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눈] 특권과 반칙 없앤다던 정부의 민낯
청와대가 김기식(52) 금융감독원장의 사표를 17일 수리했다. 발단은 김 원장이 19대 국회의원 시절 피감기관 지원을 받아 다녀온 외유성 출장 논란이었다. 김 원장은 도덕성 문제는 인정하면서도 대가성은 없었다고 강변했다. 여론은 납득하지 못했고, 청와대는 대리인으로 나섰다.
청와대는 지난 1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김 원장을 둘러싼 각종 논란의 적법성 여부를 따지기 위한 질의사항을 보냈다.
질의내용은 ▲국회의원이 임기 말에 후원금으로 기부하거나 보좌직원들에게 퇴직금을 주는 게 적법한지 ▲피감기관의 비용부담으로 해외출장 가는 것이 적법한지 ▲보좌직원 또는 인턴과 함께 해외출장 가는 것이 적법한지 ▲해외출장 중 관광하는 경우가 적법한지 등 4가지.
문재인 대통령도 거들었다. 문 대통령은 이튿날(13일) 서면메시지를 통해 “김기식 원장의 과거 국회의원 시절 문제되고 있는 행위 중 어느 하나라도 위법이라는 객관적인 판정이 있으면 사임토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청와대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중앙선관위는 16일 김 전 원장이 국회의원 임기 말 자신의 정치후원금에서 5000만 원을 민주당 의원모임인 ‘더좋은미래’에 연구비 명목으로 한 기부가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문 대통령 ‘공언’대로 김 원장은 선관위 결정 직후 사의를 표명했다. 결과적으로 청와대의 ‘김기식 구하기’는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김 원장의 사표는 수리했지만 청와대가 입은 ‘내상(內傷)’은 크다. 임기 초부터 불거진 인사 문제가 취임 1년이 다 되도록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60~70%대 높은 국정지지율에도 인사 논란은 과거사 들추기와 함께 부정평가의 수위를 차지했다.
전가의 보도(傳家寶刀)식으로 강화된 인사원칙을 내놓았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또다시 국민들에게 적잖은 실망을 안겼다. 특히 전임 최흥식 금감원장이 하나은행 채용비리 의혹으로 6개월 만에 낙마한 점을 감안했다면 청와대 인사라인은 보다 더 철저한 검증의 잣대와 결단이 필요했다.
김 원장이 누군인가. 참여연대 출신으로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 입법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청와대는 3주일 전(3월 30일), 그를 금감원장에 임명하면서 ‘금융개혁의 적임자’라고 치켜세웠다.
때문에 도덕성에 문제가 생기고, 여당 내에조차 사퇴 요구가 있었음에도 청와대는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야당의 공세는 거셌다. ‘내로남불(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이라는 비판 여론도 고조됐다.
“특권과 반칙을 없애겠다”고 한 문 대통령의 약속을 믿었던 국민들의 기대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국회의원 외유 관행은 야당이 더 많다고 조사해 발표한 청와대 발표와 법적 유권해석을 중앙선관위에 의뢰하는 모습은 ‘사태의 본질’을 외면한 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17일 인사 검증의 실패냐는 질문에 “실패한 질문”이라고 답을 덮었다. 폐부를 찌르는 아픈 질문이었겠지만, 여론과 현실을 직시하며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정권 초기부터 이어지고 있는 ‘인사참사’, ‘내로남불’ 꼬리표를 뗄 수 없다. 인사 초기에는 인수위 없이 시작한 정부에 ‘면죄부’를 줄 수 있었는지 몰라도 이제는 아니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의 중간 평가 성격인 지방선거가 목전으로 다가왔다. ‘절대 권력’으로 정권을 잃은 자유한국당 대표실 판넬 글귀가 의미심장하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우리도 그래서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