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창호의 허튼소리] 수필가, 전 충남 부여부군수

나창호 전 충남도 부여부군수(수필가).
나창호 전 충남도 부여부군수(수필가).

제법 오래 전에 공무로 뉴욕을 방문 했을 때, 하루 일정으로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들린 일이 있었다. 미국에 간 김에 관광을 겸한 견문을 넓히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테러 문제인가 무슨 일 때문에 백악관은 접근이 차단돼 먼발치에서 바라봐야 했지만,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의 항공우주관과 포토맥 강 넘어 알링턴 국립묘지, 한국전 참전기념 공원 등을 찾아봤었다. 한국전 참전기념 공원에는 완전 군장에 판초우의를 입고 우중을 행군하는 모습의 군인상(軍人像)들이 많이 서 있었다. 한국전이 그만큼 어렵고 힘들었음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됐다.

국가 이름도, 지구상의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 와서 5만4000여명이 전사하고, 10만3000여명의 부상자와 8000여명의 행불자를 냈으니 미국으로서는 얼마나 힘든 전쟁이었겠는가. 한국전 참전기념비에 새겨진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말과, 빗속을 행군하는 모습의 군인상들을 보면서 마음이 숙연해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한국전 참전기념 공원 인근에는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흑인노예를 해방시킨 링컨 대통령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거대한 석조건물 안에 5m나 되는 링컨 대통령의 대리석 좌상이 있었는데, 시선은 일직선으로 보이는 워싱턴 기념탑과 의회의사당을 향하고 있었다. 

링컨은 초등학교를 9개월 밖에 다니지 못했으면서도 많은 독서와 독학을 통해 변호사가 되었고, 하원의원이 되었으며, 끝내 대통령에까지 오른 위인(偉人)이다. 관용과 겸손의 리더십을 갖추었고 유머 감각도 풍부했다.

링컨 대통령이 어느 날 백악관에서 손수 구두를 닦고 있는데, 이를 본 비서들이 깜짝 놀라 “그런 일은 저희들에게 맡겨 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링컨은 계속 구두를 닦으면서 대통령이나 구두닦이나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며 “대통령이 구두를 닦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구두닦이가 대통령이 됐다.”고 생각하라고 말했다 한다. 이런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였기에 노예해방의 큰 역사를 이루지 않았을까. 

링컨이 젊었을 때 시내에 갈 일이 생겼는데, 가난한 그에게는 말도 마차도 없었다. 그런데 마침 마차를 타고 시내로 가는 노신사를 만나게 됐다. 링컨은 “죄송하지만, 제 외투를 시내까지 운반해 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노신사는 “그야 어렵지 않지만 시내에 가면 외투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링컨은 “그것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제가 그 외투 속에 계속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차를 얻어 타고 시내로 갈 수 있었다. 

선거 유세장에서 상대 후보가 “링컨은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라고 공격했다. 이에 링컨은 청중을 향해 “제가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면 오늘 같이 중요한 날, 이렇게 못생긴 얼굴을 가지고 나왔겠습니까?”하고 말했다. 큰 키에 깡마른 얼굴이 볼 품 없었던 그는 청중들을 웃겼고, 청중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유머로 받아친 것이었다.

필자가 이렇게 오래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링컨 대통령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어느 초보 운전자가 차량 뒤편에 붙인 글귀 때문이다. 며칠 전 시골에 있는 마늘밭 손질을 하고 차로 돌아오는데 곁을 스치는 자동차가 있었다. 박스형 차인데 차량 뒷 유리에 수염이 긴 갓 쓴 노인 얼굴 그림 밑에 “길을 비키시오. 나는 초보운전이오.”하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얼핏 시골의 나이 지긋하신 어른이 뒤늦게 운전면허를 따 운전하시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피식 웃음이 났다. 웃자고 붙인 유머 같기도 하고, 초보운전자이니 배려해달라는 요청 같기도 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처음 운전대를 잡고 도로에 나서면 초긴장을 하기 마련이다. 

필자도 초보운전 때 많은 긴장을 했었다. 전후좌우를 살필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운전하다 아찔한 경우를 겪기도 했고, 앞차가 갑자기 서거나, 뒤차가 너무 바짝 따라오면 당황하기도 했다. 그 때 초보운전자는 차량 뒤편에 일정한 규격의 ‘초보운전’ 표지를 붙이고 몇 개월 동안 운행하도록 규제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자율화되면서 아예 초보운전 표시를 하지 않고 다니는 차량이 있는가 하면, 앞차 같이 특이한 표기를 하는 차량들이 많아졌다. ‘왕 초보’나 ‘진짜 초보’ 같은 엄살형이 있는가 하면, ‘안에 아기가 타고 있어요.’라거나, ‘유사시 안에 있는 아이부터 구해 주세요.’같은 애교형과 부탁형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운전이 서투니 다른 차들이 조심하고 배려해달라는 의도를 담고 있다 할 것이다. 그렇잖아도 우리나라는 자동차 접촉사고율이 OECD 국가 중 1위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인도(人道)에서 교통사고율,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률,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률, 노인 교통사고 사망률도 1위라고 한다. 불명예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제라도 교통사고 줄이기에 함께 노력해야 한다. 특히 차량을 직접 다루는 운전자들이 앞장서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를 위한 한 방편으로 초보운전자들이 보다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좀 더 배려하고 양보하는 운전풍토가 조성됐으면 좋겠다.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올챙이 적 생각하고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사고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교통사고 없는(드믄) 나라가 선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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