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세계속으로 64]

1. 이탈리아 지도.
1. 이탈리아 지도.

로마에서 서북쪽으로 약230㎞ 떨어진 피렌체(Firenze)는 700년 동안 피렌체 공화국의 수도였으며, 1861년 이탈리아 통일이후 1871년 로마로 수도를 옮길 때까지 이탈리아의 임시수도였다. BC 59년경 실질적으로 로마 제정을 시작한 율리우스 시저(Julius Caesar: BC 100~ BC 44)가 아르노 강변에 건설한 이곳을 플로렌티아(Florentia)라고 불렀는데, 플로렌티아는 라틴어로 “꽃”을 의미한다. 피렌체를 꽃이라고 명명한 것은 지형상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조성된 도시의 모습이 아름다운 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도 하고 피렌체에 붉은 꽃이 많이 자생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도 하는데, 아무튼 피렌체는 오늘날 영어 ‘꽃(Flower)’이란 단어의 기원이 되었다.

1-1 피렌체 지도.
1-1 피렌체 지도.

2001년 처음 서유럽 여행 때에는 로마에 도착해서 이탈리아 남부를 여행한 뒤 피렌체~ 베니스~ 베로나를 거쳐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로 북상했지만, 두 번째에는 반대로 유럽의 허브공항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파리와 샤모니를 거쳐 밀라노로 남하하는 코스를 택했다. 그러나 그렇게 갈지(之)자로 돌아다닌다 해도 유명한 도시는 겹치기 마련인데, 세 번째 여행에서 로마에서 피렌체로 갈 때에는 고속버스를 탔다.

2. 마키아벨리.
2. 마키아벨리.

피렌체로 가는 도중에 잠시 키안티(Chianti)에 머물렀는데, 키안티는 포도주의 명산지이자 르네상스기에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1469~1527)의 고향이다. 이탈리아에서도 최고급 와인 생산지인 키안티의 포도주 상표는 ‘검정 닭’인데, 백포도주는 생선으로 만든 음식을 먹거나 요리용으로 사용하고 적포도주는 육류를 먹을 때 마신다고 했다. 또, 백포도주는 3년이 지나면 식초로 변하기 때문에 냉장보관을 해야 하지만, 적포도주는 100년이 지나도 변치 않아서 상온에서 보관해도 좋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2-1 키안티 와인.
2-1 키안티 와인.

피렌체에서 법률가였던 부친의 파산으로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고 독학으로 학문을 익혔던 마키아벨리는 그것이 오히려 당시 만연된 라틴어 교육과 가톨릭으로부터 자유로운 사고와 독창성을 갖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그는 29세 때부터 피렌체 공화국의 관직을 맡은 후 외교사절로 프랑스 독일 등을 방문하면서 강력한 군주제로 발달한 프랑스의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당시 이탈리아는 군소 국가로 분열되어 끊임없는 외세의 위협 등에 시달렸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공화국의 방어를 용병제에 의존했는데, 마키아벨리는 이것을 개혁하여 통일국가와 징병제를 추진했다. 그러나 그는 메디치 가문에 반역 음모를 했다는 죄목으로 투옥되어 고문당한 뒤 추방되어 군주론을 비롯한 정치, 철학서들을 썼다.

3. 메디치.

그런데, 외국여행을 하다 보면 우리의 외국어 교육이 얼마나 엉터리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6년 동안 배우는 영어는 대입수능에서도 당락을 결정할 만큼 중요한 제1 외국어이지만, 정작 길거리에서 외국인이 길을 물어도 우물쭈물하기 일쑤이고 영문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비율은 더더욱 극소수이다. 그러나 사실 유럽은 물론 중동이나 남미를 여행하다 보면 영어가 우리 한글보다 더 통하지 않는 언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도시의 이름 가령, 베니스(Venice)가 아닌 베네치아(Venezia)로, 플로렌스(Florence)는 피렌체(Firenze), 오스트리아 수도 빈(Wien)은 비엔나(Vienna)등으로 불리고 있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이것은 대부분 미국식 명칭이라는 데서 그동안 우리가 미국의 영향을 얼마나 많이 받아왔으며, 미국에 치우친 생활을 해왔는지 실감하게 된다. 더구나 삼국시대 이래 한자문화권에 속한 우리는 한자를 알지 못하면 역사책을 읽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많은 단어들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지만, 정작 중국에서는 1955년부터 정자(正字)인 번체자(繁體字)가 아닌 간체자(簡體字)를 사용하고 있는데도 일편단심 번체자만 가르치는 우리 교육정책의 병폐로 중국여행을 가서도 거리의 간판이며 음식점의 메뉴 표를 읽지 못해서 겪는 불편은 겪어본 사람들만 알 것이다.

4. 다빈치.
4. 다빈치.
4-1 다빈치 모나리자.
4-1 다빈치 모나리자.

12세기 초 로마의 자치도시 피렌체는 신성 로마제국 하인리히 4세(Heinrich Ⅳ: 1050~1106)와 대립하면서 공화국이 되었는데, 가톨릭이 확립된 이후 알프스 북쪽의 유럽 여러 나라 사제들과 상인들이 거쳐 가는 길목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으로 음식과 숙박업, 금융업이 크게 발달하고 다양한 민족들과 접촉하면서 일찍 깨우치게 되었다. 특히 중세에 이르면서 교통의 중심지 피렌체 공화국의 화폐 플로린(Florin)이 유럽의 기축통화가 될 정도가 융성해지자 유럽 각지에서 상인들이 피렌체로 몰려왔다. 이때 메디치 가(Medici family)의 실질적 창시자인 조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Giovanni di Bicci de' Mecidi: 1389~1464)도 피렌체로 왔는데, 그는 유럽에 창궐한 흑사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을 때 약품 판매로 큰돈을 벌어서 메디치가문은 오늘날 ‘약국(Medici= Medicine)’이란 어원이 되기도 했다. 또, 롬바르디아의 부호이자 귀족인 피카르다 부에리와 결혼할 때 아내가 가져온 천문학적인 결혼지참금 1500플로린으로 은행을 설립한 것이 크게 성공했는데, 그는 추기경 발다사레 코사(Baldassare Cossa)와 돈독한 관계를 맺은 것이 인연이 되어 코사 추기경이 교황 요한 23세(재위 1410~1415)가 되자 서유럽 각지에서 들어오는 교황령의 자금을 메디치 은행에 맡게 되어 엄청난 수익을 얻었다.

5. 미켈란젤로.
5. 미켈란젤로.

 

5-1 미켈란젤로의 파에타.
5-1 미켈란젤로의 파에타.

14세기부터 중세 유럽의 문화와 예술을 꽃피운 르네상스의 중심 도시 피렌체는 도시 전체가 르네상스시대의 박물관이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피렌체에서 메디치가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중세 유럽의 르네상스를 꽃피운 피렌체는 단테(Dante: 1265∼1321)를 비롯하여 브루넬레스키(1377~1446),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 ~519), 마키아벨리(1469~1527),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 라파엘로(Raffaello: 1483~1520), 갈릴레오(1564~1642) 등의 고향이기도 한데, 이들은 모두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으면서 르네상스 문화를 창조했다. 특히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를 ‘르네상스 3대 화가’라고 하는데, 다빈치가 화가이자 조각, 건축 등 다양한 방면의 예술가였다면, 미켈란젤로는 신비로운 직관의 예술을 창조했고, 라파엘로는 모든 사람이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차분한 그림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6. 라파엘로.
6. 라파엘로.
6-1 아테네 학당.
6-1 아테네 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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