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규 교수의 과학으로 읽는 한의학]

손창규 대전대학교 둔산한방병원 내과면역센터 교수
손창규 대전대학교 둔산한방병원 내과면역센터 교수

한의학에 “족온무통(足溫無痛) 두랭무통(頭冷無痛)“이라 하는 가장 중요한 이론이 있다. 발은 따스하고 머리가 서늘하면 건강한 것이며,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의 원칙에서도 발은 따듯하게 하고 머리는 차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몸은 질병이 없는 상태라면 항상 36.5–37.5 °C 사이에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표준체온은 “신체의 주요 내장에서 측정한 일정한 온도”를 말하는데, 일반적으로는 항문에서 측정하면 비교적 정확하지만 편의상 겨드랑이나 혀의 밑에서 측정한 구강온도로 대신한다. 사람의 체온은 인종이나 남녀의 성별 혹은 계절에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으나 소아는 좀 더 높고 나이가 들면 낮아지며 하루 중에는 새벽에 가장 낮고 저녁식사 때쯤 가장 높다. 당연히 음식이나 운동 전후 혹은 주위의 온도에는 제법 영향을 받는다.

근육 등에서 화학반응을 통하여 생산된 열이 혈액으로 전달되어 피부나 호흡과 같이 외부와의 접촉 과정에서 배출되는데, 시상하부라는 뇌의 조직에서 자동으로 설정된 온도센서가 감지한 온도에 따라서 조절한다. 보일러는 주로 연료를 태우는 것의 조절을 통해서 집안의 온도를 조절하지만, 우리 몸은 열의 생산보다는 열의 배출을 조절하는 것에 좀 더 중점을 둔다고 하겠다.

아무튼 내장의 깊은 곳에서 측정하는 체온은 모두가 일정하다고 하겠지만 손발이나 복부 혹은 머리처럼 신체의 부위별 온도는 개인마다 다른 것이 보통이다. 보통은 손발이 따듯하지만 어떤 사람은 너무 차다고 호소한다. 일반적으로 심장을 중심으로 멀리 떨어진 신체는 생명의 유지에는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진다. 복부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심부의 체온유지에 열이 부족하다면 이렇게 생명유지에 덜 중요한 곳의 온도는 낮추려고 한다. 즉 혈액의 흐름을 떨어트려서 외부로 방출되는 온도를 줄이려고 하는 것이다.

신체 중에서 발은 심장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있을 뿐만 아니라 차가운 땅바닥과 접하는 부분이라 발을 통해서 체온을 잃기가 쉽다. 인류의 역사에서 과거에는 맨발로 걷거나 지금처럼 보온이 잘되는 신발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 몸은 발바닥 쪽으로 가는 혈액을 줄이는 쪽으로 진화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체온이 가장 낮은 관절에 생기는 통풍도 대부분이 발가락에서 발생하며 동상이나 당뇨합병증에 의한 말초조직 괴사도 발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발의 체온관련 현상을 오랫동안 관찰해온 한의학에서 “족온무통(足溫無痛)“이라는 원칙을 견지해왔다.

또한 한의학에서는 가장 아래의 발의 온도를 논하면서 가장 위에 위치한 머리를 연계해서 설명하였다. 즉 발이 너무 차가운 것은 병이며, 발을 따듯하게 하면 열에 취약한 심장과 머리를 서늘하게 하여서 건강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이는 한의학에서 질병의 치료법을 선택하거나 처방을 할 때 매우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이러한 “족온무통(足溫無痛)“의 이론이 뇌와 심장에도 치료효과가 있음이 임상연구를 통해서 일부 밝혀졌다. 대만의 과학자들은 족욕으로 발을 따듯하게 할 때 머리를 다친 사람들이 수면에 들게 하는 시간을 현저하게 줄인다는 사실을 국제학회지에 발표하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잡지인 네이처지에서도 이러한 효과의 기전을 제시하였는데, 발을 따듯하게 하는 것이 뇌를 비롯한 심부의 온도를 떨어트려서 빠른 잠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치매와 같은 퇴행성 뇌질환은 비정상 단백질이 뇌세포에 축적되는 것과 상관성이 깊은데, 최근 많은 연구들이 머리의 온도가 낮거나 수면 중에 뇌척수액에 의한 청소과정이 활발해진다는 것이 밝혀진 것과도 상관성이 있다. 한국의 한 임상연구는 심장혈과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발을 데워주는 족욕이 심장근육에 혈액의 흐름을 원활하게 도와준다는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쯤 되면 “족온무통(足溫無痛)“의 의미는 향후 더 커다란 건강길잡이로 발전할 한의학 지식이며, 과거 선비들이 발바닥을 두드리거나 지압을 한 것도 과학적 근거에 의함을 알 수 있겠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