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규 교수의 과학으로 읽는 한의학]

손창규 대전대학교 둔산한방병원 내과면역센터 교수.

40대 여성이 심한 피로감과 두통을 호소하면서 방문했다. 얼마 전 직장에서 너무나 억울한 일을 당했고 심한 스트레스와 분노를 참으면서 발생했다. 평소에 매우 건강했던 분으로 매년 받는 신체검진에서도 전혀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혈액검사를 해보니 간의 염증을 나타내는 수치들이 정상보다 약 2-3배 상승해 있었다. 술도 마시지 않고 무슨 약을 복용하거나 과로를 한 것도 아니며 물론 간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보균자도 아니었다.  

환자는 매우 의아하고 놀라워했지만, 진료실에서 간혹 접하는 경우이다. 이렇게 극도의 화가 나는 스트레스만으로도 간염 즉 간세포의 파괴가 발생할 수 있다. 임상적으로 이러한 간염은 쉽게 회복되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이미 다른 원인으로 간에 염증성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라면 이러한 스트레스는 병을 악화시키거나 만성화하는 요인이 된다. 만성 간염을 앓고 있던 환자들이 심한 정신적 갈등을 겪은 후에 갑자기 간의 염증이 심해지는 경우들은 많이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정신적 스트레스가 간조직에 염증을 일으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으로 이를 한의학에서는 “怒傷肝(노상간)”이라 한다. 약 2천 년 전의 “황제내경”이라는 한의학서적에 잘 서술해놓았다.  

한의학에서는 질병의 원인 중에서 정신적 원인을 유독이 강조한 학문이라 하겠다. 아마도 개인이나 가족중심의 서양사회보다는 커다란 공동체에서의 관계와 역할을 강조하여 온 동양사회나 우리나라에서는 정신적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빈도가 더 컸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환경에서는 필연적으로 갈등이 발생하고, 따라서 스트레스에 의한 질병은 더 발생함은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스트레스는 논리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하는 이성의 문제이기보다는 느낌에 좌우되는 감정의 영역이다. 사람의 감정은 칠정(七情)이라 하여 한의학에서 7가지로 나누는데 기쁨(喜) 노여움(怒) 근심(憂) 생각(思) 슬픔(悲) 놀람(驚) 두려움(恐)이다. 적당한 정도를 지나쳐서 너무 심해지면 이러한 7가지의 감정이 모두 화(火, 스트레스)가 되는데, 유독이 화를 내는 분노(怒)의 감정이 가장 안 좋다고 했다.

노여움 즉 화가 나는 스트레스 상황이 간세포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은 실험으로도 잘 증명되었다. 특히 일본의 큐슈대학의 Chida 교수팀이 많이 연구를 하였는데, 다양한 스트레스가 실험용 생쥐의 간조직에 염증을 일으키고 또한 다른 원인에 간손상을 더욱 촉진시킨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저자의 실험실에서도 실험용 생쥐들의 수염을 자르거나 묶어놓는 스트레스를 주면 간염지표인 AST, ALT가 3-4배 상승하는 것을 관찰하고 이를 억제하는 한약물을 연구해 국제논문에 보고하였다. 분노나 스트레스가 간세포를 파괴하는 자세한 기전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몇 가지 설명이 가능한 중요한 정황들이 알려져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간으로 들어가는 혈액량의 감소이다. Chida 교수팀은 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간으로 들어가는 혈액량의 약 50%가 줄어드는 것을 보고하였다. 간은 심장에서 오는 간동맥과 소화관에서 유래하는 간문맥을 통해서 1분에 약 1.5리터 정도의 혈액을 공급받는데 혈액공급이 심각하게 줄어들으면 일시적으로 간이 저산소증에 빠지고 다시 혈액이 공급되는 과정에서 에너지원인 APT는 줄어들고 활성산소는 급격히 증가한다. 연쇄적으로 간조직에 염증성세포를 불러들이는 호르몬 (사이토카인)들이 만들어지고 더불어서 증가된 스트레스호르몬은 간세포의 파괴를 유도한다. 또 중요한 변화가 위장관 내의 미생물들이 만들어내는 염증성 지질다당류가 혈액을 통해서 간으로 많이 들어가게 되는데, 이는 술을 마실 때 유입양이 증가되어 간에 염증이 생기는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성인의 간은 약 1.5kg 정도로 인체에서 가장 커다란 장기이다. 밤낮으로 무수한 일을 하는 화학공장으로 해독을 하고 물질을 만들고 공급하고 저장한다. 외부에서 들어오거나 내부에서 생성된 해로운 물질들을 정소한다. 일종의 전쟁의 최전선에서 소리 없이 싸워서 해결하는 장군과 같다고 하여서 장군지관(將軍之官)이라 한다. 아마도 정신적 스트레스가 인체의 어딘가에 피해를 줘야한다면 그것을 간이 수용하는 것일까? 저자의 연구팀이 격한 스트레스를 주고 생쥐의 10개 조직의 변화를 비교해보니 간조직이 가장 많은 산화적손상을 보였다. 오늘도 쉼없이 몸을 지키고 있는 간을 생각해서라도 적절한 운동과 스트레스를 줄이는 마음자세를 가져보길 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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