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부인 이설주 여사. 2018남북정상회담 홈페이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부인 이설주 여사. 2018남북정상회담 홈페이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거의 딴 사람이 되었다. 정상회담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말과 행동은 그를 바라보는 세상의 눈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회담 과정 과정마다 보여준 그의 재치와 농담에선 잔인한 독재자의 모습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회담을 대하는 자신의 진정성을 거듭 강조하는 말에선 노련한 화술도 묻어났다.

적어도 남한 사람들에게 김정은에 대한 이미지는 회담 이전과 이후가 크게 달라졌다고 본다. 지인 한 분은 김정은의 모습이 귀엽다고까지 했다. 김 위원장의 말과 행동이 계산된 것이라고 해도 고집불통의 독재자 이미지는 크게 누그러뜨린 게 분명하다. <워싱턴포스트>는 “독재자 김정은은 잊어라. 국제 정치인 김정은이 온다”고 표현했다.

4월27일을 기해 달라진 김정은 이미지

지금까지 우리 국민들에게 김정은 권력 장악을 위해 고모부까지 과감하게 처형하는 잔인한 독재자면서,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과 삿대질하며 맞서며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선 전쟁도 불사할 것처럼 보이는 ‘악동’이었다. 그는 드디어 “핵개발을 완성했다”며 세계를 대상으로 “너희들이 어쩔거냐”라면서 불장난을 해왔다. 바로 우리 머리 위에서 벌어지는 불장난 때문에 조마조마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어제는 그런 김정은이 180도 달라진 날이다. 그를 보는 세계의 눈은 분명 달라졌다. <워싱턴포스트>의 표현대로라면 그는 이제 어엿한 ‘국제정치인’으로 첫발을 띤 셈이다. 얼마 전 그가 중국 시진핑을 만난 사실이 공개되긴 했으나 남북정상회담처럼 공개리에 추진된 회담은 아니었다. 판문점회담이야말로 김정은이 세계 외교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한 날이다.

비핵화에 대한 그의 생각이 정말 달라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의 속셈이 어떤 것인지는 아직 확인할 방법이 없다. 어제 회담에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명시하는 성과를 거두긴 했으나 구체적인 내용이 부족하다는 평가는 피할 수 없다. 물론 비핵화 문제는 북미회담에서 보다 구체화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비핵화 문제에 관한 한 미국과의 담판이 중요한 건 사실이다.

미국을 비롯해 세계가 원하는 것은 ‘한반도의 비핵화’다. 김정은도 자신의 권력이 안전하다는 보장만 있으면 ‘비핵화’에 동참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미국이 이것을 어떻게 보장해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동안은 북미간 상호 불신 때문에 지금까지 온 셈이다. 

‘북미간 상호불신’이라는 표현은 미국과 북한에 대해 공평하게 책임을 묻는 뉘앙스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체로 미국보다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이런 상황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북핵 전문가들이 각국의 책임을 비교해본다고 해도 미국보다 북한의 책임이 더 클 가능성은 있으나 보통 사람들은 북한 권력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갖는다. “저런 독재자가 약속을 지킬 리 있겠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어제 김정은의 말과 행동은 그런 이미지를 바꾸는 데 적지 않은 효과가 있을 것이다. 김정은으로선 무엇보다 중요한 소득이다. 재치 있으면서 농담을 즐길 줄 아는 한 나라의 지도자가 진성성이 묻어나는 말로 세상을 향해 “관심사 되는 문제들을 툭 터놓고 얘기하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지난 시기처럼 이렇게 또 원점에 돌아가고 이행하지 못하고 이런 결과보다는...”이라고 말하면서 협상을 요청한다면 물리치기 힘들다.

김정은 만만하게 볼 수 없게 된 트럼프

김정은의 본선 무대 상대는 미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에 관한 한, 한 치의 양보도 없을 것이라고 호언하고 있다. 김정은을 압박하는 외교적 수사로 보이나 미국의 입장이 그만큼 절박한 것도 사실이다. 수틀리면 미국 국민들 앞마당에 핵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깡패국가’가 등장했으니 무슨 수라도 내야 할 처지다. 그러나 판문점회담 솜씨로 본다면, 김정은은 트럼프가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다.

김정은은 어제 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명시한 합의문에 서명했다. 트럼트와 담판에서도 비핵화 약속을 명백히 할 게 분명하다. 그러나 비핵화가 약속대로 순조롭게 이뤄질지는 알 수 없다. 전문가들은 한반도 비핵화는 ‘신뢰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결국 미국은 북한을 믿어야 하고 북한도 미국을 믿는 수밖에 없는 문제다.

이 점에서 어제 보여준 김정은의 ‘개인기’는 중요한 요소다. 그동안은 북한 지도자들이 하는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곧이듣지 않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젠 달라질 수 있다. 일방적으로 미국 편을 들어온 사람들 중에도 김정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가 늘어날 수 있다. 물론 그 말이 합당하면 무조건 내칠 수 없다. 상황이 꼬이더라도 군사 옵션까지 거론하는 것도 이제 힘들어질 것이다.

김정은의 개인기는 비핵화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 수도, 반대로 수월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비핵화의 최대 관건은 어쩌면 그의 화술보다 자신의 정치적 능력이다. 핵이 아니어도 권력을 유지하면서 북한을 정상국가로 발전시킬 수 있 수 있다면 핵에 목숨을 걸 이유가 없다. 판문점 회담은 그 길로 가는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김정은을 세상 밖으로 이끌어낸 문재인 대통령의 공도 더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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