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작년 이맘 때 전남 광주에서는 광주상공회의소 회장이 광주시장과 전남지사를 대놓고 비판하는 바람에 지역이 시끄러웠다. 광주상의회장은, 광주시가 요구하고 있는 자동차 100만대 생산 대선 공약과 관련, “윤 시장(윤장현 광주시장)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자동차 100만대 생산도시 공약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또 전남도가 추진하는 택지지구 분양에서 지역업체를 배제하고 있다며 당시 이낙연 전남지사도 겨냥했다.

광주상의회장의 광주ㆍ전남 시도지사 공개 비판

지역 상의회장이 그 지역 시도지사를 공개 비판하는 것은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광주상의회장이 지역 언론사 소유주라는 점이 주목받았으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상의회장으로서 관(官)을 노골적으로 비판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광주상의회장은 “대전, 대구, 울산, 부산 등을 가보면 온 도시가 공사판인데 광주는 조용하다”며 “광주가 이렇게 가다간 이슬만 먹고 살아야 한다”고도 했다. 지역경제가 어려운데 광주시장은 뭐하고 있느냐는 추궁이었다. 적어도 대전상의에겐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는 광경이다.

2조원 이상 투입되는 광주도시철도 2호선 건설이 올해부터 본격화된다는 점만 봐도 광주 업체가 이슬만 먹고 살아야 한다는 주장은 과장이다. 도시철도 2호선만 놓고 보면 오히려 대전상의 회장이 대전시장한테 따져 물어야 할 소리다. 대전도 전임시장 때 광주와 같은 규모의 2호선 사업을 승인받았다. 현재 가액으로 2조 원 정도 되는 ‘밥상’이다. 그대로 받았으면 대전에도 곧 2조원이 풀리는 사업이다. 대전시는 2조 짜리를 걷어차고 6600억짜리 밥상(트램)으로 바꿔 다시 신청했으나 승인 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태다.

지역경제 측면에서 보면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밥상을 차리는 데 드는 비용의 60%를 정부가 대준다는 점에서 큰 밥상을 받는 게 유리하다. 내 돈(지방재정) 40% 부담 때문에 2조짜리보다 6천 억짜리가 낫다는 주장은 지역경제 활성화 측면으로 보면 바보의 셈법이다. 경제 외적인 측면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예상되지 않는다면 지역기업, 특히 건설업체 입장에선 2조짜리 밥상을 요구하는 게 정상이다. 물론 사업 시작도 하루라도 빠른 게 낫다.

일거리가 없어 지역 건설업체들이 비명을 지르는 데도 대전상의는 2호선 문제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 못했다. 그저 대전시장의 박수부대 노릇만 하고 있다. 작년 말 대전상의를 포함한 지역 경제단체들은 대전시가 추진하는 월평공원 민간특례사업을 지지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대전시장을 응원하는 시위였다. 대전에는 경제단체의 이런 관제데모가 종종 열린다. 월평공원사업이 침체된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명분이지만 멀쩡한 도심 공원을 크게 파괴한다는 점에서 불가한 사업이다. 

권력-관(官)-기업의 관계로 보면 경제단체의 관제데모가 이상한 일은 아니다. 권력은 관(官)을 틀어쥐고 있고 관은 기업을 지배하고 있다. 권력은 기업을 밥으로 여기며 기업은 기꺼이 권력의 밥이 되어 준다. 그래야 기업을 키울 수 있다. 권력은 기업에게 갑질을 하고 기업은 을(乙)이 되어 권력을 모시면서, 둘은 함께 ‘사회적 갑’의 지위를 유지한다. 기업과 권력은 공생 관계다.

권력과 기업의 관계는 최순실 게이트에서도 드러났다. 그런데 혹자는 권력이 요구해서 주었기 때문에 삼성은 피해자라고 말하고, 혹자는 삼성도 이익을 봤기 때문에 명백한 뇌물이라고 주장한다. 스스로 줬든 강압으로 줬든, 그것으로 기업이 망하거나 기업인 자신이 옥고를 치를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주지 않았을 것이고, 권력도 이 때문에 자신이 망할 줄 알았다면 거래를 강요하진 않았을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주는 교훈이지만 이런 거래가 쉽게 없어지긴 힘들다. 우리나라에서 기업은 앞으로도 권력의 밥이다. 권력을 얻으려면 돈이 필요한데 기업은 그 돈을 가장 쉽게 마련할 수 있는 창구다. 정치자금법은 이를 막아놓고 있지만 기업은 여전히 정치인의 젖줄이다. 이런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권력과 기업은 공생관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 점에선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의 차이가 없고, 과거와 현재가 다르지도 않다.

관(官)과 기업은 ‘유착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제법 돈이 되는 ‘먹거리’가 있을 경우, 공정하고 투명한 방법이 아니라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래가 행해진다. 정치인과 기업인이 모두 그렇다고 볼 수는 없으나 여기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우리사회는 아직 그렇게 돌아가고 있고 당장 이것을 막아낼 방법도 없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시도해봐야 한다.

지역 상의회장까지 관(官)의 을(乙)이어야 하나

경제단체들이 달라지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상공회의소도 바뀌어야 한다. 지역 상공회의소는 대표적인 경제단체다. 상의회장은 무보수 명예직이다. 그러나 지역경제계의 수장(首長)으로 불릴 만큼 중요한 자리다. 대전상의회장은 2000개 지역기업 회원들을 대표한다. 지금 차기 대전상의회장을 뽑는 절차가 진행중이다. 정성욱(금성백조주택회장) 최상권(신우산업회장) 두 후보가 경쟁하고 있다. 다음달 초면 새 회장이 결정된다. 

대전상의회장은 대전시장과 함께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자리다. 그러면서도 지역기업과 지역경제 문제에 관한 한, 경제계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어는 사람이어야 한다. 기업이 관(官)에 대해 을(乙)의 신세를 면하기 어려운 건 불가피한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지역 상의회장까지 시도지사의 을(乙)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지역경제 측면에서, 지역 기업체를 대표해서 할 말은 하는 회장이어야 한다. 

우리는 아직 어떤 기업이 대통령에게 밉보이면 검찰과 국세청이 가만두지 않는 나라지만 시도지사 맘에 안 든다고 사주 잡아가고 세금폭탄 맞는 일은 없다. 물론 지역기업이 시도지사에게 찍히는 경우에도 불필요한 어려움을 겪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각오는 돼 있어야 지역 상의회장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상의회장이 명예직이긴 하나 그 소임을 보면 간단한 자리가 아니다.

지역 상의회장은 시도지사 비위나 맞추면서 관(官)에서 이권을 챙길 수 있는 자리로 인식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젠 달라져야 한다. 시장 박수부대 노릇이나 하면서 명예를 누리는 상의회장은 자사 경영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지역경제와 지역기업에는 별 도움이 못된다. 누구든 대전상의를 새롭게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새 회장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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