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커튼을 걷어 젖히고 창문을 열었다. 그제야 신선한 바람이 방으로 급속히 밀려들었다. 낡은 책상 위에는 책이 그대로 펼쳐져 있었고 볼펜이 책 가운데 골에 연필과 함께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책상에 붙은 책꽂이에는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맥심 고리키의 고백같은 책들이 빼곡히 꽂혀있었다. 그 아래에 채린과 아들 그리고 나의 모습이 담긴 작은 갈색 액자가 놓여있었다. 사진은 두어 해전에 아파트 거실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그녀가 하얗게 웃고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책상을 어루만지며 다른 손으로는 안경 밑에 고인 눈물을 훔쳤다. 침대 난간 대에는 채린이 빨아놓은 속옷이 가지런히 주인을 기다리듯 널려있었고 키가 작은 스탠드 밑에는 내가 보낸 편지가 깨끗이 뜯긴 채 쌓여있었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아내의 속옷을 차곡차곡 접었다. 공항에서 그녀를 떠나보냈던 모습이 떠올랐다.

자기 너무 걱정 마.”

그럼…….당신은 잘 해낼 거야. 힘은 들겠지만…….”

우리의 미래를 위해 가는 거잖아.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기도 하지만......”

내 볼을 만지는 채린의 큰 눈이 축축하게 젖었다.

그곳에 가서는 무엇보다 몸조심해야 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알아요. 그런데 관이를 어떻게 .......”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 당신이 없는 동안 씩씩하게 키워놓을 테니까. 당신이 공부를 마치고 돌아올 때쯤이면 많이 어른스러워져 있을 테니까.”

자기 사랑해.”

채린은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닦으며 내 품안에 덥석 안겼다. 따뜻한 볼이 얼굴에 느껴졌다. 한동안 느끼지 못할 아쉬움이었다.

자기도 나 사랑하지?”

그럼…….아이처럼 이러지 말고 어서 들어가. 탑승시간이 다됐잖아......”

목이 멨다.

 

채린이 긴 복도를 따라 달려올 것 같았다. 유학생들과 어울려 배낭여행을 다녀온 뒤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계단을 콩콩 뛰어 오를 것 같았다. 종종 걸음으로 복도를 구르며 오고 있다는 환청을 느꼈다.

하지만 채린이 빈 방만을 덩그렇게 남겨둔 채 어디론가 멀리 갔다는 생각이 싸늘하게 만져지자 갑자기 가슴이 답답했다. 아내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끓어오르는 울음을 속으로 삭히며 어깨를 떨었다.

별일은 없을 거야. 그럼.’

나는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닦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무슨 기발한 생각이라도 떠오른 듯 채린의 책상과 자료집 등을 뒤졌다. 또 방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책 밑에 가지런히 놓인 메모지에는 강의일자 등이 깨끗이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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