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규의 과학으로 읽는 한의학]

대전대학교 둔산한방병원 내과면역센터 교수.손창규 

인체의 360개의 혈자리 중에서 발바닥에는 유일하게 1개의 혈자리가 있다. 바로 샘물을 퍼 올린다는 의미의 용천(湧泉)이라는 경혈이다. 발바닥의 앞쪽 2/3 부근의 중앙 움푹 들어간 곳에 해당한다. 인체의 가장 위쪽인 머리의 정수리에 위치한 백회(百會)혈과 정반대에 위치한 격이다. 용천혈은 한의학 임상에서 매우 중요한 혈자리로, 발바닥에 위치하였지만 머리나 뇌의 질병을 치료할 경우에 많이 활용한다. 자극이 너무 센 곳이라 의식이 없는 환자가 아니면 거의 침치료보다는 다른 자극요법을 선택한다. 필자의 한방병원에서는 이 용천혈에 가장 흔하게 뜸치료를 실시한다.

지구의 북극과 남극이 자기장으로 연결되고 있듯이 인체도 자기장의 힘이 작동하는데, 발바닥의 용천혈과 정수리의 백회혈 간에 자기장이 통한다고 하겠다. 이렇게 상하와 좌우를 연결해주는 통로를 경락(經絡)이라 하며, 이 경락의 중요한 정거장을 침이나 뜸을 놓는 경혈(經穴)이라 한다. 이러한 경혈과 경락은 신경 및 혈액과 림프관의 흐름을 비롯하여 자기장의 분포와 총체적으로 관계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상하, 좌우 및 내외의 연결과 균형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의학 침치료 방법에서 왼쪽의 병은 오른 쪽에서, 반대로 우측의 병은 왼쪽에서 치료해도 동일한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머리나 뇌의 질병은 발에 침을 놓고, 특히 발바닥의 용천혈은 뇌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가장 중요한 혈자리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 여러 과학적 연구결과들이 용천혈과 뇌와의 연관성을 매우 흥미롭게 보고하였다. 이탈리아의 연구자들은 50명의 전신마취 환자들을 대상자으로 관찰한 결과 용천혈의 자극이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는 시간을 유효하게 단축시켰다. 중국의 재활연구센터에서는 2년 이상 무의식 상태에 있는 환자들에게 용천혈을 3일간 침치료 한 후 의식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에서 신경세포들이 활성화는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대만의 연구팀은 용천혈이 실험적으로 유도한 뇌손상을 빨리 회복시켰으며, 중국 상해중의대 연구진은 용천혈이 실험쥐의 간질발작을 억제하는 것을 증명하였다. 또 다른 연구팀은 용천혈이 산소부족으로 죽어가는 뇌세포을 보호한다는 실험적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인체의 뇌에서는 1일 약 0.5리터의 무색투명한 뇌척수액이라고 하는 수분이 만들어져서 뇌실을 순환한다. 인체의 머리를 식물에 비유하면 수분을 가장 많이 함유하고 있는 맨 위쪽의 새순에 해당한다. 이러한 나무꼭지의 수분은 땅속의 뿌리에서 흡수된 물이 올라간 것이다. 이것처럼 인체의 발바닥에 있는 용천혈의 이름의 의미는 머리위로 물을 올려주는 기능을 하는 혈이라는 뜻이다. 예전에 공부하는 선비들이 발바닥의 용천혈을 자극해준 이유도 여기에 있을 듯싶다. 혹 머리가 맑질 않고 기억력이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분, 혹은 깊은 수면을 못 취하는 분들은 용천혈 자극을 중심으로 치료하는 선택도 권해드린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