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민의 정치레이더 17] 한반도 평화선언 매개 역할 ‘기대’

남북정상회담 만찬 메뉴인 당진 면천 두견주(왼쪽)와 서산 한우구이. 청와대 제공.
남북정상회담 만찬 메뉴인 당진 면천 두견주(왼쪽)와 서산 한우구이. 청와대 제공.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소통하는 일입니다. 밥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는 소통이자,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는 수단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유구의 세월동안 관습화된 인사말인 “밥 먹었느냐”, “언제 밥 한번 먹자”도 신뢰와 소통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또 식사 자리는요. 긴장감을 풀어주고 닫혔던 마음을 열어줍니다. 프랑스 태생 대법관 ‘쟝 앙텔므 브리야 샤바랭’은 <미식예찬>이라는 책에서 ‘피로를 동반하지 않는 유일한 쾌락은 먹는 즐거움이다’고 표현했습니다.

잠시 후면 65년 동안의 정전체제를 종식하고 평화체제로 전환을 알리는 남북 정상회담이 열립니다. 저녁 만찬에는 남북의 산해진미가 상에 올라갑니다. 충청도에서는 서산 한우구이와 당진 면천 두견주가 여러 무리 맛의 향연 속에서 그 우아하고 고결한 자태와 풍미를 뽐낼 것입니다.

서산 목장의 한우구이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소떼를 몰고 올라가 유명해진 서산목장의 한우를 이용해 만든 숯불구이입니다. 또 면천 두견주는 진달래 꽃잎과 찹쌀로 담근 향기 나는 술입니다.

회담장을 포함해 회담장인 ‘평화의 집’에 비치된 가구는 호두나무를 주재료로 사용했습니다. 청와대는 "휨이나 뒤틀림 없는 남북간 신뢰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는데요. 호두나무 산지(産地)가 천안 광덕산일까 싶어 사전 확인을 했습니다. 수입산(인도네시아)이더군요. 하긴 천안 호두나무는 열매를 따기 위한 재배용이지 건축 자재용 목재로 쓰이진 않겠지요.

잠깐 천안 호두나무 유래를 설명하자면요. 약 700년 전 고려 충렬왕 16년 9월 영밀공 유청신이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임금의 수레를 모시고 돌아올 때 어린 호두나무와 열매를 가져와 어린나무는 광덕사 안에 심고, 열매는 유청신 고향집 뜰 앞에 심었다고 합니다. 광덕사 호두나무가 우리나라 호두의 시초가 되었다 해서 천안은 호두나무 시배지(처음 심은 곳)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천안 광덕산 호두나무에서 따 만든 호두과자는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과정에 숨은 공신 역할을 했습니다. 지난 2월 김정은 국무위원장 친동생인 김여정 제1부부장 등을 포함한 북측 고위급 대표단이 청와대를 방문해 오찬을 했는데요. 이날 천안 호두과자는 후식으로 등장해 남다른 클래스를 선보였습니다.

김영남 최고위원회의 상임위원장은 호두과자를 맛보고 “건강식품이고 조선 민족 특유의 맛이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높게 평가했습니다. 천안 명물 호두과자가 이날 오찬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든 ‘감초’ 역할을 한 셈이지요.

저희 신문에 맛 집 기사를 연재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성희 푸드칼럼니스트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충청의 맛이 발휘할 역할에 한껏 기대감을 나타냈습니다.

“밥과 술을 나눈다는 건 식생활 문화를 같이 공유하는 것으로, 굉장한 친밀도의 표현이다. 밥과 술은 친밀도가 있는 사람들과 같이 먹는 것이다. 사람이 가장 친해지는 방법은 식사요, 더 친해지는 건 술을 같이 나누는 것이다. 정상회담도 마찬가지다. 두 정상이 남과 북의 음식을 공유하는 건 굉장한 화합의 의미가 담겨 있다. 정치나 이념에 앞서 음식부터 하나가 돼야 한다. 남북의 음식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이번 테이블에서 음식도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충청의 맛은 이번 만찬에서 화합을 위한 매개 역할을 할 것이다.”

대화는 ‘기록의 역사’로 남지만 맛은 ‘영혼의 기억’으로 남습니다. 남북 정상이 만찬 자리에서 전 국토의 진미를 맛보며 한반도의 평화를 약속했으면 좋겠습니다. 통일로 가는 역사적인 자리에서 ‘충청의 맛’이 일조하길 바랍니다.

신영복 선생님이 가장 좋아했다는 구절 중 하나를 소개하면서 글을 맺습니다. ‘언약(言約)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지금까지 남북정상회담 메인프레스센터가 설치된 일산 킨텍스 현장에서 류재민이었습니다.

*자료수집에 도움 주신 천안시 산림녹지과 박희권 주무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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