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두오모 성당(3)
피렌체 두오모 성당(3)
  • 정승열
  • 승인 2018.05.14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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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열의 세계 속으로 66]

1-1. 피렌체 지도.
1-1. 피렌체 지도.

피렌체의 중심은 시뇨리아 광장과 베키오 궁전(Palazzo Vecchio)이지만, 피렌체에서 가장 높고 화려한 건물은 두오모 성당(Firenze Duomo)이다. 두오모 성당은 1292년 아르놀프 캄비오의 설계로 시작 시작하여 1334년 지오토(Giotto di Bondone: 1267~1337)가 맡아서 짓다가 죽은 뒤, 프란체스코 탈렌티와 라포 기니가 완성했다. 그렇지만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유했던 피렌체는 도시의 우월함을 과시하기 위하여 1436년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1446)에게 더욱 크고 화려한 증축을 맡기자 브루넬레스키는 이슬람 양식의 돔을 추가했다. 로마의 판테온 신전의 돔을 모방한 웅장한 돔은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웅장한 106m의 높이로 피렌체 도시 전체를 압도했으며, 브루넬레스키는 이 돔 하나로 일약 ‘르네상스 최고의 건축가’로 손꼽힐 만큼 유명 인물이 되었다. 이렇게 피렌체 두오모 성당은 착공 후 완공까지 무려 140여년이나 걸렸다.

2.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본 두오모 성당, 가운데 베키오 궁 종탑.
2.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본 두오모 성당, 가운데 베키오 궁 종탑.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정식이름은 ‘산타마리아 델 피로레 대성당(Santa Maria del Pinole)’이며, 이것은 ‘꽃다운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란 의미이다. 사실 두오모(Duomo)란 ‘반구형 지붕’을 뜻하는 라틴어 도무스(Domus)로서 특히 11세기부터 200년 동안 서유럽과 이슬람 세계가 벌인 십자군 전쟁이후 유럽에 전파된 이슬람 양식으로서 이후 주교좌가 있는 ‘대성당’을 의미하게 되었다. 따라서 오랫동안 도시국가였던 이탈리아에는 주요도시마다 ‘두오모 성당’이 있지만, 그중 피렌체 두오모 성당과 밀라노 두오모 성당이 가장 유명하다.

3-1 두오모 성당.
3-1 두오모 성당.

바티칸의 성 시스티나 성당의 ‘지도의 방’에는 1581년 교황 그레고리 13세의 명으로 그린 유럽의 지도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는데, 중세 유럽 지도의 특징은 교권과 정권을 모두 장악한 교황을 중심으로 지방의 행정구역을 표시했다. 가령, 십자가 한 개의 표시(✝)는 주교가 관리하는 대성당 지역이고, 십자가 두 개(☨) 표시지역은 대주교가 관리하는 두오모 성당이며, 십자가 세 개()가 표시된 곳은 세계 유일한 성 베드로성당을 나타낸다(2018.03.15. 바티칸(2) 참조). 또, 중세에 유럽에서 교권과 정권을 모두 장악한 도시나 국가의 국왕들의 동상이나 그림은 종교의 지도자이자 정치의 지도자임을 상징하여 십자가 두개인 이중십자가가 장식된 지팡이를 들고 있다(2017. 11.20 헝가리 성 이스트반 대성당 참조).

3-2 두오모 성당과 돔.
3-2 두오모 성당과 돔.

아무튼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대형 아치형 돔은 피렌체 시내 어디에서도 보일만큼 거대하고 화려한데, 당시에 성당은 신도 3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성당이었다. 물론, 그 후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1506),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1666), 밀라노의 두오모 대성당(1386~1890)이 지어짐으로서 현재는 네 번째라고 한다.

3-3 두오모 성당 돔.
3-3 두오모 성당 돔.

성당의 정문은 1587년에 무너진 것을 1887년에 다시 쌓았으며, 원래의 장식들은 현재 두오모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성당은 2차 대전 때 연합군의 대대적인 공습으로 많이 부서졌으나 최근 복구되었다. 성당의 입장료는 없지만, 두오모 박물관 입장료 6유로, 성당 별관(7유로), 전망대인 돔의 쿠폴라(Cuopola)를 올라가려면 입장료 8유로를 내야 한다.

