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황을 모면해야 한다. 여기서 죽으면 개죽음이야. 이를 깨물고라도 살아야한다.’

다시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레스토랑 문 쪽은 그가 지키고 있어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후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달아날 틈이 있다면 가슴까지 차오르는 카운터를 뛰어넘는 길 뿐이었다.

카운터를 뛰어 넘자. 달아나자. 저 미치광이의 총에 죽을 수는 없다. 저자가 언제 총부리를 내게 겨눌지 모른다. 살아야한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오른쪽 무릎이 가슴에 닫도록 끌어당겨 낮은 포복 동작을 취했다.

그때였다. 무릎가까이에 있던 테이블 다리가 내 발에 걸려 흔들렸고 이내 가까스로 얹혀있던 커피 잔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쨍그랑.”

산산 조각난 커피 잔의 파편이 싸늘하게 숨죽이고 있던 공간의 구석으로 흩어졌다.

나는 내심 소스라치게 놀랐다.

제기랄.’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여종업원의 머리에 총을 들이대고 있던 그 역시 움찔 놀라며 고개를 획 돌렸다,

그의 잔인한 눈빛이 내 눈빛과 마주쳤다. 낡은 발동기같이 숨 가쁘게 뛰던 심장이 지극히 짧은 시간동안 멎어버린 것을 느꼈다. 싸늘한 냉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내 눈에 비친 그의 눈빛은 자신이 위대하다는 착각 속에 함몰된 그런 미치광이의 눈빛이었다. 사악한 웃음이 전해왔다.

내가 커피 잔을 떨어뜨리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내가 테이블 밑에 숨어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내 쪽은 안중에도 없이 종업원들만 다그쳤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 앞에 세워놓을 인간방패인 여종업원뿐이었다. 그러다 내가 눈에 띄자 마음이 달라진 모양이었다. 소름끼치는 웃음을 입술사이에 머금기 시작했다. 어두운 구석이 남아있는 동공 주변에서 피비린내 나는 잔인함이 흘러내렸다.

쥐새끼 같은 놈…….”

그는 말을 잘게 씹으며 서서히 총구를 내게로 돌렸다. 이어 한쪽 눈을 감은 채 내 머리를 향해 권총을 조준했다.

문 밖에서는 연신 메가폰 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지만 그는 그럴수록 더욱 여유를 부렸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내 머리통을 날리기 위해 정조준을 하고 있는 있었다. 총구가 정면으로 빤히 들여다보였다.

내 눈이 권총의 관음 쇠를 통해 그의 한쪽 눈과 일직선상에 놓였다.

나는 인조 대리석 바닥으로 스며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의 눈에 나를 살해하려는 강렬한 잔인함이 이글거렸다. 숨을 멈췄다. 하지만 방법은 단 한 가지 달아나는 길 밖에 없었다. 그것이 최선의 길이란 생각이 나를 들볶았다. 초능력자일 수도 또 사라질 수 있는 신통력을 지니지도 못한 현실에서 내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6개의 발을 급히 움직이며 책장 밑으로 달아나는 딱정벌레같이 삼십육계를 하는 것밖에 없었다.

총알이 날아오기 전에 나는 달아나야 해, 하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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