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이름이 있고 사물에도 명칭이 있으며 일에도 종류에 따라 제목이 붙는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무슨 이름을 붙이든 짓는 자의 자유다. 혐오감을 주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이름만 아니면 상관없다. 그러나 가급적이면 이름의 주인공이나 그 내용이 잘 드러나야 좋은 이름이다. 마땅한 사정이 있는 게 아니면 남자 아이에게 굳이 여자 이름을 쓸 이유가 없다. 

어렸을 적 남자 친구들 중에 ‘◯◯순’이란 이름이 꽤 있었다. 남자 아이인데 왜 여자 이름을 썼을까 궁금하였다. 나중에 ‘순’의 의미를 알고 이해가 되었다. 독립운동가 ‘김창숙’의 이름도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 남자 이름에도 ‘순’이나 ‘숙’이 쓰이는 이유를 끝내 모르는 사람은 여전히 이상하다고 느낄 수 있다.

사람 이름에서 오는 혼돈은 개인적인 문제에 그치지만 공공정책의 명칭이나 선거 구호에서 빚어지는 혼란은 사회적 낭비다.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 가운데 ‘행복주택’이란 게 있었다. 젊은층의 주거 불안을 해소시켜 행복하게 해준다는 의미로 붙인 것 같다. 그러나 행복주택이란 이름만 가지고는 어떤 주택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공급 방식에 대해서도 공급 대상에 대해서도 정보가 없는 정책명이다.

행복주택 대신 ‘신세대 주택’으로 명명하는 게 정책의 홍보 측면에선 나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집 걱정을 하는 신세대가 한 명이라도 더 관심을 가질지 모른다. ‘행복주택’은, 박근혜 정부가 신세대 젊은이들에게 행복을 주고 있다는 선전 효과를 기대한 명칭이었을 것이다. 상품에 대한 정보보다 정부를 홍보하기 위한 명칭이다. 신세대라면 인터넷 등을 통해 행복주택에 대한 정보를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는 경우는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행복주택’과 충남도의 ‘행복’ 슬로건

그러나 이런 명칭과 구호가 아무 내용도 없이 그저 정치인의 이미지 홍보용으로만 쓰인다면 적지 않은 낭비다. 누구 아이디어인지 모르지만 충남도에는 ‘행복’이란 구호가 가득했다. ‘행복한 변화, 새로운 충남’은 충남도의 도정 구호다. 충남도 홈페이지는 ‘행복’으로 도배하다시피했다. 각종 정책마다 ‘행복’이 빠지지 않았다. 대기업에서 이웃돕기 연탄을 기증받아도 ‘행복연탄’이었고, 직원조회의 이름조차 ‘행복한 직원만남의 날’이었다.

‘행복’ 구호에서 어떤 효과를 기대했을까? ‘도민들이 힘을 합해 행복한 도(道)로 만들어가자!’는 캠페인의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또 남들에게 ‘충남도는 행복한 도(道)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충남도청 직원조회는 지루하지 않고 직원들이 행복하답니다!’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 도정에 활기가 넘치고 행복한 변화가 일어나는 듯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제3자에게 그런 느낌을 줄지는 모르나, 구호 때문에 도민들과 직원들이 ‘행복’을 위해 더 노력하는 것은 아니고, 더 행복해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행복은 누구나의 목표지만 그것을 구호로 쓰지는 않는다. 충남도가 차라리 ‘지역경제를 살리자’ ‘건강한 충남도민’ 등을 구호로 내세웠다면 경제발전이나 건강증진을 통해 도민들의 행복을 늘리는 데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었을지 모른다. ‘행복’ 구호는 도민들을 행복하게 하는 데 아무 도움이 안 된다. 행복이란 개념이 추상적이어서 정책 목표로 삼기도 어렵다. 정책 슬로건으로 강조되는 ‘행복’은 이 구호를 외치는 정치인 자신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밖에 없다. ‘내가 시장(도지사)이 되면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인상을 주는 데 그친다. 

대통령은 하루 24시간 ‘국민의 행복’을 위해 뛰는 사람이고, 대전시장은 ‘대전시민의 행복’을 위해, 충남지사는 ‘충남도민의 행복’을 위해 뛰는 사람이다. 그런데 굳이 ‘행복’으로 구호를 삼을 필요가 있을까? 대통령이든 시도지사든 국민과 시도민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아이디어와 정책을 구호로 삼아야 정상이다. 그런데도 ‘행복’만 외치고 다닌다면 그는 시민행복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마땅한 수단과 능력이 없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정치인이 좋은 이미지를 얻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어떤 구호인들 마다할까마는 ‘행복’만을 강조한다면 무능한 후보로 비쳐질 수 있다.

지방선거 후보들은 ‘행복’ 말고 자신의 ‘황금’을 팔아야

지구상의 모든 정부에서 시행하는 정책 가운데 국민 행복을 파괴시키기 위한 정책은 없다. 진실성의 문제는 있을 수는 있으나 모든 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국민의 행복 증진에 다름 아니다. 행복의 내용은 지역마다 시대마다 다를 수 있다. 어떤 도시는 환경 문제가 더 중요하고, 어떤 지방은 경제 문제가 더 중요하다. 충남도민들의 행복 조건과 대전시민들의 행복 조건에 따라 후보들의 선거 구호도 달라지게 돼 있다.

대전시장과 충남지사 후보들은 대전시민과 충남도민들이 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하고 여기에 걸맞는 공약을 내야 한다. 공약 내용과 실천 방법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행복만을 강조하는 후보가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무능한 후보다. 유능한 신랑은 신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황금’을 가지고 있다. 그 신랑은 신부에게 ‘행복’만을 강조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 가진 황금을 신부에게 보여줄 것이다. 말로만 ‘행복’을 약속하는 신랑이면 신부를 행복하게 해줄 ‘황금’은 없는 게 분명하다. 후보들은 ‘행복’만 외치지 말고 자신의 ‘황금’을 유권자들에게 말해주어야 한다.

고시생 책상 앞에 내걸린 ‘합격’ 구호는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좋은 수단이다. 그러나 정치인이 외치는 ‘행복’은 그 자신의 이미지 개선 말고는 영양가가 없는 구호다. 선거에서 이미지는 중요하지만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미지는 깨지기 마련이고 유권자를 행복이 아니라 불행으로 이끌게 되어 있다. 대전도, 충남도 ‘행복’이란 말이 도처를 장식하고 있으나 작금 상황을 보면 시도민의 행복은 되레 멀어지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행복’을 무기로 쓰려는 후보들이 있다면 고민해야 할 문제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