3-4 두오모 성당 정문.
3-4 두오모 성당 정문.

화려한 녹색과 붉은색, 흰색 대리석의 조화로 아름답게 건축된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피렌체를 아름답게 꾸민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가 그린 프레스코 화와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답다. 특히 전기시설이 발달하지 못했던 당시에는 창문을 많이 내서 햇빛이 비치게 했는데, 유리를 통한 직사광선을 피하기 위해서 스테인드글라스가 발전했다. 피렌체 출신으로서 미켈란젤로의 제자였던 바사리는 코지모 1세 때 베키오 궁전을 프레스코화로 장식하였을 뿐만 아니라, 두모오 성당, 우피치 미술관, 베키오다리 위에 베키오 궁전과 피티 궁전 사이의 전용 통로까지 설치한 당대 최고의 예술가였다(바사리에 관하여는 2018. 05.07.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 참조).

4. 지오토 종탑.
4. 지오토 종탑.

두오모 성당의 436개 계단에 올라서 돔의 전망대로 나가면 피렌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성당의 남쪽에 높이 84m에 이르는 거대한 종탑을 올라가도 구경할 수 있는데, 가톨릭이 지배하던 중세에 유럽에서 성당의 종탑은 그 도시의 위상에 따라서 높이가 크게 달라져서 피렌체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종탑은 1334년 두오모 성당을 짓다가 죽은 지오토가 고딕 양식으로 설계하여 지오토가 죽자 그의 제자 피사노(Andrea Pisano: 1290~ 1348)가 완성하였는데도 ‘지오토 종탑(Campanile di Giotto)이라고 부르고 있다. 지오토 종탑은 당시 페인트와 같은 물감이 없던 당시에 흰색과 녹색 대리석으로 외관을 아름답게 장식하여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옛 모습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근처의 산지오니 세례당과 함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4-1 종탑에서 본 피렌체 시내.
4-1 종탑에서 본 피렌체 시내.

그런데, 피렌체 두오모 성당 앞에는 두오모 성당을 짓기 전에 예배하던 ‘피렌체 구성당’이 아직 보존되어 있다. 구성당은 두오모 성당과 대각선 길 건너편에 있는데, 이곳은 원래 고대 로마의 신전이 있던 곳에 가톨릭이 확립된 이후 그 신전을 헐고 지은 예배당이다. 이것은 조선 중종 때 숙수사라는 사찰을 허물고 그 자리에 조선 성리학을 수입한 주세붕을 모신 소수서원을 세워서 아직까지 서원 입구에 사찰의 흔적인 당간이 남아있는 것과 비슷하다. 《신곡》의 작가 단테도 이곳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 예배당에는 모두 3개의 문이 있는데. 그중 1425년 대대적인 개축을 할 때 유명한 피렌체 출신 금세공장 로렌초 기베르티(Lorenzo Ghiberti: 1378~1455)가 부조물을 새긴 동문이 가장 유명하다.

5. 구성당.
5. 구성당.

5-1 구성당 동문.
5-1 구성당 동문.

기베르티는 당시 문자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이해하기 쉽도록 출입문 양쪽에 각각 5개 장면씩 모두 10개의 부조물을 원근법으로 조각했는데, 이것을 ‘천국의 문’이라고 한다. 15세기 초에 이미 원근법을 알았던 기베르티가 새긴 부조물은 왼쪽 문 위에서부터 ① 아담과 이브의 창조 ② 술에 취한 노아 ③ 야곱과 에사오 ④ 시나이 산의 모세 ⑤ 다윗과 골리앗이, 오른편 문에는 위에서부터 ① 아벨을 죽인 카인 ② 이삭의 회계 ③ 상인에게 팔린 요셉 ④ 요단강을 건너는 이스라엘 사람들 ⑤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등의 모습이다. 기베르티가 새긴 동문의 부조물은 워낙 정교하고 아름다워서 르네상스 최대의 화가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이라고 극찬했다고 하며, 피렌체를 찾은 여행객들이라면 피렌체 구성당의 동문에 새겨진 부조물을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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