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2)
바티칸 (2)
  • 정승열
  • 승인 2018.03.12 14: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승열의 세계속으로 57]

베드로성당과 오벨리스크.
베드로성당과 오벨리스크.

베드로 광장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이 성 베드로 성당이고 그 오른쪽이 성 시스티나 성당 시스티나 성당 오른편으로 굽어진 건물이 교황이 집무하는 교황청이다. 그리고 성 시스티나 성당에서 오른쪽으로 쭉 뻗은 건물이 2000년 가톨릭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바티칸 도서관이고, 그 오른쪽 가장 끄트머리가 바티칸 박물관이다. 결국 바티칸 박물관은 성 시스티나 성당의 뒤편인 셈인데, 박물관 입구에는 천재화가 미켈란젤로와 라파엘의 흉상이 입구 위에 새겨져 있다.

박물관 입구는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수많은 관람객들이 항상 긴 행렬을 이루고 있다. 그들의 생김새며 복장, 기다리는 표정까지 매우 다양해서 마치 인종 백화점을 보는 것 같은데, 이런 관광객을 상대로 시커먼 피부의 집시들이 소매치기를 하거나 조악한 물건들을 값비싸게 파는 등 괴롭히고 있다. 아랍 족의 일파로써 일찍부터 말을 잘 타고 철기문화가 발전한 유목민족이던 집시 족은 이탈리아의 통일전쟁 때 용병으로 싸우다가 전쟁이 끝난 뒤 귀환하지 않고 잔류한 집시들의 후예가 너무 많이 불법체류를 하고 있지만, 교황청이나 이탈리아 정부에서는 이들에 대한 단속을 포기하고 사회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묵인해주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일정한 직업을 구하지 못하는 집시들은 잠재적인 범죄자 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바티칸 회랑과 성인 조각상.
바티칸 회랑과 성인 조각상.

바티칸 박물관은 십자군전쟁에서 패한 뒤 교황의 권위가 크게 실추하여 1309년 교황 클레멘스 5세가 프랑스 남부 아비뇽(Avignon)으로 유폐되었다가 1377년 그레고리 7세 때 바티칸으로 귀환된 이후 추락한 교황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하여 만들었다. 그후 교황 율리우스 2세는 1506년 산타마리아 마조레 궁전 근처의 포도밭에서 라오쿤 상이 발견되자 그 조각상을 전시하기 위하여 박물관을 지었는데, 트로이 전쟁 당시 예언자였던 라오콘은 그리스 군이 보낸 트로이 목마를 성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에 반대하였으나 많은 트로이 인들이 찬성하여 성안으로 끌어들이게 된 결과 트로이는 멸망하게 되었다. 또, 바다에서 올라온 뱀이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을 휘감아 죽이는 변고가 있었는데, 이것은 결국 트로이가 멸망한다는 조짐으로서 뱀에 감겨있는 2명의 어린이와 이를 구출해내려는 아버지를 나타낸 이 청동조각은 예술의 걸작으로 평가되어 교황 율리우스 2세에 의해서 처음 바티칸에 전시된 것이다.

라오쿤 상.
라오쿤 상.

1550년 교황은 박물관을 당대 최고의 화가와 조각가들에게 건축을 맡겼으나, 재정난으로 여러 차례 중단되었다. 그 후 1801년 나폴레옹이 이탈리아를 정복할 때 예술품을 싹쓸이해 간 뒤 나폴레옹이 몰락한 뒤 열린 1816년 비엔나 회의에서 약탈해간 유물을 반환하기로 결정되자, 교황청은 반환될 유물의 전시를 위해서 확장한 것이 현재의 바티칸박물관이다. 1820년 준공된 바티칸박물관은 고대 로마시대의 유물과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의 걸작들을 많이 보관 전시하는 박물관이 되어 오늘날 영국의 대영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헤라클레스상.
헤라클레스상.

바티칸 박물관에 입장하면 웅장한 나선형 계단을 빙글 돌면서 2층으로 올라가는데, 박물관 건물의 안마당은 성 시스티나 성당이 있는 지상(地上)이다. 이곳에는 높이 4m의 솔방울 모양의 청동상이 있는데, 이 솔방울은 원래 로마 시내의 판테온신전 옆에 있던 조형물을 베드로 성당을 지을 때 뜯어왔다가 1608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솔방울 모양의 청동상이 있는 공간을 ‘피냐의 정원(Cortile della Pigna)’이라고 하며, 장방형인 피냐의 정원 사방에는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을 위하여 박물관 배치도와 주요 전시물에 대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박물관을 입장하는 데에는 공항 검색대보다 심한 몸수색으로 금속 탐지기는 기본이고, 손에 들고 있는 작은 가방이나 소지품까지 세심하게 검색한다. 내 자신도 들고 갔던 카메라 삼각대를 빼앗기고 대신 보관표를 받았다가 관람을 마치고 나올 때 돌려받기도 했다.

아폴론.
아폴론.

바티칸 궁의 1400개가 넘는 방과 20개 전시실로 나눠진 박물관은 1층과 2층으로 나뉘지만, 1층 왼편이 고대 박물관, 전면이 미술관, 오른편이 기독교 박물관이다. 1층은 각종 그림을 모아 놓은 회화 전시관, 피오 클레멘티노 미술관, 이집트 전시관, 키아라몬티 미술관, 시스티나 성당 등으로 나뉘며, 미술관에는 고대에서 부터 1700년대까지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2층에는 에트루리아 전시관, 지도의 방, 라파엘로의 방 등이 있지만, 계속 밀려드는 관람객들 때문에 차분하게 전시물을 관람할 수 없다. 게다가 그림과 회화 등은 작품의 변색 등을 방지한다고 일체의 사진촬영이 금지되지만, 조각품들에 대하여는 이러한 제한이 없다.

조각작품들.
조각작품들.

그런데, 수많은 그림과 조각품 중에서도 특히 지도의 방(Galleria delle Carte Geografiche)이 가장 인상적인데, 지도의 방은 길이 120m, 폭 6m의 복도의 삼면에 1578~1580년 간 로마교황이 다스렸던 유럽 40개 지역을 그림으로 표시한 공간으로서 1581년 교황 그레고리 13세의 명으로 그린 것이다. 우리의 왕조시대의 지방행정 구역은 큰 강을 경계로 하여 물산이 풍부했던 지역에 설치했지만, 중세유럽에서는 교권과 정권을 장악한 교황이 주요행정구역의 설치를 교회의 대․소로 구분해서 설치한 점이 인상적이다. 가령, 십자가 한 개 표시(✝)는 주교가 관리하는 대성당 지역이고, 십자가 두 개(☨) 표시지역은 대주교가 관리하는 두오모 성당, 십자가 세 개()가 표시된 곳은 세계에서 유일한 성 베드로 성당을 나타내는 부호이며, 450년 전에 그린 지도가 지금의 지도와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당시의 수준 높은 측량술, 정밀한 지도 작성법을 엿볼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