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수속을 끝내고 배당 받은 방은 6045호실. 6층의 끝 방이었다. 추락할 것 같은 불안감이 소름 끼치게 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루하게 오른 뒤에야 6층 로비가 나타났다. 그곳은 공중전화가 걸려있는 작은 로비를 중심으로 길게 드러누워 있는 복도가 양쪽으로 뻗어 있었다. 바닥에는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었고 벽체에는 두터운 베니어판이 칙칙하게 채색되어 있었다. 복도 중간쯤에 매달린 전등은 꺼진 상태였다. 복도는 어둠이 살포시 깔린 골목길을 연상 시켰다. 복도 끝에 붙은 창문은 빗물이 스친 흔적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나는 객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룸은 다소 어색하면서도 아늑했다. 창문에는 녹색 커튼이 쳐졌고 쇠로 만든 침대가 구석진 곳에 게으르게 누워 있었다. 낮은 테이블 위에는 텔레비전이, 또 나무 책상 위에는 물 컵과 스탠드, 그리고 메모지 몇 장이 한가로이 놓여있었다. 싱글 소파와 숨을 멈춘 라지에이터. 욕조가 없는 화장실. 발을 옮길 때마다 저벅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마룻바닥, 단조로운 천정. 이것이 룸의 전부였다.

나는 침대 위에 가방을 내려놓고 커튼을 걷었다. 햇살에 빛나는 싱그러운 바다가 기다렸다는 듯이 왈칵 동공으로 밀려 왔다. 낮게 깔린 상수리나무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사파이어 빛 그 자체였다. 티끌하나 없는 빛깔이 청순한 소녀의 눈빛같이 신선했다. 속을 자세히보면 끝없는 심연이 발가벗은 아내의 몸처럼 보일 것 같았다.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얄팍하게 웃는 파도, 그 위를 미끄러져 가는 실바람, 끝없이 펼쳐진 물길 저 편에 떠있는 뭉게구름.

내가 아내를 찾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면 이 모든 것이 아름답게만 보였을 것이다. 또 진한 솔잎 냄새를 풍기는 우꾸로프의 향기를 이곳에서 만끽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무거워서인지 이 모든 것들이 아름답다거나 혹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후덥지근한 열기에 찌든 방안 공기가 싫어 창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그러자 샘물처럼 싱싱한 바람이 파도같이 밀려왔다. 상큼한 입맛을 돋게 하는 바람 끝이 매끄러웠다.

자기야 바닷바람이 상큼하지 않니? 어머 저 조개껍질 좀 봐

어디?”

저기 소라 껍데기 말이야. 햇살에 눈부신 …….”

채린은 어린아이처럼 해맑았다. 언젠가 제주도 해변을 거닐 때 그녀는 꿈속을 쏘다녔다. 잔모래가 깔린 해변에 작은 발자국을 남기며 즐거워했다.

자기 나 업어 줄래?”

?”

그냥. 그러고 싶어. 나는 자기한테 업혀 어디론가 멀리 그렇게 가고 싶어. 아무도 사람이 살지 않는 그런 곳으로…….우리 둘만이 있을 수 있는 그런 세상 말이야.”

그런 세상이 어디 있어.”

왜 없어? ! 자기는 무드라고는 빵점이야.”

무드? 무슨.”

무드가 무슨 무드가 어디 있어. 하여튼 자기는 재미없는 사람이야. 그것은 알아주어야 해.”

그래 내가 무드가 전혀 없는 그런 사람이란 말이지?”

채린은 내가 이내 시무룩해지자 부서지는 파도 같은 이빨을 드러내고 하얗게 깔깔거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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