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세계 속으로 65]

1. 피렌테 지도.
1. 피렌테 지도.

유럽은 그리스․로마의 전통에 따라서 광장문화라고 할 만큼 도시마다 광장이 만들어져 있는데, 피렌체 여행은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에서 시작한다. 시뇨리아란 본래 중세 이탈리아에서 지배권이 세습되는 독재자의 참주정치(僭主政治)를 의미하지만, 피렌체에서는 소수의 지배자들이 공동으로 통치하던 공화정부를 의미한다.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광장의 하나인 시뇨리아 광장은 일찍부터 토스카나 지방을 지배하던 베키오 궁전(Palazzo Vecchio) 앞에 있다. 시뇨리아 광장에서 가장 중심은 베키오 궁전이고, 베키오 궁전의 앞마당과 같은 광장 중앙에는 포세이돈(Poseidon)동상을 중심으로 네프틴 분수대(Fountain of Neptune)가 있는데, 르네상스 예술의 중심지답게 피렌체 출신 단테를 비롯하여 여러 인물상이 마치 조각 공원처럼 세워져 있다. 광장은 유럽 특유의 석주(石柱)를 박은 포장길이다(석주에 관하여는 2017.01.06. 포로 로마노 참조).

2. 시뇨리아 광장.
2. 시뇨리아 광장.

사실 11세기까지도 그다지 두드러지지 못하던 피렌체는 12세기 들어서 교통의 중심지로 크게 발달했는데, 1229년 피렌체의 지배자들은 고대 로마의 유적이 있던 곳에 ‘지도자들의 궁전’이라는 이름의 투박할 정도로 육중한 건물을 짓고, 뒤편에는 높은 종탑을 세워서 외적의 침입을 감시하는 초소로 삼았다. ‘지도자들의 궁전’은 1565년까지 피렌체의 정치적 중심이었으나, 메디치가의 집권이 강화되어 우피치 궁과 피티 궁전이 건축되면서 그 지위를 상실했다. 즉, 추방과 복귀를 반복하던 메디치 가문은 1434년부터 피렌체의 정계를 장악하여 정치뿐만 아니라 수많은 학자와 예술인들을 후원하였는데, 특히 1537년 1월 메디치가의 코지모 1세(Cosimo 1: 1519~1574)가 반대세력을 진압하고 권력을 장악하여 메디치 가문을 부흥시킨 주인공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시뇨리아 광장의 맨 왼쪽에 세워진 청동기마상의 인물이 코지모 1세이다. 그는 그해 8월 신성 로마황제 카를 5세로부터 지배를 승인 받고 공작이라고 칭하면서 ‘지도자들의 궁전’에서 살았는데, 그 무렵 피렌체의 상인이자 정치가, 그리고 코지모 1세의 친구였던 은행가 루카 피티(Luca Pitti)는 피렌체 시내를 흐르는 아르노 강 건너편에 ‘지도자들의 궁전’보다 더 크고 훌륭한 저택을 지으려고 했으나, 재정난에 부딪혀서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이때 코지모 1세의 아내가 이 건물을 매수하여 대대적으로 증축한 후 옮겨가면서도 피티 궁전(Palazzo Pitti)이라는 이름은 바꾸지 않았다. 코지모 1세가 10년가량 살던 ‘지도자들의 궁전’에서 피티 궁전으로 옮겨가자 사람들은 ‘지도자들의 궁전’을 베키오 궁전, 피티 궁전을 누오보궁전(Nuovo)이라고 불렀다. 베키오란 ‘오래 된’이란 의미이다.

2-1 네프틴 분수.
2-1 네프틴 분수.
2-2 코시모 1세.
2-2 코시모 1세.

베키오궁전은 오랫동안 피렌체 의회의 역할을 해온 전통에 따라서 이탈리아가 통일된 1861년부터 1871년 수도가 로마로 옮겨질 때까지 이탈리아의 수도가 되었던 피렌체에서 국회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피렌체 시청으로 쓰이고 있고, 베키오 궁의 종탑은 수많은 여행객들에게 피렌체 시내를 조망하는 전망대 역할을 해주고 있다. 궁전 입구 좌우에는 다비드 상과 헤라클레스 동상이 호위병처럼 서있는데, 거인 골리앗을 한 번의 돌팔매질로 때려눕힌 영웅인 다비드상은 ‘지혜를 상징’하고, 몽둥이로 사람을 제압하는 헤라클레스 상은 누구도 메디치가에 대항하지 말라는 메디치가의 힘을 상징한다고 했다. 물론, 이 조각품과 미켈란젤로 언덕에 있는 다비드상은 모두 복제품이고, 진품은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3. 베키오궁.
3. 베키오궁.
3-1 베키오 궁 앞의 다비드 상.
3-1 베키오 궁 앞의 다비드 상.
3-2 베키오궁 로비.
3-2 베키오궁 로비.

토스카나 공화국의 문장을 지닌 사자상이 현판처럼 부착되어 있는 궁 안으로 들어서면 외관과 달리 궁전의 석주와 천정은 프레스코화 기법으로 세련되게 장식되었는데, 이것은 코지모 1세가 조로조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에게 명하여 꾸민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제자였던 바사리는 르네상스 문화를 종합했다고 평가받는 예술가로서 프레스코(Presco)화란 유화(油畫)가 발달하기 전에 벽에 석회 칠을 한 뒤 석회가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려서 물감이 자연스럽게 벽에 스며들게 하는 기원전부터 로마인들이 그려왔던 기법이 13세기 이후 특히 피렌체에서 크게 발달하여 유럽에 널리 퍼져 대부분의 궁전과 성당은 프레스코화로 그렸다. 프레스코 화는 밑그림을 세밀하게 그릴 수 없다는 불편에도 불구하고 한번 그린 그림은 오랫동안 벽의 일부가 되어 벽의 표면을 뜯어내지 않는 이상 보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하루에 그림을 그릴 분량을 정확히 알고 작업을 해야 하며, 한번 그린 그림을 수정하려면 벽면을 뜯어내서 석회를 다시 칠한 뒤 그림을 그려야 하는 등 단점이 있다(프레스코 화에 대하여는 2017.04.16. 인스부르크 황금지붕 참조).

3-2 시뇨리아 광장의 단테.
3-2 시뇨리아 광장의 단테.
4. 란찌.
4. 란찌.
4-1 란찌의 조각품들.
4-1 란찌의 조각품들.

베키오 궁은 1층 500인의 방(Salone Cinquecento), 2층 시뇨리아의 방(Cappela della Signoria), 우디엔자의 방(Sala dell’ Udienza)에 많은 미술품들이 보관되어 있으나, 사진 촬영을 금하고 있다. 그런데, 시뇨리아 광장 남쪽에 긴 회랑처럼 만들어진 공간에도 진품과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한 고대와 르네상스의 조각품들이 많이 있다. 이곳은 코지모 1세를 경호하던 병사들이 주둔했던 공간으로서 란찌(Loggia del Lanzi)라고 하는데, ‘란찌’는 ‘독일 용병’을 뜻한다. 오늘날 란찌는 피렌체를 찾은 수많은 여행객들의 잠깐 쉼터가 되고 있으며, 우리는 이곳에서조차 시뇨리아 광장과 베키오 궁의 예술적 감각을 엿볼 수 있다. 메디치가가 피렌체에서 르네상스의 꽃을 피운 시기는 우리에겐 고려 말~ 조선 초기로서 성리학을 숭상하는 호족들이 조선을 건국했으나, 메디치가는 중세유럽을, 나아가 세계문화의 한 기둥을 이룩했다는 점에서 느낌이 유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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