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걱정을 끼쳐드려서.......”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채린에게 무슨 일이야 있겠습니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아내를 믿거든요.”

나는 애써 태연한척 했다. 따냐의 마음을 더 이상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이내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내가 조금만 더 울적한 표정을 짓는다면 그녀는 식탁에 엎드려 펑펑 소리를 내며 울어버릴 것 같았다. 축축하게 젖은 눈알이 시선을 잡지 못한 채 흔들렸다. 조용히 앉아 어깨를 떨었다. 나는 따냐와 별다른 대화 없이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고 차를 마셨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섰다.

 

[4] 채린의 방

 

채린의 방은 극동대 사회과학대 뒤편에 있는 외국인 기숙사에 있었다. 어학연수 코스에 들어있는 외국인이나 교환 교수들이 쓰는 공간이었다. 10층으로 솟은 기숙사는 여러 개의 주사위를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처럼 반듯했다. 각방마다 경계선이 명백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건물이 무너져 내린다면 한개 한 개의 방들이 제각각 떨어져 내릴 것 같았다.

콘크리트 빛이 선명한 기숙사는 각 방마다 같은 크기의 창문이 붙어 있었다. 기숙사로 들어가는 통로는 햇살무늬 철창이 굳게 쳐진 현관을 지나서였다.

나는 따냐의 뒤를 쫓아 3층 복도를 따라 들어갔다. 나무 판제를 촘촘히 깔아 만든 복도는 우리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걱댔다. 숱한 사람들의 구두 굽에 복도는 잘 닳아 있었으며 조명 시설은 어두컴컴했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손때 묻은 방문이 촘촘하게 늘어서 있어 3류 호텔 객실을 연상 시켰다.

따냐가 걸음을 멈춘 곳은 복도의 끝에 붙은 작은 방 앞에서였다. 방문에는 3001이란 번호가 딱지같이 달라붙어 있었다. 채린의 방이었다.

따냐는 방문 앞에 서서 한발 뒤로 몸을 물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노크를 했다. 채린이 놀란 표정으로 왈칵 문을 열고 뛰어 나올 것 같았다. 그녀가 내 볼을 비비며 매달릴 것이란 환상 속에 무의식적으로 허리를 뒤로 젖혔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방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싸늘하게 식은 도어 록을 잡고 문을 열었다.

채린의 방은 하나의 공간으로 여덟 평 남짓 했다. 입구에 화장실과 세면실이 앙증맞게 붙어있었고 그 안쪽에 혼자 눕기에 꼭 맞을 침대가 핑크빛 시트에 싸여 있었다. 두터운 커튼이 쳐진 창가에는 모서리가 둥글게 처리된 책상이 놓여있었다. 벌써 여러 날 문을 굳게 닫아놓은 탓에 눅눅한 냄새가 배어있었다. 채린의 우윳빛 냄새는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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