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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지도 극즉반영즉손
천지지도 극즉반영즉손
  • 박한표
  • 승인 2018.02.18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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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표 인문운동가의 사진하나, 이야기 하나, 생각하나]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생각 하나 31

'깨어 있어야한다'는 말은 자신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사람은 원래 자신이 경험해본 적 없는 세상은 잘 보지를 못하고, 잘 알지도 못한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언제든, 무심코, 한 치의 악의 없이, 편견이 가득한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사실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깨어있음이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미안해하지 않는 사회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불편함을 호소하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내면화돼 있는 자신의 편견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예민함부터 탓한다. 이런 식으로 다수의 편견이 힘센 사회에서 그로 인해 상처받은 소수자에게 우리는 "소수의 관점을 다수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오히려 호통친다. 우리는 언제든 상대방에게 잘못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때 바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하여야 편견을 버리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는 지혜를 '펜싱' 경기 규칙에서 배울 수 있다.

펜싱에서 쓰이는 용어로 "Touche 뚜쉐"라는 프랑스어가 있다. 한국말로 하면 과거분사로 수동적인 의미를 띤, '다았다, 맞았다, 찔렀다' 쯤 된다.

펜싱은 찌른 사람이 아니라 찔린 사람이 '뚜쉐'라며 손을 들어 점수를 주는 시합이다. 조승연 작가는 <말하는 대로>에 나와 우리 사회가 '멋있게 지는 법'을 잃어버린 사회라고 말하면서 이 펜싱 경기를 예로 들어 말했다. 우리 사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면 그 승리를 독점하고(승자독식사회), 게다가 그 승리를 지나치게 우상화하는 경향이 짙고, 그러한 경향이 오늘 날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긴 사람을 지나치게 신용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 '멋있게 지는 법'보다 일단 그래도 이기고 싶은 것이 우리 인간들의 욕심이다. 그래서 그 욕심을 잘 경영하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무조건 이기는 게 정치라는 생각을 수정하여야 한다.

우리는 편견과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질 줄도 알아야 한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둘, 문장 하나 32

천지지도 극즉반영즉손

天地之道 極則反盈則損

천지의 도는 끝까지 가면 돌아오고, 가득 차면 이지러진다.

하늘을 향해 던진 돌도 최고점에 이르러야 비로소 떨어지기 시작한다.

달도 차면 기울어 보름달에서 그믐달로 바뀐다.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고,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이야기 하나 33

<뱅샾62>에 걸려 있는 그림

무엇을 보고 있을까?

본다는 것은 간단한 것이 아니다.

본다의 수동태 보인다도 있다.

그림의 그는 나를 보고 있다.

오늘은 사람의 부조리에 대해 '보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산다는 것, 그것은 부조리를 살게 하는 것이다. 부조리를 살게 한다는 것은 먼저 부조리를 바라보는 것이다" (알베르 까뮈) 여기서 부조리란 "세계, 그 안에서의 삶이 가진 이해할 수 없음"이다.

부조리, 즉 삶과 세계의 무의미성 앞에서 자살은 문제의 소멸일 뿐, 해결이 아니다.

까뮈는 그 문제 해결은 반항이라고 했다. 여기서 반항은 "사막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그 속에서 버티는 것'이다. 어떻게?

삶과 세계의 무의미성, 곧 부조리 앞에서,

-희망을 갖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

-구원을 호소함 없이 사는 것

-자살로써 회피하거나 기권하지 않는 것

-쓰라리고도 멋진 내기를 지탱하는 것이다.

까뮈는 <시지프스의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를 반항하는 인간의 표본으로 소개하였다. 그는 "아무리 해도 끝장을 볼 수 없는 고통을 향하여 다시 걸어 내려오는' 그의 모습에서 반항을 보았다.

까뮈에 의하면, 이 시지프스의 행위가 '무의미에 의미 주기'란 것이다. 이것은 무의미한 삶에 스스로 '반항'이라는 의미를 줌으로써 그 형벌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이로써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는 까뮈의 말이 이해가 된다.

더 나아가 단순히 '사막에서 버티기'보다 '사막을 건너는 법'은 없을까? 철학자 김용규는 그 답을 이렇게 한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마치 그런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을 잘 알면서도,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며, '헛된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사막을 건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문장 하나 34

모든 법은 인연 따라 생기고, 모든 법은 인연 따라 없어진다.

이것이 말미암아 저것이 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발생하므로 저것이 발생한다. 연기법이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생각 하나 35

주어진 가난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만, 스스로 선택한 맑은 가난은 절제된 아름다움이며 삶의 미덕이다. '맑은 가난'을 한자로 말하면 '청빈'이다.

청빈하려면 만족할 줄 알고 그리고 나눌 줄 알아야 한다.

청빈의 원뜻이 나눠 가진다는 것이다.

청빈의 반대가 '부자'가 아니라, '탐욕'이다.

'탐貪자'는 조개 '패'자에 이제 '금'자로 이루어져 있고, '빈貧'자는 조개 '패'위에 나눌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까 탐욕은 화폐를 거머쥐고 있는 것이고, 청빈은 그것을 나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 곳이다."(마하트마 간디)


박한표 인문운동가,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경희대 관광대학원 초빙교수, 프랑스 파리10대학 문학박사, 전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프랑스 문화원 원장, 와인 컨설턴트(<뱅샾62>)

박한표 인문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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