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따냐를 앞세우고 기숙사 관리인을 만났다. 늙수그레한 얼굴에 백발인 그는 낯선 도시생활에 어울리지 않는 시골 노인의 모습이었다. 눈가에는 다감한 인정미가 묻어났다. 낡은 멜빵으로 흘러내리는 바지를 고정시킨 그는 흰 와이셔츠 사이로 때 묻은 내의의 소맷자락이 삐죽이 내다 보였다. 그는 따냐의 말을 한참 듣고 난 뒤에야 두터운 장부를 서랍에서 꺼내 책상 위에 펼쳤다. 기숙사에 들어있는 사람들의 사진과 이름 나이 국적 등이 꼼꼼하게 적혀있었다. 3001번으로 표시된 카드에는 채린의 사진과 신상관계가 세밀하게 적혀있었다. 채린의 방 주변 3003호에는 일본인 유학생 야마모토의 사진과 신상 기록이 있었고, 3007호에는 한국에서 온 방기승이라는 학생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녀의 방 주변에는 한국과 일본 필리핀 유학생 등이 거처했다.

하지만 이들은 아내가 실종되기 전에 이미 본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되어 있었고 다른 유학생들도 대부분 방학과 동시에 이곳을 빠져나간 것으로 기록 되어 있었다.

나는 터덜터덜 기숙사를 걸어 나왔다. 가슴에 납덩이를 단 듯 무거워졌다.

도심은 이미 검은 베일에 휘감겨 있었다. 숨구멍만을 빠끔히 터놓은 채 모든 것을 녹이고 있었다. 사람도, 건물도, 자동차도, 또 다른 어떤 것들도 베일에 싸여 허물허물 형체도 없이 녹아 내렸다. 각이 지고 툭툭한 건물들은 어느새 희미하게 앙상한 뼈대만을 드러냈고 사람들은 스며들어 자취를 감췄다. 따냐의 승용차만이 도심을 가로지르며 숨 가쁘게 매캐한 매연을 내뿜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계획이세요?”

도심을 가로지르던 따냐가 무거운 차안의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깨기 위해 말문을 열었다.

글쎄요.”

그녀의 물음에 무관심한 사람처럼 차창 밖만 넘어다 봤다. 그러면서도 내 머리 속에서는 아내를 어떻게 찾아야 할 것인가를 반복해서 되묻고 있었다. 미로를 찾아가는 무선 로봇같이 더듬거리며 채린이 갈만한 곳은 모두 기웃거렸다. 하지만 생각은 낡은 레코드판처럼 머릿속을 맴돌았다.

담배를 질긍질긍 씹은 것으로 미루어, 성격이 난폭하거나 외곬수인 놈일 거야. 또 니코틴이 한쪽으로 진하게 몰린 것으로 보아 성격이 급하고 정서적으로도 안정과는 거리가 먼 놈일 거야. 성격이 지극히 내성적인 놈일 수도 있고. 아무튼 담배꽁초를 버린 놈은 예사로운 놈이 아닐 거야. 담배꽁초에 지문이 묻어 있지는 않을까. 만약 지문이 묻어있고, 또 그 지문을 해독 할 수 있다면 그를 찾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텐데. 하지만 담배꽁초의 주인과 아내를 납치한 놈이 별개의 인물이라면 어떻게 될까. 담배꽁초를 버린 놈이 평소 채린과 친하게 지냈다면……. 아내를 강제로 기숙사에서 끌고 갔다면 기숙사가 조용하지는 않았을 텐데……. 평소 채린과 잘 아는 면식범의 소행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나무토막같이 앉아 있었다. 머릿속이 깨진 유리 조각같이 어수선 했다. 헝클어진 실타래의 가닥을 어디서부터 잡아 가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