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피식 웃었다. 독사눈을 뜬 채 의도적으로 눈가에 잔웃음을 흘렸다. 갑자기 책상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조금 전에 죽은 그 놈과 한 통속이잖아. 다 알고 있는데 무슨 넋두리를 떨고 있는 거야. 제대로 손을 봐주어야 실토를 하겠나?”

그는 다시 고함을 버럭 지르며 메모지 뭉치로 책상을 내리쳤다.

너는 내 손 안에 있어. 이렇게 한 방이면 끝이야. 순순히 털어놓는 것이 좋아.”

그는 엄지와 검지만을 편 뒤 내 이마에 대고 말했다. 권총 한 발이면 모든 것이 끝장이 난다는 것을 암시했다.

"무슨 얘깁니까. 그와 한 통속이라니. 당신이 말하는 그가 누구요?”

조금 전에 죽은 놈. 미스터 홍." 

"........"

"정확히 하스볼라토프 홍. 그 자와 너는 오늘 블라디미르 호텔에서 만나기로 했잖아." 

"..........."

"물건을 건 내 주기 위해서 말이야.”

"나는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소. 한국 총영사관에 확인 해 보시요. 내 신분에 이상이 있는지. 나는 한국 언론계에 종사하는 기자요. 두어해 전에도 이곳을 다녀갔소. 이번에는 내 아내를 찾기 위해 이곳에 왔고. 그런데 물건은 무슨 물건…….”

안되겠어! 이 새끼 인간적으로 대해 주니까 말 끼를 도무지 못 알아들어. 따끔한 맛을 봐야 말 끼를 알아듣겠다 이거야. 좋아 그것을 원한다면 그렇게 해 주지.”

그는 혼잣말을 계속하며 책상 밑에 붙어 있던 버튼을 눌렀다. 나는 담배 연기를 깊이 들이켰다.

이 자들이 나를 어디로 몰아가려는 걸까. 물건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아는 것이 있어야 무엇이든 말 할게 아니요. 당신네들이 내게서 무엇을 얻어 내려고 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총영사관을 통해 명확하게 당신네 정부에 항의 하겠소. 당신도 마찬가지야. 오늘 오후에 입국 한 사람을 잡아 놓고 물건을 내 놓으라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한국 총영사관에 전화를 해 보시오. 그리고 내게도 전화할 기회를 주시오. 러시아에서는 사람을 누구든지 이렇게 대합니까?”

그는 더욱 기분 나쁜 실눈을 뜨고 내 눈을 후벼 파듯 들여다봤다.

점점 가관이구만.”

가관은 당신네들이 가관이야. 당신 함부로 이렇게 말을 마구해도 되는지 두고 보자구. .....먼저 한국 총영사관에 연락 해주시오. 인질극을 벌였던 놈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 놈과 내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요. 나도 그 놈이 쏜 총에 맞을 뻔 했어. 도대체 그 놈이 어떤 놈인데?”

나는 언성을 더욱 높였다. 눈을 똑바로 뜨고 이반 곤예프를 응시했다. 다음순간 나는 책상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그러자 이반 곤예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상 위에 구둣발을 올려놓고 메모지로 내 턱을 받쳐 올렸다. 나는 더 이상 참고 싶지 않았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일어서서 그의 얼굴을 후려 갈겼으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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