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피로증후군, 본허표실(本虛表實)의 심각한 신체활동 제한 질병
만성피로증후군, 본허표실(本虛表實)의 심각한 신체활동 제한 질병
  • 손창규
  • 승인 2018.04.13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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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규의 과학으로 읽는 한의학

손창규 대전대학교 둔산한방병원 내과면역센터 교수.
손창규 대전대학교 둔산한방병원 내과면역센터 교수.

일전에 젊은 청년이 어머님과 함께 진료실을 방문하였다. 당시 군인으로 국방의무를 수행하고 있던 청년은 너무나 피로하여 군대의 일상생활을 하기가 어려웠다. 훈련이 세기로 유명한 해병대에 스스로 지원하여 들어갔던 청년은 자연스럽게 꾀병을 부리는 것으로 오해를 받았다. 모든 건강검진과 병원검사에서 아무런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청년은 수면 후에도 몸이 개운해지질 않았고 약간의 운동과 훈련 후에는 피로감이 온종일 지속되었다. 그러다보니 의욕도 없어지고 집중력도 감소하며 우울하여지기도 하였다. 바로 만성피로증후군(Chronic fatigue syndrome: CFS)이라는 병이었는데, 다행이 완쾌되어 정상적인 복무를 마쳤지만 그 때까지 어디서도 그런 진단 하에서의 전문치료를 못 받았던 상황이었다.

요즘 사회를 피로사회라고도 한다. 바쁘고 복잡하며 치열한 경쟁사회 구조는 현대인을 피로의 속으로 몰고 있다. 필자가 대전시민 2천2백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인의 약 45%가 만성적인 피로가 있다고 답하였다. 일반적으로 피로감은 누구에게서나 올 수 있다. 정신적 육체적 과로 후에 오는 피로감은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너무 무리하여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인데 따라서 대부분의 노동 후에 오는 피로감은 적절한 휴식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회복된다. 피로감이 6개월 이상 지속될 때를 만성피로라고 칭하는데, 이러한 만성피로를 설명할만한 신체적, 정신적 혹은 환경적 원인이 있다면 문제는 상대적으로 간단하다. 즉 심한 지방간이나 조절되지 않은 당뇨 혹은 종양치료와 같은 질병이나 우울증 과도한 스트레스, 야간에 일하는 직업 혹은 심한 비만 등은 가장 흔한 원인에 속한다.

하지만 이렇게 일반인들이 보편적으로 호소하는 “만성피로”와 “만성피로증후군” 은 비슷한 이름과 달리 사실은 매우 다른 질병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만성피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아침에 기상 후나 가벼운 산책 등을 하면 약간 개선되는 경향이 있는데, 만성피로증후군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다. 수면 후 아침에 재충전이 되는 감을 전혀 못 느끼고 가벼운 산책이나 정신활동도 피로감을 증가시킨다. 특히 기억력이나 집중력과 같은 뇌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많은 경우에 두통이나 근육통, 관절통과 같은 통증이나 의욕저하 및 우울감정을 호소하는 경우도 흔하여서 섬유근육통이나 우울증과는 분명히 구분하여야 한다. 의학적으로 만성피로증후군을 진단하는 기준은 아래와 같다.

피로의 원인을 설명할 만한 신체적, 정신적 원인이 없으면서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방해하는 심한 피로감이 6개월 이상 지속된다, 동시에 다음의 8가지 증상 중에서 4가지 이상을 가지고 있으면 만성피로증후군이라 한다.


① 육체적 혹은 정신적 활동 후 피로감이 24시간 이상 지속됨

② 아침 기상 후에도 상쾌해지지 않는 수면

③ 단기 기억력 또는 집중력의 장애

④ 근육통

⑤ 붓거나 발적이 없는 관절통증

⑥ 평소와 다른 양상의 두통

⑦ 목이나 겨드랑이의 딱딱하지 않게 커진 림프절

⑧ 자주 반복되는 인후부의 통증

일생에 피로감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필자를 포함하여 아무도 없다. 따라서 병명에 들어간 “만성피로”라는 단어가 본 질병의 심각성을 반감시키는 경향이 있어서 가족과 주변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의료인들에게 조차 정신력의 문제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겉보기에 멀쩡하고 모든 검사에서 완벽하니 그럴 만하기도 하다. 바로 위에서 서술한 젊은 군인의 예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속되는 피로감이 쉬거나 잠을 자도 개선되지 않고 일의 능률은 오르지 않는데 주변인들은 인정도 해주지 않는다고 상상해보자.

본 질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했던 어떤 여성 환자분은 '만성피로증후군' 이라는 진단명과 심각한 질병으로 인정해주는 필자의 설명을 듣고 진료실에서 펑펑 울기도 하셨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하여 2015년 미국의 의료 관련 연구기관들의 의뢰를 받는 의학연구소(Institute of Medicine)에서는 질병명을 "Systemic Exertion Intolerance Disease"로 바꿀 것을 제안하였다. 아직 한국말로 번역된 적도 없는데, 일종의 “총체적 활동불능증” 정도로 해석하면 될 듯하다.

본 질병은 후진국보다는 선진국일수록 증가하는 병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성인의 100명 중 1명 정도가 앓고 있을 것으로 추측하는데, 이는 유방암 유병율의 약 12배에 해당한다. 특이하게도 노동생산성이 활발한 연령인 30세~55세 사이에 가장 빈발한다. 나이가 어린 학생들에게도 당연히 발생하며, 여성이 남성보다 약 1.5배 많다. 아직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뚜렷한 치료법은 존재하지 않으나, 필자의 연구팀에서 한국 최초로 미엘로필이라는 신약개발을 시도하여 양방병원 한 곳과 임상시험 중이다.

전체를 보고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한의학적 장점이 매우 잘 적용되는 질병으로, 만성피로증후군은 본허표실(本虛表實)이라는 한의학의 전형적인 특이적 질병형태이다. 즉, 겉은 괜찮은 것 같으나 근본에 해당하는 뇌와 장부의 기혈은 극도로 허한 것을 말한다. 만약 중고등 학생이 본 질병을 앓고 있다면 공부는 차치하고 이른 시간에 학교에 그냥 다니기도 힘들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반복되는 검사로 너무 지친 후에 클리닉에 방문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빠른 진단과 병의 올바른 이해 및 전문가의 한방치료를 권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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