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세계속으로 56]

1. 바티칸 지도.
1. 바티칸 지도.

가톨릭의 총본산인 바티칸(Vatican) 혹은 로마교황청(Curia; The Holy See)은 로마 시내에서 테베레 강 서쪽으로 약20㎞가량 떨어진 로마 속의 작은 도시국가이다. 우리의 경복궁 넓이만한 사방 700m가 채 되지 않는 약15만평(0.44㎢)의 바티칸이란 지명은 ‘미래를 점치는 사람’이라는 라틴어 ‘바테스(Vates)’에서 유래되었다. 바티칸은 AD 1세기 칼라골라 황제가 이곳에 로마인들이 즐겨하는 격투기 원형 경기장을 지었는데, 네로 황제는 이 경기장에서 수많은 기독교인을 죽였다. 67년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베드로를 비롯한 초기 기독교도들도 이곳에서 순교했다. 그러나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324년 베드로가 묻혀있던 무덤 위에 성 베드로 성당(Basilca di San Pietro)을 지었다.

2. 베드로광장과 베드로성당.
2. 베드로광장과 베드로성당.

이후 1000년 이상 가톨릭의 중심이었던 베드로 성당은 1506년 교황 율리우스 2세가 브라만테(Donato Bramante: 1444~1514)에게 더욱 크고 화려하게 증축하게 했는데, 십자형(✝) 평면에 거대한 돔을 얹은 성당과 원형 광장에서 성당으로 이어지는 대각선 통로는 마치 열쇠 모양(Ω)으로 설계했다. 하지만 증축과 장식비가 부족하여 교황청이 면죄부 판매를 시작하자 뜻있는 신학자들은 베드로 성당의 엄청난 크기와 화려한 바로크 풍, 그리고 사치스러운 장식들을 비판하기 시작하여 보헤미아 출신으로서 카를대학의 총장을 역임한 보얀 후스(Jan Hus; 1369~1415)가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다가 1415년 화형 되었으며, 그 100년 뒤인 1521년 독일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종교개혁을 주장하게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후스에 대하여는 2017.12.11. 체코 프라하 구시가지, 루터에 대하여는 2017.06.16. 하이델베르크 대학 각 참조).

2-1 성당에서 바라본 광장.
2-1 성당에서 바라본 광장.

바티칸은 19세기 이탈리아가 통일국가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교황령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였지만 1929년 2월 이탈리아의 무소리니가 교황청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교황 피우스 11세(1922~1939)와 교황청의 주권을 인정하는 라테란 조약(Lateran Concordato)을 체결함으로써 바티칸은 독립국가가 되었다. 오늘날 바티칸 시국(市國)은 성 베드로 대성당, 성 시스티나 성당과 궁전을 포함한 13개 건물 그리고 로마 동남쪽 약120km 지점에 있는 교황의 여름철 관저인 카스텔 간돌포(Castel Gandolfo)가 영토의 전부이고, 주민은 약1000여명에 불과하지만, 가톨릭의 성지이자 가톨릭의 총본산이라는 의미와 함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훌륭한 예술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이다.

2-2 베드로성당과 오벨리스크.
2-2 베드로성당과 오벨리스크.

로마 시내에서 지하철 A선을 타고 오타비아노역(Ottaviano)에서 내리면 바티칸인데, 베드로 광장 앞의 도로 위에 그어진 흰색 선이 이탈리아와 바티칸을 구분 짓는 국경선이다. 바티칸은 크게 성 베드로 성당과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나뉘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사실상 한 건물과 마찬가지다. 베드로 성당과 시스티나 성당은 입장이 무료이지만 바티칸박물관은 어른 1인당 16유로, 대학생은 8유로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입장료 수입은 바티칸교황청의 주 수입원이 되고 있지만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은 무료입장할 수 있다. 참고로 유럽 어느 도시 어떤 관광지를 가더라도 세계 각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매표창구는 언제나 길게 줄을 서게 되는데 불충분한 언어와 짧은 여행기간에 소중한 시간을 매표하는데 허비하지 않고 비용절감은 물론 지체하지 않고 바로 입장하려면 인터넷으로 미리 예매해두는 것이 좋다.

현재 스위스 출신 근위병들이 바티칸을 지키고 있고, 국방은 이탈리아에 위임되어 있다(스위스 용병에 관하여는 2017.05. 05. 스위스 루체른 참조).

2-3 회랑과 성인 조각상.
2-3 회랑과 성인 조각상.

