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약간 마른 체격 이었지만 언제나 선홍빛 입술과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사람을 대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거미발같이 긴 손가락에는 러시아산 호박 반지를 끼고 있었지만 결코 천해 보이지 않았다.

특히 그녀의 엷은 갈색 눈은 마주보는 사람의 마음을 깊이 빨아들이는 흡인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결코 헤퍼 보이지 않았다. 내가 그녀를 알게 된 것은 2년 전이었다. 이곳에 취재차 왔을 때 그녀는 기꺼이 가이드를 맡아 주었다. 때문에 나는 그녀와 보름간의 시간을 거의 같이 보냈었다.

더욱 내가 그녀를 가깝게 느껴온 것은 채린을 극동대에 유학 보낼 때, 그녀가 거의 모든 뒷일을 처리해 주었기 때문 이었다. 서로 매일 전화를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녀를 늘 가까이 지내는 좋은 여자 친구 쯤으로 생각했다. 또 아내가 곧잘 편지로 따냐의 얘기를 들려주었던 탓에 늘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꼈다.

내가 그녀를 따냐라는 애칭으로 친근감 있게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녀의 본명은 따찌아나 이었지만 도리어 따냐라고 부르기를 원했다.

나는 그녀와 악수를 나누고 호텔 후미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그 곳에는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몰려든 투숙객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선수 쪽 레스토랑이 사건 직후 폐쇄된 뒤 모두들 이곳으로 몰려 붐볐다. 좀 더 게으른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룸에서 식사를 시켜 먹었다.

호텔 후미에 있는 레스토랑은 앞 쪽에 있는 그 것보다 공간이 작은 탓인지 후덥지근한 열기와 뽀얀 담배 연기가 뻑뻑하게 고여 있었다.

투숙객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그날 있었던 사건을 안주 삼느라 시끌벅적했다. 여종업원을 살해한 사내의 얘기를 할 때마다 탄성을 토하며 치를 떠는 모습이었다. 다행히도 그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 사건에 대해 내게 말을 붙여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따냐와 함께 빈자리를 찾아 구석진 곳에 앉았다. 그녀는 자리에 앉은 뒤 한동안 말이 없었다. 커피 잔의 언저리만을 만지작거렸다. 2년 만에 만난 시간적 거리감이 우리 사이를 적당히 떼놓고 있었다. 전화 통화를 했을 때는 매일같이 가까이 지내던 친구 같았지만 막상 얼굴을 맞대자 친근감 뒤편에 도사리고 있던 낯선 감이 선뜻 다가섰다. 그런 감정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만난 연인들 간의 서먹함과 어색함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따냐가 말문을 연 것도 그런 어색함이 한참동안 지속되고 난 뒤였다.

죄송합니다. 그날 이곳에 와서 장 기자님께 변이 생긴 줄 알았습니다. 호텔 종업원들이 울부짖는 소리와 사람이 죽어 있는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죠. 하지만 호텔 종업원들에게 물어본 뒤에야 안심을 했습니다. 고생이 많으셨지요.”

그녀는 내가 경찰에 연행됐던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말을 띄엄띄엄 내뱉으면서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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