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 11 ]
탈북자 [ 11 ]
  • 이광희
  • 승인 2018.02.2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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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적인 총격에 눈을 감고 얼굴을 바닥에 쑤셔 박았다. 안경이 허공에 튀어 오른 뒤 힘없이 내동댕이쳐졌다. 머리통에 손가락 굵기의 바람구멍이 생기고 그 구멍을 통해 골수가 허공으로 치솟은 탓인지 머리가 빈 깡통같이 비어 있었다. 시퍼런 섬광이 동공을 강하게 찔렀고 이어 급작스럽게 수축된 동공이 신축성을 잃고 멎었다. 앞이 캄캄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코맹맹이 같던 메가폰 소리도, 또 전투화 발자국소리도, 찢어질듯 천정으로 솟구쳤던 괴성도 달팽이관이라는 이름의 블랙홀로 스며든 뒤의 고요함만 있었다. 비릿한 피비린내가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얼굴에서 연신 미끈거리는 액체가 흘러내렸다.

이렇게 죽는구나. 죽음이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

억울함이 북받쳤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온몸의 맥이 일순간에 녹아 내렸다. 흙 속으로 물방울이 스며들 듯이 형체도 없이 바닥 속으로 사라져가는 나를 느꼈다.

아들과 아내의 얼굴이 번갈아가며 다가서다 이내 사라져갔다.

 

내가 눈을 뜬 것은 누군가에 의해 온몸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난 직후였다. 무거운 눈꺼풀을 치켜뜨자 대리석 무늬의 바닥이 싸늘하게 보였다. 바닥에 비친 테이블과, 의자 따위가 어둠속에서 희미한 형체를 드러냈다.

나는 눈을 뜨고서도 잠시 동안 그렇게 얼굴을 쑤셔 박고 엎드려있었다. 얼굴이 부석부석하게 부어 오른 것을 느꼈다. 둔기에 광대뼈를 얻어맞은 듯한 통증이 머릿골을 당겼다.

팔이 제대로 움직여질까?’

조심스럽게 팔을 끌어당겼다.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고개를 살며시 들어올렸다. 그러자 테이블과 의자 사이로 제각기 움직이는 얼룩무늬 바지와 전투화가 또렷이 보였다. 그제야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테이블 밑에서 부스스 일어나자 얼룩무늬 복장을 한 사내들의 분주한 모습이 더욱 또렷이 보였다. 권총을 들고 나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려 했던 그 사내의 머리는 어느새 종전에 보았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전차바퀴에 깔린 것처럼 완전히 허물어진 채 벽면에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몸은 헌 옷가지를 아무렇게나 구겨놓은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피범벅이 돼 있었다. 팔뚝에 새겨진 독거미 문신만 까맣게 살아나고 있었다.

그가 나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레스토랑 밖 어디에선가 그를 겨냥한 저격수의 총탄에 머리통의 절반이 날아간 것이었다.

나는 옷을 털고 일어서며 머리맡에 내동댕이쳐진 안경을 챙겼다.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조차도…….

나는 앉았던 의자에 풀썩 몸을 던지고 우두커니 창밖을 넘어다 봤다. 그 곳에는 오후의 햇살이 발가벗은 아내처럼 드러누워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내 뒤로 다가와서 어깨를 치며 오른쪽 팔을 꺾어 올렸다.

.”

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식은 커피가 흥건히 고여 있는 테이블위에 얼굴이 쑤셔 박혀졌다. 그는 왼손마저 꺾어 올린 뒤 싸늘한 수갑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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