베드로 광장(Piazza San Pietro)은 약30만 명이 집합할 수 있는데 반달형 회랑은 대리석으로 만든 도리아 식 둥근 기둥 284개가 4줄로 서 있고, 그 석주 위에 140명의 성인과 순교자의 동상이 한 줄로 세워져 있다. 광장 한 가운데에는 A.D 1세기 칼라골라 황제가 이집트에서 가져온 높이 25.5m, 무게 320톤에 이르는 오벨리스크가 있는데, 오벨리스크는 광장의 반달형 회랑과 함께 ‘잠긴 문을 여는 열쇠’의 형상으로서 베드로 성당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을 상징하며, 삼중관 아래 엇갈리게 배치한 열쇠 문양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의 열쇠’를 뜻하며, 이후 교황을 상징하는 문양(文樣)이 되었다. 베드로 광장은 매주 일요일 교황의 집무실 창문이 열리면서 교황이 광장에 모인 군중에게 강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베드로 광장 정면에서 바라보면 광장 한 가운데에 오벨리스크, 그 양쪽에 2개의 거대한 분수대가 있고 그 뒤로 보이는 건물이 성 베드로 성당이다. 가로 137m, 세로 210m 크기인 베드로 성당은 1600년대의 마데르노를 거쳐 1626년 준공될 때까지 무려 100년 이상 걸리면서 당초 르네상스식에서 바로크 양식이 절충되었는데 1780년에는 천장을 금박으로 현관은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해서 종교성과 함께 역사성․ 예술성을 갖췄다. 오늘날 로마의 모든 건물은 베드로 성당보다 더 높게 짓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베드로 성당에는 5개의 출입문이 있으나, 맨 오른쪽 문은 성문이라 하여 성년(聖年)에만 열린다. 성당은 모자를 벗고 신발도 끈으로 묶는 신발이 아니면 안 되며 남녀 모두 노출이 심한 옷차림으로는 입장할 수 없다. 그러나 대체로 반바지에 티셔츠, 운동화는 허용된다.

3. 파에타.
3. 파에타.

베드로 성당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십자가 파편 죽기 직전에 땀을 닦았던 수건 예수가 죽었는지 확인했던 창의 파편 등 ‘3가지 보물’과 성당의 오른쪽 본당 첫째 기도실에 미켈란젤로가 24살 때 조각한 피에타(Pieta)가 있다. 피에타는 예수가 처형된 후 십자가에서 내려진 후 성모 마리아의 팔에 안겨진 모습의 조각상으로서 미켈란젤로는 마리아의 슬픈 눈빛 마리아의 품에 가로 안긴 채 죽어간 예수의 모습을 홍수에 빠져죽은 어린이를 안고 있는 이집트 어머니의 모습에서 착상했다고 하며 미켈란젤로의 서명이 있는 유일한 작품이다. 그밖에 성당 내부의 벽과 벽 사이에는 총 39인의 성인과 수도회의 창설자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한편, 1471년에 교황 율리우스의 삼촌 식스투스 4세(Sixtus Ⅳ)가 자신의 치세를 과시하기 위하여 지은 시스티나 성당(Cappella Sistina)은 사실상 교황 개인의 예배당으로서 구약성서에서 기록된 솔로몬 성전의 크기인 가로 20m, 세로 40m의 장방형이다. 시스티나 성당에는 르네상스시대의 천재화가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등이 있다.

천지창조는 미켈란젤로가 교황 율리우스 6세의 명으로 글자를 모르는 문맹자들에게 기독교리를 알기 쉽게 가르쳐주기 위하여 1508년부터 1512년까지 4년 6개월 동안 성당의 천정에 그린 그림이다. 미켈란젤로는 일반인은 물론 교황의 출입까지 막은 채 그림에 몰두하였는데, 물감이 온몸에 범벅되어 피부병이 생기고, 오랫동안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작업한 탓에 목 디스크로 목이 굳어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교황 바오로 3세(Paulus III, 1468~1549)는 이미 60대인 미켈란젤로에게 ‘최후의 심판’을 그리도록 하자, 미켈란젤로는 단테의 신곡(神曲)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을 배경 삼아 7년 동안 14m에 성당의 제단 뒤 전체의 벽에 천국에 대한 인간의 갈망과 지옥의 공포를 그렸다. 그림은 모두 네 부분으로서 1부에는 천사들 2부는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12사도와 순교한 성인들로 이루어진 천국 3부는 천사들의 나팔소리로 죽은 자들을 깨워서 심판받게 하여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장면 4부는 지옥의 모습인데 4부 그림 중 12제자가 순교할 때 처벌받았던 칼이나 창 같은 도구를 들고 있는 그림 중 피부를 벗겨서 죽인 성 바돌로메가 들고 있는 자신의 피부가죽에 그린 얼굴이 미켈란젤로의 자화상이라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자신을 괴롭힌 추기경 다 체세나(Biagio da Cesena)에 대한 복수심으로 추기경을 당나귀 귀에 뱀이 몸을 휘감고 성기를 깨물고 있는 지옥의 신 미노스로 그렸는데, 교황은 추기경의 얼굴을 지옥의 신으로 그린 것에 분노하면서 그림 어딘가에 미켈란젤로의 얼굴도 그려 넣도록 명령하자 그는 성 바돌로메의 찢겨진 피부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이것이 미켈란젤로의 첫 자화상이라고 한다. 참고로 미켈란젤로가 그린 그림은 모두 나체였지만 그 후 교황은 나체 그림들에게 모두 옷을 입히도록 명령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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