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살림꾼..임시정부 재무차장 역임

일본 유학시절의 윤현진 선생 모습. 사진=독립기념관 제공.
일본 유학시절의 윤현진 선생 모습. 사진=독립기념관 제공.

독립기념관은 30일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4월 독립운동가에 윤현진(1892~1921) 선생을 선정,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4월 한 달간 개최한다.

경남 양산에서 태어난 윤현진 선생은 1909년 중국을 둘러보며 여러 독립지사들과 만나 체계적인 근대학문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1914년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과에 입학한 윤 선생은 조선유학생학우회의 임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반제국주의 비밀결사조직인 신아동맹당에 가입해 집회와 연설, 서적 배포 등 다양한 반일운동을 전개했다.

19816년 고국으로 돌아와 3년 간 대동청년단, 백산무역주식회사, 의춘상행, 기미육영회 등과 관계를 맺으며 비밀결사운동, 경제적 자립운동, 교육운동에 앞장섰다.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하이로 망명한 그는 임시정부 내무위원으로 선정돼 임시의정원 회의서 경상도위원으로 활동했다. 국내 항일세력과 연락을 위한 의용단을 조직하고, 독립신문을 발간하기 위해 독립신문사 발기인을 맡았다.

1921년 2월 임시정부 재무차장으로 선임돼 임시정부의 살림살이를 책임지기도 했다.

1921년 9월 독립운동에 혼신을 다한 윤 선생은 29세 젊은 나이로 순국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윤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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