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세계속으로 58]

1. 로마시내 관광도.
1. 로마시내 관광도.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가장 중심지는 ‘베네치아 광장(Piazza of Venezia)’이다. 베네치아 광장은 이탈리아 반도와 발칸반도 사이에 있는 아드리아 해의 여러 섬들로 구성된 ‘물의 도시’ 베네치아 공화국이 1861년 이탈리아 통일 전까지 로마에 설치했던 대표부 건물인 베네치아 궁(Palazzo di Venezia)이 있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2. 통일기념관과 임마누엘2세 동상.
2. 통일기념관과 임마누엘2세 동상.

지중해를 통한 해상무역이 발달했던 베네치아 공화국은 800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기독교를 전도하다가 죽은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산마르코(Saint Marko, 영어식으로는 Mark)의 유해를 모셔 와서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으로 삼고, 베네치아 중심지에 산마르코 성당을 지었다. 그런데, 1455년 산마르코 성당의 피에트로 바르보(Pietro Barbo) 추기경이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의 주임사제로 부임하게 되면서 거주하던 저택을 그가 1464년 교황 바오로 2세(Pope Paul Ⅱ)가 되자 더욱 크게 확장해서 ‘베네치아 궁’이라고 불렀다. 그 후 100년이 지난 1564년 베네치아 궁의 일부를 베네치아 공화국의 대사관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궁전 앞을 ‘베네치아 거리’라고 불렀는데, 베네치아 궁은 1925년 2차 세계대전을 저지른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1883~1945)가 20년간 살았던 공관이기도 하다. 대장장이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자신의 비천함을 내세우고 '인민의 아들'을 자처하면서 뛰어난 대중연설로 군중을 휘어잡아 최연소 이탈리아 총리에 올랐으며, 1936년 베네치아 궁 3층 발코니에서 2차 세계대전의 개전을 선언하여 베네치아 궁이 더욱 유명해졌다. 베네치아 궁은 현재 르네상스시대의 유물을 전시하는 국립 베네치아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베네치아 궁 길 건너에는 건물의 색깔만 달리하였을 뿐 베네치아 건물과 똑같이 지은 건물이 현재 아랍은행으로 사용되고 있다.

2-1. 통일기념관 오른쪽.
2-1. 통일기념관 오른쪽.

‘베네치아 거리’는 베네치아 궁의 남쪽 포로 로마노(Foro Romano)로 올라가는 가파른 비탈길을 다듬어서 통일 이탈리아 초대 황제 에마뉴엘 2세 기념관을 지은 뒤 ‘베네치아 광장’이라고 하는데, 오늘날 베네치아 광장의 랜드 마크는 베네치아 궁이 아니라 ‘에마뉴엘 기념관’이다. 이탈리아는 1860년 초까지 사분오열되었다가 청년장군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 1807~ 1882)가 남부를, 에마뉴엘 2세가 북부를 각각 통일한 후 1861년 마침내 두 영웅이 협상 끝에 비토리오 에마뉴엘 2세(Vittorio Emanuele II: 1820~1878)가 통일왕국의 첫 황제가 되었는데, 에마뉴엘 2세 기념관은 그의 사후인 1885년에 착공하여 25년만인 에마뉴엘 3세 때인 1911년 통일 50주년에 맞춰서 준공되었다.

3. 베네치아궁.
3. 베네치아궁.

기념관은 포로 로마노 쪽의 가파른 비탈지대를 다듬어서 수십 계단을 만들어서 지었기 때문에 한층 더 높은 성벽처럼 보이는데, 이곳은 로마 시내 중심지여서 외국인들에게는 로마를 확실히 알게 하는 광장이자 기념관이지만, 정작 로마인들은 로마의 다른 역사적 유적들과 어울리지 않게 타자기 자판과 비슷하다느니, 웨딩 케이크 같다는 등의 비난을 많이 했다. 기념관 앞에는 높이 12m인 에마뉴엘 2세의 기마상이 우뚝 서있고, 옥상 양쪽에는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 여신(Goddess of Victoria)이 네 마리의 말이 이끄는 마차에 탄 기마상이 있다. 왼쪽은 노동의 승리(Triumph of Work), 오른쪽은 애국심의 승리(Triumph of Patriotism)를 상징한다. 에마뉴엘 2세 기마상 아래의 대석 벽면에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조각가 안젤로 자넬리(Angelo Zanelli)가 로마의 여신(Goddess Roma)을 음각하였으며, 계단 아래의 분수대는 오른쪽이 ‘티레니아 해’, 왼쪽이 ‘아드리아 해’를 상징한다.

3-1. 베네치아광장의 로마의 휴일.
3-1. 베네치아광장의 로마의 휴일.

로마의 여신상 앞에 병사 2명이 지키고 있는데, 이것은 기념관 지하에 2차 대전 중에 전사한 무명용사 무덤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일 년 내내 꺼지지 않는 불을 밝히고 있다. 기념관 입장료는 4유로인데, 이곳에는 무명용사의 묘 이외에 이탈리아 통일역사 연구소, 통일박물관, 도서관 등이 있다. 베네치아 광장에서는 매년 6월 2일 통일 기념행사를 거행한다.

베네치아 광장은 여의도광장이나 서울광장처럼 넓은 공간이 아니라 이층버스며 온갖 자동차는 물론 마차․ 오토바이가 뒤섞여 다니는 네거리 로터리 정도이고, 베네치아 광장 남쪽에 우뚝 솟은 에마뉴엘 기념관 뒤는 고대 로마를 꽃피웠던 캄피폴리노와 팔라치노 언덕이다(포로 로마노에 관하여는 2017.01.06. 참조).

4. 트레비분수.
4. 트레비분수.

베네치아 궁의 북쪽 지대는 로마 제국의 도시가 발달했는데, 이곳에서는 ‘삼거리’라는 의미의 트레비(Trevi)가 중심지이다. 1726년 피렌체 출신의 교황 클레멘스 13세가 의욕적인 로마 재개발계획의 하나로 삼거리에 거대한 트레비 분수(Fontana Trevi, Trevi Fountain)를 만든 것이 오늘날 로마 시내의 상징이 되고 있다. 분수의 물은 넓은 바다를 상징하고, 분수 한 가운데에는 대양(大洋)의 신 오케아노가 바다의 신 트리톤이 이끄는 마차에 올라탄 조각상이 있으며, 포세이돈의 양 옆에는 바다의 신인 반신반인(半神半人)의 포세이돈의 두 아들이 나팔을 불며 마차를 끌고 있다. 거대한 말과 말을 다루는 인간들이 좌우로 있는데, 그중 왼쪽 순한 말과 오른쪽은 거친 말은 바다의 평온함과 험한 성질을 나타낸다고 했다(트레비 분수에 관하여는 2017.01.20. 참조).

2001년 이래 세 차례 서유럽을 여행하면서 가이드 없이 로마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로마 여행을 하려고 한다면 먼저 ‘로마여행의 가이드북’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을 DVD나 케이블 방송에서라도 필히 감상할 것을 적극 추천한다. ‘로마의 휴일’은 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로마의 문화유산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하여 1953년 그레고리 팩과 신인여배우 오드리 헵번이 주연하고 윌리엄 와일러(William Wyler)감독이 제작한 영화로서 가상 왕국의 공주와 미국의 로마주재 신문기자 사이의 우연한 인연으로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는 형식으로 로마의 유적과 유물을 자세히 소개했는데, 오드리 헵번은 이 영화 한편으로 1953년 뉴욕 비평가협회상 여우주연상을 비롯하여 1954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영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하면서 일약 일류배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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