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33]
탈북자 [33]
  • 이광희
  • 승인 2018.04.27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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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충분히 알고 있으며,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눈치였다. 컹컹거리며 생담배 냄새를 맡기도 했고 코를 실룩거리며 방안의 찝찝한 냄새를 즐기기도 했다. 나와 따냐는 중간이 헤진 소파에 앉아 그를 기다렸지만 그는 회전의자에서 몸을 일으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구의 틈바구니에 숨어있는 바퀴 벌레처럼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눈을 내리깔았다. 내가 말을 먼저 꺼내지 않으면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채린에 대한 얘기를 끄집어냈다.

김 채린이라는 극동대 유학생의 실종…….”

.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돌아가서 기다리세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입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묻지 마세요. 나도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랍니다.”

그는 보기보다 오만했으며 행동은 불쾌감을 주었다. 성실한 답변이라고는 손톱만큼도 해주지 않았다. 내가 또 다시 말문을 열려하자 그는 더 이상 들어 줄 아량도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에게 밖으로 나가 줄 것을 요구했다.

나는 자리에서 신경질 적으로 일어섰다. 그가 거만 떨고 있는 꼬락서니를 지켜 봐 줄 수가 없었다. 아무리 낯모르는 외국인이 찾아 왔지만 저렇게 불손하게 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자 울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러나 따냐는 나와 사뭇 달랐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면서도 수사가 얼마나 진전을 보이고 있느냐고 찬찬히 물었다. 그녀는 그런 관료들의 행동에 잘 길들여진 사람처럼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질문을 계속했다. 그녀는 일방적으로 주는 음식을 받아먹으며 살아온 강아지같이 그의 비위를 맞추었다. 항의 같은 것은 아예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 같았다. 또 그는 따냐의 그런 행동을 즐기며 모든 것이 자신의 손에 달렸다는 듯이 거만을 떨었다. 나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혼자 말로 욕설을 내뱉으며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나는 오징어를 씹듯이 그를 질겅질겅 씹었다.

경찰서를 나서자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두 어깨가 축 쳐지며 천근의 무게를 느꼈다. 걸음을 옮기는 것조차 힘들었다. 아내의 실종을 경찰에만 맡긴다면 어떤 일도 이루어 질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따냐의 차에 오른 뒤 고개를 뒤로 젖히고 무거운 눈을 감았다.

 

나 선배는 따냐와 나를 블라디보스토크 외곽에 있는 작은 마을로 데려갔다. 그 마을은 정확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수리스크로 향하는 길을 따라 1시간 30분을 달린 뒤에 나타난 아파트촌이었다. 덜컹거리는 포장길을 따라 해 저문 광야를 미친 듯이 질주했던 탓에 그곳에 도착했을 때 승용차는 눈만 빠끔하게 뚫려 있었다.

4층짜리 아파트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조밀하게 자리 잡은 그곳은 집집마다 불을 밝히지 않아 사람이 살지 않는 동네처럼 보였다. 을씨년스런 밤공기가 해 저문 도시를 더욱 낯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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