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적 행동에 관한 고찰
고의적 행동에 관한 고찰
  • 김경훈
  • 승인 2018.03.1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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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률용어 중에 미필적 고의라는 말이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어떤 결과가 발생 할 것을 인식하면서도 그러한 결과가 발생해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상태.’ 예컨대 이런 경우다. 보험금을 탈 목적으로 자기 집에 불을 지르려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행위로 옆집에 사는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예견하면서 죽어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방화하는 경우다. 이때 고의성이 범죄성립의 중요한 요건이 된다. 사람들은 말한다. 세상은 혼자 살수 없다고.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우리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있다. 누군가는 그걸 에티켓이라고 부른다. 쓰레기 버리지 않기, 애완견 목줄 채우기, 교통신호 지키기 등. 그런데 만약 나의 고의성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불쾌하다면? 그러면 멈춰야 하지 않을까?

화창한 토요일 오후, 친구들과 계족산 황톳길을 찾았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꼭 가봐야 할 100선에 뽑힌 계족산. 우리 지역에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우리는 황토 위를 맨발로 걸으며 봄을 만끽했다. 물렁물렁한 느낌이 발바닥에 닿자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우린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는 운동장에서 맨발로 축구도 하고 그랬잖아. 맞아, 목이 마르면 수도꼭지를 손으로 쓱쓱 문지르고 벌꺽벌꺽 물을 마시기도 했지.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에서는 물을 사먹는다고 그랬잖아. 그런데 이젠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으니.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산을 올라가고 있을 때, 위에서 내려오던 오십대 남자와 내 눈이 마주쳤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우리와 같은 차림새가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는 맨발이었지만 그는 신발을 신은 채였다.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처럼 그가 지나온 길마다 등산화 무늬가 위에서 아래로 푹푹 찍혀 있었다. 그의 못마땅한 행실에 나는 화가 치밀었다. 신발을 신었다면 당연히 맨땅으로 가야 하지 않은가. 물론 그것이 헌법에 나와 있진 않지만 그건 우리끼리의 약속이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예의범절이며 신발을 신은 사람은 황토 위를 걷지 말라는 안내문도 곳곳에 붙여 놓았다. 나는 등산복차림의 오십대 남자를 노려보았다. ‘예의 좀 지켜주시죠라는 눈빛으로. 하지만 그는 내 따가운 눈총에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유유자적한 얼굴로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의 뒤통수에 대고 말하고 싶었다. 제발 예의 좀 지켜달라고. 하지만 내 목소리는 입안에서 맴돌 뿐이었다. 나는 그날 그 사람 외에도 제2, 3의 등산화를 황토위에서 만났다.

비슷한 경우는 또 있다. 공원이나 등산로에서 휴대용 음향기기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은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크게 듣는다. 이 역시 고의적행동이다. 자신은 좋을지 몰라도 타인은 그걸 싫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머리를 식히기 위해 산을 찾았거나, 심난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공원을 걷는 사람에게는 음악이 소음이 될 수 있다. 누군가는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러냐, 그쯤은 이해해 줄 수 있지 않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 말에 일리는 있다. 그러면 등산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음악을 듣는다면 어떤 현상이 생길까. 아마 헤비메탈과 트로트가 부딪치고, 비틀즈와 싸이의 목소리가 온 산에 메아리칠 것이다. 이것이 좋은 현상일까. 나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음악을 듣고 싶다면 이어폰을 이용하자. 그것이 타인에게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다.

얼마 전 나는 반대의 경우도 경험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만 고의성이 없는 행동이었다. 대전한밭도서관은 왕복 이차선의 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아파트와 마주 보고 서있다. 주말이나 평일 오후가 되면 이 도로로 과일이나 생선을 파는 트럭이 어김없이 지나가고 트럭에서 틀어 놓은 확성기 소리가 아파트를 향해 날아간다. 비린내가 나지 않는 맛있는 국내산 고등어가 왔어요. 짜지 않은 고등어를 깜짝 세일하고 있습니다. 싱싱한 고등어를 맛볼 수 있는 기회! 바로 지금입니다. 확성기 소리는 도서관의 열린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열람실에 울려 퍼진다. 그로 인해 칸막이 좌석 곳곳에 숨어 있던 시선들이 일제히 고개를 든다. 그러나 누구도 짜증을 내는 사람이 없다. 고의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쪽은 알지만 저쪽은 모르는 차이. 아마도 트럭주인은 자신의 차량에서 나오는 확성기 소리가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줄은 모를 것이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중에 하나는 타인을 생각하는 배려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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