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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을 찾는 까닭
재래시장을 찾는 까닭
  • 오정균
  • 승인 2018.04.13 1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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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법인 이정 대표 오정균]

세무법인 이정 대표 오정균(디트뉴스 자문위원).

집 근처에 백화점과 대형 마트가 두루두루 있어 어지간한 장보기는 다 그 곳에서 이루어지는 편이다. 가급적 무공해나 자연친화적으로 가꾼 먹거리를 챙기려 하는 아내는 가끔씩 그런 매장을 찾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를 통해 일상 용품이나 반찬거리를 장만한다. 어쩌다 한 번씩 아내를 따라 가서 카트를 밀고 뒤쫓다 보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이 이렇게나 많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물건들 중에 내게 필요한 것은 기껏해야 아내 눈치를 보아가며 카트에 골라 싣는 주전부리꺼리나 면도용품 정도이고, 그 외에는 갖고 싶다거나 필요한 물건들이 별로 없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그렇다보니 백화점이나 마트에서의 장보기는 여느 남자들처럼 별 재미가 없고, 지루할 뿐이다.

그러나 모처럼 큰 마음먹고 재래시장에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눈길 가는 곳마다 이것저것 사고 싶은 것들이 지천이다. 비슷한 것 같은데 값으로 치면 백화점 상품의 반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물건들이 사방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품질이야 그만 못할지 어떨지 모르지만, 그래도 백화점에서보다는 왠지 더 정감이 가고, 갖고 싶은 물건들이 수두룩하다. 둘러보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생각보다 싼 값에 사들기라도 하면 큰 횡재를 한 기분이다. 비단 물건들뿐만이 아니다. 재래시장 어디에나 있기 마련인 먹자골목에 들어서면, 익숙한 음식들 재래시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주전부리들에 연신 침을 삼키며 둘러보게 된다. 이런 까닭에 내게 있어 재래시장은 그 어느 데보다도 고샅고샅 둘러보는 재미가 참으로 쏠쏠해서 틈날 때마다 가서 둘러봐도 전혀 싫증이 나지 않는 그런 곳이다.

얼마 전 아내가 서울에 볼일이 있다며 역까지 태워다 달라기에 대전역으로 갔다. 아내를 배웅하고 나니 시간이 아주 어중간했다. 누구와 점심 약속을 하기에는 너무 늦고 어디 가서 혼자 밥을 먹기에는 다소 이른 시간이었다. 차라리 잘 됐다 싶어 역 건너편 중앙시장으로 갔다. 비좁은 길을 누비고 들어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시장 어귀에 들어서자니 푸근하면서도 뭔가 기대에 가득 찬 기분이 든다. 마치 어릴 때 공연히 흥분되어 시장에 가던 그런 기분 백화점에 갈 때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익숙하면서도 조금은 설레는 그런 느낌이다.

중앙시장에 들어서면 늘 그렇듯 어린 시절 자주 드나들던 골목을 우선 찾는다. 아직도 옛날 모습이 남아있는 양키시장 골목이 그곳이다. 오래 전 돌아가신 고모님이 가게를 열고 계시던 데라서 어느 곳보다도 익숙한 골목이다. 그 골목을 중심으로 휘하니 한 바퀴 돌아보면 없는 것 없이 온갖 게 다 있다. 옷, 모자, 신발, 양말, 가방, 우산, 양산, 그 밖에 각종 악세사리 등을 골고루 살펴 볼 수 있다. 그 뿐인가? 호떡, 찐빵, 만두, 순대, 떡볶이, 수수부꾸미, 파전, 붕어빵 등등 일일이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온갖 주전부리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그런 까닭에 한껏 느긋하게 이곳저곳에서 멈춰 서서 찬찬히 살펴봐 가며 시장을 누빈다.

시장 골목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며 구경하다 보면 어느 가게 앞에서는 옛날 생각에 발을 멈추고 한참을 서성거리게 된다. 오래 된 모자가게 앞을 지날 때면 돌아가신 아버님 정정하실 때 모시고 들어가 챙이 좀 넉넉한 여름 모자를 하나 사 드리던 생각에 눈시울이 시큰해진다. ‘두상이 작아서 쓸 만한 모자 고르기가 쉽지 않다’는 아버님 말씀에 사다리까지 타고 올라가 아버님께 맞는 모자를 찾아 주던 주인아주머니는 여전히 후덕한 모습으로 손님을 맞고 있어 가슴이 먹먹해진다. 옛날 과자를 파는 가게 앞도 그냥 지나치지를 못한다. 아버님 병원에 계실 때 군것질거리를 사다 드리려 자주 들락거렸던 곳이다. 아버님이 유난히 좋아하시던 박하사탕, 센베이과자, 땅콩과자를 두어 개씩 집어 우물거리다 보면 이제 다시는 뵐 수 없는 아버님 생각에 번번이 목이 멘다. 사람 좋은 주인아저씨는 속도 모르고 입에 맞지 않으면 안사도 좋으니 맘껏 드시라며 과자를 한 주먹씩 건네 공연히 사람을 더 울컥하게 만든다.

추억과 회상을 거두고 다시 골목을 누비다보면 때를 지나 배가 출출해진다. 이곳에 오면 곳곳에 먹고 싶은 음식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 한 가게에서 한 가지 음식만으로 배를 채우기에는 왠지 억울한 느낌이 든다. 그럴 때면 우선 팥죽을 한 보시기 먹되, 반 그릇만 퍼 달래서 맛나게 먹는다. 그 가게에서 파는 수수부꾸미도 딱 한 개만 사서 먹고, 옆에 있는 호떡가게로 간다. 호떡 한 개를 손에 들고 먹어 가며 다시 순대 골목으로 옮긴다. 순대골목에 가서 찰순대 한 줄을 사서 먹으면 이제 배가 잔뜩 불러진다. 아직도 입맛이 당기는 옛날식 찐빵, 만두는 아쉬움 속에 그냥 지나치며 다음에는 꼭 그것을 먹기로 하며 먹자골목을 벗어난다. 그렇게 배가 터지도록 사 먹어도 백화점에서 사먹는 짜장면 한 그릇 값의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불러진 배를 잔뜩 내밀며 시장골목을 나서다 보면 기분 좋은 포만감에 큰 부자라도 된 듯 넉넉한 마음이 된다. 아주 드문 일이지만 생각이 같은 친구들 서너 명이 만나 함께 어울려 시장을 돌기라도 하면 당연히 막걸리까지 더해져 왁자지껄하니 흥이 더 한다. 이런 재미를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야 어떻게 맛이라도 볼 수 있을까?

지내다가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고 무료해지면, 틈을 내어 혼자서라도 재래시장을 찾는다. 딱히 필요한 물건이 없어도 일단 시장 골목에 들어서서 둘러보다 보면 뭔가 꼭 필요할 것 같은 물건이 생기는 게 참 희한한 일이다. 그렇게 산 물건은 또 매번 유용하게 쓰게 되니 그것도 알다가 모를 일이다. 어쨌든 가끔씩은 일없이 시장에 들러 한 번 휘 둘러보다 보면 이런 저런 골치 아픈 일들이 까마득히 지워지고 뭔가 충전이 된 듯 기운이 나곤 한다. 살기가 팍팍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머리가 무거울 때면 혼자서라도 시장 순례에 나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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