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의 정치 톺아보기]

지방선거 사각의 링에 오른 박성효 자유한국당 대전시장 후보, 허태정 더불어민주당 대전시장 후보. 왼쪽부터. 자료사진. 

일요일이면 프랑스 군가 상브르 뫼즈 연대(Le Regimnent de Sambre et Meuse)의 시그널과 함께 TV앞으로 사람을 끌게 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다. 이철원 아나운서의 감칠맛 나는 중계가 돋보이기도 했던 <MBC권투>. 

싸움을 잘못했던 나로서는 대리만족을 느꼈었나? 웬만하면 이 TV프로그램은 꼭 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턴가 메인경기의 앞부분만 보다가 TV를 돌린 후 뒷부분 할 때쯤 다시 돌려본다. 12회 타이틀매치 중 4회 이후 8회쯤까지는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권투의 법칙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저돌적으로 파고드는 인파이터와 인파이터간의 싸움은 초기에 박진감 있게 치고박고 하다간 지치기도 해서 그런지 중간부턴 재미없다. 아웃복서간 싸움은 초기 화려한 개인기로 탐색전만하다가 역시 중간에 시들해진다. 아웃복서와 인파이터간 경기는 쫓아 들어가는 인파이터에 빙빙 잽과 간혹 스트레이트를 던지는 아웃복서의 탐색전이 처음엔 흥미를 일으키다가 이 또한 중간쯤 되면 서로가 시간을 벌기 시작한다.

어떤 경기도 대부분 9회 이후쯤 되야 막판 기회를 잡으려 다시 자신의 스타일을 발휘한다. KO를 향해 화끈하게 붙던가 아니면 그간의 점수관리로 판정승에 기댄다.

최근의 대전시장선거전을 보면 옛 즐겨보던 MBC권투가 재차 생각난다. 나는 지난 2월 <디트뉴스>에 기고한 ‘대전시장 선거전, 누구 펀치가 통할까?’라는 글에서 70년대 황금의 권투시대를 이끌었던, 무하마드 알리, 조프레이저, 조지포먼의 승리방정식을 선거에 적용한 적이 있다.

프레이저처럼 저돌적으로 지칠 줄 모르게 목표를 향해 꾸준히 활동하는 인파이터형 정치인으로 더불어민주당의 허태정 후보, 자유한국당의 박성효 후보, 정의당의 김윤기 후보를 꼽았다.

알리처럼 치고 빠지며 상대를 지치게 염탐하면서 한발 한발 공략하는 아웃복서형 정치인으론 자유한국당의 정용기 의원, 육동일 후보, 바른미래당의 남충희 후보를, 포먼처럼 아웃복싱이든 인파이팅이든 상대스타일에 맞춘 경기력을 펼치되 결국 한방에 해결 짓는 핵주먹 정치인으론 더불어민주당의 이상민 후보, 박영순 후보와 염홍철 전 대전시장을 분류했었다.

지금은 경선탈락 또는 불출마로 4명의 후보가 남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아웃복서형 남충희후보 외에 허태정, 박성효, 김윤기 후보 3명 모두가 지난번엔 인파이터형으로 분류한 분들이다. 포먼형의 핵주먹 정치인에겐 '기회포착'이 중요하고 잡은 기회에 정치력을 총집결시켜 대세를 장악한 후 바람을 이어가야 하는데 모두가 실패했다.

현재 대전시장 선거전은 허태정, 박성효 후보간 양강 싸움으로 많이 회자 된다. 두 후보는 서로 링은 달랐지만 경선과정이나 선거활동에서 전형적 인파이터의 모습을 보였다. 인파이터형의 경쟁력은 '간절함'에 있다. 두 호보는 자신의 스토리로 지역곳곳을 밀착해서 쉬지 않고 움직이며 간절함을 보였다. 이 간절함이 각자의 링에서 승리를 거머쥐게 한 힘이었다. 

그래서 두 후보가 한 링에서 붙었을 때 유권자들은 어떤 치열한 경기를 보여줄지 기대감이 적지 않다. 유권자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어떤 간절한 감성적 모습을 선보일지, 더욱 강력해지기 위해 어떤 이성적 정책대안을 붙일지 다양한 궁금증을 4각의 링에 불러 들이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달라진 것이 있다. 최근 모습을 비교해 보면 박성효 후보는 꾸준히 인파이터형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허태정 후보는 다소 달라진 듯하다. 유심히 볼 때 아웃복서형으로 스스로의 싸움스타일을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면 나만의 착시일까?

