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환의 정치 톺아보기] 

불과 며칠 사이 세상이 뒤집어졌다. 그 인기 많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미투에 휩싸였다. 바로 세상은 분노와 허탈, 배신감과 참담함에 쌓였다. 다음날 그는 사직했다.

그가 사직한 날 밤엔 김정은을 만났던 대북특사단이 세상을 흔들어놓았다. 4월 판문점회담이 정국메뉴에 올라왔다. 평화에 대한 기대감이 끓어오른다.

어제(7일)는 정봉주전의원이 미투의 도마 위에 올라왔다. 본인은 오히려 법정고소도 이야기 하지만 어쨌든 세상 참 요란하다. 마음에 들다가도 세상은 참 아름답지 못한 일이 많다. 안 전 지사 스캔들은 남북회담 때문에 조금은 가려졌고, 그 가려진 추함도 정봉주 전 의원이 조금은 나눠가졌다.

역사는 우연일까? 필연일까? 누가 안지사가 이런 일을 하리라 생각했을까? 안 전 지사 본인도 과연 이런 일이 자신의 앞길을 막으리라 예상했을까?

‘왜 그랬을까?’ 그 원인과 상황자체를 둘러싸고 안 전 지사에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이 돈다. 아쉬움에서 분노감까지 그 감정의 스펙트럼은 그를 지지했던 안 했던 간에 부정적 색깔로 자욱하다.

그를 공통적으로 비판하면서도 각자의 인식은 다르다. “안희정은 무소불위형과 지능형이 합쳐진 권력형 성범죄자”라는 개인에 대한 매우 이성적 분석을 원인에서 찾는 데서부터 “안 전 지사의 섹스스캔들 뒤에는 어느 세력의 거대한 음모가 숨어있다”는 매우 소설 같은 풍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의 일탈이 우연일지 필연일지 모르겠지만, 그 일탈은 결국 현재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역들에 의해 필연의 역사로 만들어 가는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그 일탈은 적폐청산을 시대정신으로 끌어가려는 지금의 주류권력이 정치권의, 특히 여권의 ‘객토(客土)’를 진행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객토는 농지 또는 농지로 될 토지에 흙을 넣어서 토층의 성질을 개선하고, 그 토지의 생산성을 높이고자 실시하는 일이다. 정치권에선 2010년 말, 개헌 전도사이자 이명박 정권의 2인자였던 이재오 당시 특임장관이 “여의도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정치는 분명 지력을 다한 것 같다”고 말하며 이젠 “객토를 하고 정치적 변화 없이는 한국의 불신은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해서 공감을 얻은 적이 있다.

현 정부가 원하는 것도 이것, 정치권의 객토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월 26일 대통령주재 수석비서관·보좌관 회의에서 “우리 사회 전 분야로 미투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곪을 대로 곪아 언젠가는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던 문제가 이 시기에 터져 나온 것”이라 말하며 “사회 곳곳에 뿌리박힌 젠더 폭력을 발본색원한다는 자세로 범정부 차원의 수단을 총동원해주기 바란다”고 미투 운동을 적극 지지했다. 

객토를 위해선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무엇보다 객토의 철학을 공유하는 주체가 분명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뜻을 같이하지 않는,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으려는 세력이 많아 실패했다는 교훈을 누구보다 잘 아는 문재인 정부다.

안희정 전 지사는 그 주체인가? ‘글쎄요’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과 함께 뽀뽀로 앙금은 사라졌다 하지만, 안 전 지사는 대선경선 기간 동안 주류인 친노, 친문계열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았다. 

작년 말에도 문 대통령 지지자들을 향해 “이견의 논쟁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쓴 소리를 했다가 '안희정이 적폐세력', '꼰대'란 비판 댓글에 시달린 적이 있다. 

안 전 지사는 온건하고 합리적이라는 국민적 신망에, 적어도 충청권 내에선 지지 세력과 그를 지지하는 정치인이 ‘친문’과 대등하게 ‘친안’으로 줄을 섰던, 다음 대선의 강력한 유망주였다. 

눈엣가시이지만 세력을 무시할 수 없는 그 사람이 엄청난 섹스스캔들에 휘말렸다. 미투를 필연의 역사로 강력하게 끌어가고 싶은 상황에 우연인지 필연인지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여권 주류세력은 이를 안타깝게 생각했을까? 인간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답은 “아니오”일 게다.

사건이 터지자 더불어민주당은 빠르게 움직인다. 저녁뉴스 보도가 끝나자마자 한 시간 남짓 지난 밤 10시에 안 지사를 제명하고 출당 조치했다. 그리고 최대한 신속하게 안희정 지우기에 나섰다. 

패닉일 수 있는 상황에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게 하나둘씩 대응해 나갔다. 그리고 뉴스가 나온지 24시간 만에 또 다른 뉴스, 청와대발 정상회담 소식은 안 전 지사에 대한 국민적 비난을 잠재웠다.

여권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을 것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악재이긴 하지만 그래서 대통령과 정당 지지율도 출렁이겠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 곧바로 정상화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실제 윤창중 스캔들이 발생했던 2013년 5월의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율을 봐도 지지율걱정은 안할 듯하다. 윤 스캔들 발생 주에 박 전 대통령 지지율은 51%로 전주대비 5%p하락했다. 그러나 그 다음주 2%p상승을 비롯, 1달도 채 안되어 60%대 지지율을 보였다. 그리고 정당지지율엔 거의 변화가 없었다.

게다가 앞으로 힘을 받아서 해야 할 일이 많다. 평창올림픽 이후 정국은 5개의 이슈가 놓여 있다. 첫째 남북정상회담, 둘째 개헌, 셋째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문제 등 소위 ‘적폐청산’작업, 넷째 미투운동을 필두로 한 사회개혁, 그리고 다섯째는 지방선거다. 앞으로 5개 모든 이슈가 정신없이 언론을 장식할 것이며, 앞선 4개의 전 이슈가 모두 지방선거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를 여권이 주도하고 있다. 야권은 무엇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힘이 없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 자신들과 결이 다른 대중적 인기가 있는 정치인을 하루속히 정리하는 것이 잠시 세상은 시끄럽더라도 지방선거는 90여일이나 남았기에 훨씬 낫겠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안지사가 퇴장하는 상황에 청와대가 유독 탁현민 선임행정관을 끌어안는 것이 이상할지 모르겠다. 탁 행정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저를 둘러싼 말들도 끝없이 길고...”라며 자신에게 화살이 돌아옴을 알지만 “나의 명예, 진실, 주장은 여기서 나갈 때 시작할 생각”이라고 주장한다. 

강영환 정치평론가
강영환 정치평론가

필자는 주류세력이 자신이 있기에 그를 지방선거까지 청와대에 잡아둘 것으로 본다. 다섯 가지 이슈 속에 대통령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관리(President Identity)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국민이 보기엔 객토의 대상일 수 있지만, 정치적으론 객토의 주체인 사람이다.

주류정치세력 내의 객토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섹스스캔들과 금전스캔들은 국민이 가장 싫어하는 소재이다. 그 첫 대상자가 '정치인 안희정'이 되었고, 그는 국민의 공분을 안은 채 자연스레 정치적 패자가 되었다. 이어서 정봉주가 문제가 되고 있다. 여권 내 또 누가 나올지 모르겠다.

안희정은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의 반성대로 '인간 안희정'은 미안할 수 있겠지만, '정치인 안희정'은 아마도 분한 마음이 클 것이다. 어쨌든 충청도는 꽤 유망했던 '정치인' 한사람을 잃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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