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법인 이정 대표 오정균]

세무법인 이정 대표 오정균(디트뉴스 자문위원).
세무법인 이정 대표 오정균(디트뉴스 자문위원).

설을 쇤지 한참이 지났다. 대보름날 부름을 깬지도 열흘 남짓 되어 이제 그믐께니 정초 기분이 사라진 지도 오래다. 어릴 적 기억으로는 설 쇠고 사나흘 정도는 종일 세배와 성묘로 날을 보냈던 것 같다. 그 기간 중에 하지 못한 성묘나 세배는 늦어도 대보름 이전에는 반드시 챙겨서 빠짐없이 해야만 했고 혹시 보름이 지나도록 동네 어른들 중 누군가에게 세배를 빠뜨려 먹기라도 하면 ‘천하에 버르장머리 없는 놈’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어서 집집마다 꼬박 꼬박 찾아다니며 세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요즘에는 명절이 단지 설날 하루에 그치고 나머지 날들은 그냥 연휴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 같아 아쉽고 씁쓸한 느낌으로 설을 맞고 보내게 된다. 듣기로 어떤 집에서는 설 연휴를 틈타 놀러간 관광지에서 약식으로 차례를 모시기도 한다니 이런 느낌을 갖는 내가 시대에 뒤처진 꼰대처럼 여겨질 법도 하다. 이런 풍조에서 아직까지는 차례만큼은 격식을 갖추어 모시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솔직히 아내의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설날이 되면 예전 같이 왁자지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집안 식구들 대부분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차례 상을 물린 후 세배를 한다. 연장자 순으로 차례차례 세배를 올리고 받으면서 그 간의 소식을 챙겨가며 덕담을 나눈다. 아버님 작고하신 후 이제 숙부님을 제외하고는 내가 제일 연장자인 셈이라서 세배 돈을 준비하는 것도 수월한 일이 아니다. 차례와 세배가 끝나면 서둘러 아침을 먹고 이내 뿔뿔이 흩어져 각기 바쁜 걸음들을 재촉한다. 명절 당일 아침에 모여 잠깐 동안 얼굴들을 보고는 바로 헤어지는 것이다. 그나마 이처럼 모이는 것도 언제까지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속이 하도 빠르게 변하니 예전 풍습이 언제 어떻게 변하고 사라질지 알 수가 없는 기분이다.

예전 우리 어릴 적에야 어디 이랬는가? 명절 며칠 전부터 설레며 명절을 맞고, 명절 지나고도 한참을 명절 기분에 들떠 지내던 그런 시절이었다. 명절 임박해서는 무엇보다도 설빔 때문에 장날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다행히 새 바지라도 한 벌 얻어 입게 되어 짧아져 깡똥해진 바짓단 때문에 놀림거리가 되었던 바지를 동생에게 물려주어 버리고 나면,몇 날 며칠이고 흐뭇해서 학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막상 설이 되면 아침 일찍부터 바빴다. 우리 집이야 차례가 없어 큰 집에 가서 차례를 지내면 될 뿐이니 바쁠 일도 없었지만, 큰 집에 차례 모시러 가기 전에 작은 숙부와 함께 둘이서 해 놓을 일이 있어서였다. 바로 할아버지께서 성묘하실 산소에 짚을 깔아 놓는 일이었다. 해소병을 앓고 계시던 할아버지께서는 먼 데 있는 산소, 높은 산에 자리한 산소에는 못 가시고 집 가까이 있는 산소 몇 군데에만 성묘를 다니셨는데 바로 그 산소 앞마당에 지푸라기를 깔아 놓는 일이 설날 아침에 우리가 우선 해 놓아야 할 일이었다. 설 전날 깨끗한 짚단을 골라 지저분한 검불을 추려내고 말끔한 지푸라기를 미리 준비했다가 설날이면 이른 아침부터 지게에 짚단을 얹고 집을 나섰다.

입성도 시원찮을 때, 한 겨울 이른 아침에 짚단을 잔뜩 지고, 들고 이 산 저 산 다니며 산소마다 성묘자리를 준비하는 것이 수월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무 불평 없이 기꺼운 마음으로 그 일을 했다. 대단한 효도라도 하는 느낌으로 흐뭇한 마음이 되어 뛰어 다니며 자리를 준비했던 것이다. 눈이라도 쌓여 있을 때면 싸리비를 들고 나가 눈을 쓸어 길을 내가며 성묫길을 준비하여야 했다.

그 일을 마치고, 큰 집, 둘째 큰 집 순으로 옮겨 다니며 차례를 지내노라면 점심때나 돼서야 겨우 차례가 끝나기 일쑤였다. 차례를 모두 지내고 나서야 아침 겸 점심으로 음복을 한 후 모두 함께 성묫길에 나섰는데, 이 산 저 골짜기 찾아다니며 성묘까지 모두 마치면 언제나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그 이듬해에 바로 군 생활을 시작하였고, 제대 후에는 또 고향을 떠나 생활했던 터라 그 이후에는 따로 성묫길 준비를 한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정초 성묫길에 나서면 언제나 그 때 일들이 아련히 떠올라 촉촉한 마음으로 할아버님께 절을 올리게 된다.

이제는 성묘도 각자의 형편에 따라 제각기 다니고 있는 터라 우루루 몰려다니던 옛날 같은 성묘 모습은 보기가 어렵다. 게다가 먼 조상 산소까지 들르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고 대부분은 그저 가까운 조상님들 산소에 가는 것만으로 족하게 여기는 분위기이다. 이러다 보면 성묘도 세월이 갈수록 점점 없어져가는 풍속이 되지 않을까하는 염려도 된다. 그래도 내 생전에는 설 추석 때마다 거르지 않고 다닐 수밖에 없을 터이고, 동생들에게도 오가는 길에 자주 성묘를 다니며 산소를 돌보자는 얘기를 틈날 때마다 건네곤 한다. 우리 형제들 평생에야 그렇게 유지되겠지만 그 이후에야 그 때 시속에 따라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때는 그 때의 방식대로 어떻게든 이어져 가겠지 하며 편하게 여기고, 그저 내 생전에나 성묘와 산소 관리를 게을리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틈나는 대로 산소를 찾고 있다. 올 설에도 정월 초이튿날 아내와 단 둘이서 성묘를 다녀왔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