적인 삶이 있고, 그 속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문학 작품의 기본일 터이매, 시인의 작품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작품 '침묵'에서 '천 년을 지켜보고도/ 울기는커녕 한숨도/ 기침도 않는 학이 있다는데/ 잠시도 쉼 없이/ 재잘거리는 너는 누구인가?'라며, 침묵을 지키는 학과 재잘거리는 참새를 대조적으로 그립니다. 그러나 시인은 ‘학’의 입장에서 '이제는 재갈을 물고라도/ 미운 것을 밉다 하고/ 귀여운 것을 귀엽다고 말'하고자 합니다.

이런 내면을 작품화한 원로 시인의 8시집을 감상하면서 ‘어떤 삶’ 혹은 ‘어떻게 사는 삶’이 순실(純實)할까,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특히 우리 언어를 살려 예술작품을 빚는 문인에게 던지는 선생의 지향에 잠시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우리 모두 연년익수(延年益壽)할 것이매, 더욱 청신(淸新)한 시심을 가꾸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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