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나는 이곳에서 남부럽지 않을 만큼 사업도 확장시켰고 명예도 얻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늘 비어있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고향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으니까. 형제들이 그립고 보고 싶을 때도 많습니다. 특히 혼자 있을 때면 더욱 마음이 울적해집니다.”

그럴 테지요.”

빅또르 김과 내가 이런 애기를 나누고 있을 때 나 선배가 건배를 제의 했다. 좌중의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 숨이 막 힐 것 같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가냘프리만큼 목이 긴 유리잔에 찬물 같은 보드카를 한잔 가득 따랐다.

빅또르 김의 사업이 번창하고 우리의 우정이 영원히 변함없기를 기원 합니다. 또 그런 우정이 러시아와 한국과의 관계 발전으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그리고 김 선생을 조속히 찾을 수 있도록 노력 합시다. 그런 뜻에서 건배를 제의합니다.”

건배

건배.”

술잔이 맑은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홀 안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내들의 땀 냄새와 술기운으로 질펀하게 젖어 들었다. 화사하던 샹들리에 불빛이 음침한 조명으로 바뀌었고, 밴드의 감미로운 반주 음이 분위기를 돋웠다. 하루의 노동을 끝낸 사내들이 몰려나와 미친 듯이 몸을 흔들었다. 여기저기서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고 아녀자들의 날카로운 괴성이 후덥지근한 공간을 가로 질렀다. 나 선배는 몇 차례 더 술잔을 주고받은 뒤 우리를 홀 중앙으로 끌어냈다.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채린의 문제는 잘 될 것이라고 위로했다. 하지만 혀가 꼬여 말이 선명치 않았다.

그는 내게 빅또르 김과 좋은 우정을 쌓는 것이 채린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나는 말없이 그의 손을 꼭 잡았다.

 

[6] 포트바야 25번지

614

 

나는 새벽녘에 간신히 눈을 떴다. 골이 지끈거렸다. 속이 거북스런 팽만감에 불러 있었다. 담배를 빼물자 울컥 헛구역질이 났다. 찬 물을 길게 들이키고서야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호텔을 옮기기 위해서였다. 밤새 퉁탕거리는 엔진소리에 밤잠을 설치는 것도 문제지만 블라디미르 호텔이 이곳 마피아들의 소굴로 돌변했다는 나 선배의 조언 때문이었다. 인질 사건이 있고 난 뒤 좀체 마음을 놓지 못했던 것도 한 몫 했다. 나 선배에게 보다 안전한 다른 호텔의 알선을 부탁했고 그러던 차에 오늘 아침 다른 호텔이 마련됐다는 전갈이 왔다.

창밖은 어제와 달리 화사했다. 마음껏 낙서를 하고 싶은 파란 하늘이었다. 내가 거의 짐을 챙겼을 때 총영사관에서 공관 직원이 왔다. 그는 나 선배의 부탁을 받고 왔다며, 짐을 차에 싣고 그 길로 블라디보스토크 호텔로 나를 데려갔다.

블라디보스토크 호텔은 선상호텔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돌출된 반도의 언덕위에 현대식 건물로 단조롭게 디자인 된 호텔이었다. 말이 호텔이지 장급 여관쯤으로 보였다. 10층으로 이루어진 호텔은 옅은 회백색 건물에 청색 창틀이 앙증스럽게 붙어 있었고 낡아 보이는 외벽에는 덧칠이 다소 고르게 채색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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