허태정 후보는 2번의 구청장선거와 행정경험에 젊은 체력을 지녔다. 그는 3선 구청장과 국회의원 빅딜설을 박차고 링에 올랐다. 경선기간 동안 각 구별 1박2일 체험 프로그램 등 왕성한 행보로 5배 큰 링을 종횡무진 누비는 깡을 선보였다. 

그런데 요즘은 행보가 잘 눈에 띄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최근 ‘대전, 새로운 시작’이라는 중앙정치연계 문구를 선거슬로건으로 확정하고 남북정상회담으로 더욱 강화된 민주당 대세론을 활용하는 전략을 취한다. 언론사가 주최하는 토론회에도 출전하지 않는다고 한다. 괜히 다른 후보들에게 펀치를 맞거나 불필요한 허점을 노출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전형적인 아웃복서의 모습이다.

이렇게 허태정 후보가 아웃복서로 전환하는 것은 어쩌면 극히 당연할지 모르겠다. 현재 50%가 넘는 지지율을 유지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추도일과 5.18항쟁, 그리고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향후 정국이니셔티브를 주도하는 집권여당의 대세론에 올라탔기에 전술적으론 무리할 필요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강영환 정치평론가
강영환 정치평론가

그런데 아웃복서 허태정 후보에겐 경계할 것이 있다. 대세론이라는 것은 권투가 열리는 장소가 원정지(어웨이)가 아닌 ‘홈’이라는 유리함이지, 결국 복서자신이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웃복서의 경쟁력은 테크닉에 있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무하마드 알리가 갖춘 아웃복서다운, 아웃복서로서의 테크닉과 함께 적재적소로 그 테크닉이 발휘되는 경기운영능력이 있어야 한다. 후보가 지닌 차별적 컨텐츠와 감성코드, 그리고 홈 분위기 활용 등을 링의 상황에 맞게 적절히 펼치느냐가 생명이다. 그냥 막연히 대세에만 기대다간 어려울 수 있다.

게다가 경쟁자인 박성효 후보의 인파이팅은 최근 무서운 기세다. 다소 뻣뻣한 편이라는 비판을 받던 그가 어느 행사장에선 큰절을 올리기도 하고 또 다른 곳에선 무릎을 꿇고 반성의 연설도 했다고 한다. 사무실 개소식에서 울먹이는 동영상이 언론에 공개되었다. 야당 후보로의 문구로선 치열해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웃어라 대전‘이라는 다소 감성적 슬로건도 채택했다. DTX(고속트램) 등 정책공약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4번째 시장선거라는 ’올드보이‘론과 20%대의 낮은 정당지지율이 어쩔 수 없는 큰 한계로 다가오겠지만 그의 변화는 절박해보이고, 인파이터형 복서의 무기인 간절함을 꽤 전달하는 듯하다

선거가 40여일 남았다. 지금쯤 4각의 링으로 본다면 3회쯤 지난 듯하다. 지금까진 여당의 경선과정이나 야당후보들의 나름의 고투과정이 적잖은 초반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이젠 4회, 시청자(유권자)에겐 재미없는 시간, 소강상태다. 

앞으로 중반전 선수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후반부에 KO펀치를 날리든 판정승을 위한 점수를 쌓게 하든, 소강상태인 지금 자신의 맷집도 강하게 하면서, 상대에 펀치를 적중시켜 두어야 한다. 인파이터복서는 숨고르기도 하면서 그래도 지칠 줄 모르게 상대방을 몰아가야 한다. 아웃복서는 잽과 간혹 원투스트레이트로 피하기도 하면서 상대방을 경계해야 한다. 그러면서 후반부를 대비해야 한다.

이것이 안 되면 후반부엔 급한 마음에 헛방만 날리기 일쑤다. 유권자에게 최종 흥미 있는 시간은 5월 31일 이후의 공식선거전이지만, 복서에게 더욱 중요한 시간은 유권자에겐 소강상태로 보이는 4회의 종이 울린 지금부터다. 

인파이터로 기세를 높이는 박성효 후보에, 아웃복서로 변신중인 허태정의 테크닉이 통할 수 있을까? 5월의 링에 임하는 자세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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