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영사는 내게 트집을 잡히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눈치를 살피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또 그는 구차 할 만큼 세부적인 수사 자료까지 일일이 내 보이며 자신들이 빈둥빈둥 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시키려고 애썼다. 그들은 채린을 찾는 일보다 수사상황을 어떻게 그럴싸하게 보고를 하느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나는 면담을 끝내고 사무실로 나왔다. 여전히 여름날의 한가로움이 졸고 있었다. 텅 빈 공간을 직원 한 명과 터벅머리 사내, 전화를 열심히 받고 있는 러시아여성이 지키고 있었다.

내가 막 영사관을 나서려 할 때 한 중년의 사내가 또 다른 낯선 사내와 함께 들어왔다. 그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외모였다. 힐끗힐끗 서리 낀 머리칼과 딱 벌어진 어깨, 어구적 거리는 걸음걸이, 말끝을 씹는 말투…….

나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나를 지나친 그도 내게 무슨 용건이 있는 사람같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눈빛이 마주쳤다.

이게 누구십니까?”

아니 이게 누구야?”

그는 대학 선배인 나정필이었다. 나와 동향인데다 학교 직계 선배여서 유별난 사이로 지냈다. 벌써 수년전의 일이지만 무관으로 해외 대사관 파견근무를 나오지 않았을 때는 일 년에 서너 번씩은 만났었다. 둘이서 밤을 새며 술통에 빠진 적도 있었고, 또 호기를 부리며 어깨동무를 하고 고함을 지르며 도심을 오간 적도 있었다. 그는 곧잘 술좌석에서 충성심 강한 국가관을 내뱉는 바람에 내게 빈정거림을 사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한결 같았다.

아니 장 기자가 여기 웬 일이야?”

나 선배야 말로 여기 웬 일입니까. 이리로 왔어요?”

굴러다니다 보니 이곳에 오게 됐지, 이곳에 온지 벌써 일 년이 넘었어.”

그래요?”

이러고 있을 일이 아니지. 내 방에 가서 차 한 잔 하자고. 이곳에서 만나니 유독 반갑구먼.”

그는 내 손을 덥석 잡고 총영사의 방과 마주보고 있는 자신의 방으로 나를 데려갔다. 총영사의 방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분위기가 아늑했다. 책상 위에는 장미꽃이 꽂혀 있었고 햇살이 숨어드는 창가에는 작은 화분이 앙증맞게 올려있었다.

이 방이 나 선배 방이오?”

그럼 남의 방에 들어왔을까 봐

그렇다면 직급이 부총영사?”

. 지난해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승진 했어. 늘 홀아비 신세지만 ……. 그런데 장 기자는 여기 웬 일이야. 여행을 이곳으로 온 것은 아닐 테고 러시아에 무슨 취재거리라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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