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민의 정치레이더 10] ‘절대권력’에 나약했던 기자의 반성문

이번 주는 번민과 회한에 고단했던 나날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알법한 ‘그 사건’ 때문이지요. 일주일 동안 ‘그’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 전화하거나 만나면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는 입 밖에 내지도 못했습니다. 오늘의 ‘정치레이더’는 숙연한 자세로 자성의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2016년 11월이었습니다. 기자수첩 식의 반성문을 썼습니다. 부제목은 ‘나는 왜 대통령에게 질문하지 못했나’입니다. 그러고 보니 내일(10일)이면 벌써 ‘박근혜 탄핵’ 1년을 맞는군요.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국정농단 의혹을 받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두 차례 대국민담화 동안 질문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국민적 지탄을 받았습니다. 대통령이 질문을 받지 않았기 때문 이라는 건 공분에 휩싸인 국민들에게 한낱 변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자책하고, 반성했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언론의 본령과 사명이 무엇인지 절대 잊지 않겠노라고.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하는 참회록도 더는 쓰지 않겠노라고. 기자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16개월 만에 저는 펜을 들어 ‘참,회,록’이란 세 글자를 다시 꾹꾹 눌러 씁니다. 충남도청은 2012년 12월 대전시 선화동에서 내포신도시라 불리는 지금의 충남 홍성군으로 이전했습니다. 그 즈음 저는 7개월 남짓 도청을 출입했습니다. 그는 그때도 도지사였습니다. 2010년 민주당 소속 첫 민선 도지사에 당선됐습니다. 제가 출입할 때는 임기중반을 돌아 서서히 ‘행정’에 눈을 떠갈 때였겠군요. 도청 출입기자로서 그의 도정을 ‘온전히’ 살피거나 견제하지 못했습니다. ‘실력’이 부족한 기자였습니다. 그렇게 견제하지 못한 ‘권력자’는 이듬해 재선에 성공하자 “대한민국의 대표선수 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지역 언론은 그가 ‘대한민국 대표선수’가 될 자격과 자질을 검증하려기보다 ‘충청대망론’을 실현시킬 적임자라며 꽃길을 깔았습니다. 그는 ‘절대 권력자’로 성장했습니다. 그를 비판하는 기사는 공허한 메아리였고, 그를 비판하는 기자는 소위 ‘왕따’ 취급을 당했습니다. 어쩌면 기자들은 그렇게 길들여져 갔는지도 모릅니다. 저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2015년 2월부터 출입처가 국회와 청와대로 바뀌었습니다. 만 3년이 되었군요. 그와는 국비확보 차원에서 국회를 들를 때나 ‘어쩌다 가끔’ 봤습니다. 그런데 그는 참 이상했습니다. 국회에 상주하는 지역 기자들과 접촉을 상당히 꺼려했습니다. 하다못해 국회 본청에 있는 예결위원장실을 들를 때도 같은 건물에 있는 지역 기자실을 들여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언제는 그가 국회를 다녀간 사실도 이튿날 중앙지 보도를 접하고 ‘다녀가셨구나’할 정도였으니까요.

도청 출입기자들도 그와 ‘소통’할 기회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2016년부터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국회를 찾는 기회가 부쩍 늘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기자들은 만나지 않았습니다. 자기 ‘볼일’만 보고 내려갔습니다. 대권 도전을 선언했을 당시도 충청권 국회 출입기자들과 공식적인 만남은 한 번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중앙 언론사 기자들, 특히 마크맨이라고 불리는 전담기자들과는 아주 잘 어울렸다더군요. 이번 사건이 터지고 난 뒤 청와대를 출입하는 당시 마크맨들과 몇 차례 그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지역기자들과의 소통부재에 대해 그들은 “실화냐”라며 놀라워했습니다. 가까이 있는 기자들은 멀리하고, 멀리 있는 기자들-자신의 욕망 실현에 필요한 수단-에는 정성을 다했던 것 같아 씁쓸합니다.

그래도 변명의 여지는 없습니다. ‘촌 기자’였다는 티만 더 낼 뿐입니다. 기자라면 악착같이 달라붙어 그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보다 면밀하게 살폈어야 합니다. 더 지적하고, 비판하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어야 합니다. 그가 입버릇처럼 말한 “30년 정당정치만 해온 직업정치인”이 불과 7년 만에 행정을 얼마나 알았고, 일국의 대통령이 될 만한 자질과 품성을 갖췄는지 ‘검증’했어야 합니다. 직접 만나기가 어려웠다면 참모진과 측근을 통해서라도 경고했어야 했습니다. 기사로라도 알렸어야 했습니다. 도민과 국민을 위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용기 내어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습니다. 그에게 두 번이나 보낸 ‘편지’는 단 한 줄의 답장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지난 일주일은 매우 아팠습니다.

그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 중 마지막 단락입니다. ‘후일 대통령이 되든, 평범한 민초로 돌아오든 시대의 역사 속에서 "언변보다 일 잘한 충남도지사"란 소리를 듣기를 간구합니다. 도백으로서의 진중함과 가볍지 않은 처신이 필요한 때입니다. 늘 건승하시고, 충남도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2015년 11월 12일 새벽 류재민 올림

지난해 3월이었습니다.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국회에 있는 지역기자들을 만났던 날입니다. 퇴직 이후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제나 지역 발전을 위해 늘 도민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언제나 고향과 함께하고,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어디에서’와 ‘어떻게’는 나중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지사님의 대선 행보에 도정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 역시 여전히 높습니다. 대선이란 운동장 에서 뛰는 선수가 자기 터에서조차 응원 받지 못하면 어떻게 정권을 교체하고, 시대를 교체할 수 있을까요. 수신제가(修身齊家)해야 치국(治國)도, 나라를 평화롭게(平天下)도 할 수 있겠지요. (중략)..벚꽃이 흩날리는 어느 멋진 봄날, 금의환향하는 지사님의 복사꽃 같은 밝은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돌아오는 길이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도록, 도민들이 꽃길을 열어 박수쳐 맞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2017년 2월 1일. 국회 본청 175호 기자실에서 류재민 올림

2018년 봄, 그는 끝내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몰락한 왕’이란 주홍글씨를 새긴 채 퇴장했습니다. 경우에 따라선 법의 심판을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누군가처럼. 그래도 그 누군가는 3번이나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습조차 비치지 않았습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인데요. 그가 기자회견 한다고 하기 전날, 충남도청을 출입하는 <디트뉴스> 이미선 기자가 그를 찾겠다며 그가 머무르고 있다는 모처를 이 잡듯 뒤지고 다닌 일이 있습니다. 늦은 밤 차량대조까지 일일이 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질문을 던지는 것이 기자의 숙명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자의 근성에 박수를 보냅니다. 부디 이런 기자들을 현장에서 많이 보길 바랍니다. 그래서 절대 권력의 칼을 휘두르려는 사람에게 이 나라를 맡기는 불상사가 없도록 용기 내 싸워주길 바랍니다. 불철주야 출입처를 누비며 ‘특종’을 시도하는 대한민국의 열혈기자님들, ‘파이팅’입니다. 저도, 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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