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민의 정치레이더 7] 지방정치, 중앙정치 예속에서 탈출해야

설 명절 잘 쇠고 계신지요? 차례와 성묘를 마치고 가족 친지들이 도란도란 모여앉아 이야기꽃을 피울 시간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방이 제집 안방인 양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도록 뛰놀 것이고, 여인들은 차례 상 뒷설거지를 끝내놓고 수다로 절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풀 것 같습니다.

어르신들은 주안상을 차려놓고 담소를 나눌 것으로 예상됩니다. 남자 셋이 모이면 안주처럼 등장하는 소재가 ‘정치’입니다. 올해는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까지 있다 보니 정치 이야기가 나왔다치면 밤을 새워도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지역정당의 추억도 중간 중간 소환될 만합니다. 충청도를 예로 든다면 자민련이나 선진당이 상머리에 오를 테지요. ‘그래도 그때가 그립다’는 분들이 여럿 계실 겁니다. 그런데요, 이제 지역정당은 부활가능성이 전혀 없는 걸까요?

지역정당이 제 기능을 못하고 소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중앙집권적인 권력구조와 승자독식의 정치체제 때문입니다. 권력이 서울(수도권)로 집중된 상황에서 충청도가 겪어온 정치적 역사라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대통령이 누가되느냐, 국회 제1당이 누가되느냐에 따라 ‘이중대’가 되어야 했고, 또 ‘합당’의 대상이 됐던 것입니다. 이제 충청도는 ‘캐스팅보트’만 갖고는 한계가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역 영향력의 한계를 체감하다보니 안에서부터 무너져 내리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최근 둘로 쪼개진 호남지역 국민의당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특히 ‘헌법’이란 법망에 갇혀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노예처럼 휘둘리는 현실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정당공천제’입니다. 그래서 총선이나 대선 때마다 ‘정당공천제 폐지’는 단골공약입니다. 하지만 기득권 세력, 특히 국회는 법이 바뀌지 않는 한 정당공천제 폐지는 요원해 보입니다. 당장 자기들 밥그릇이 줄어드는데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법이니까요.

때문에 이번 참에 개헌을 통한 지방분권 확대 범주에 지역정당 설치조항을 반드시 반영해야 합니다. 물론 상황은 녹록치 않습니다. 국회의 지방분권 개헌 논의에 정당공천제는 뒷전에 밀려나있으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재정권과 입법권을 온전히 옮기는 지방분권 개헌이 이루어진다면 지역정당이 등장할 여건은 충분합니다. 하기야 굳이 개헌까지 하지 않아도 지금의 정당법 개정만으로도 기초단체장선거 정도는 지역정당이 나설 수 있습니다. 현재 지역정당은 독일 등 유럽 국가들뿐만 아니라, 일본과 미국 등에서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들 국가에서는 지역정당을 통해 지역밀착형 생활정치가 활성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지방분권을 해서 지방정부가 독자적인 예산을 편성‧운용하고, 자치 입법이 가능해진다면, 그만큼 지방정부를 견제‧감시할 지방의회의 영향력도 커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최호택 배재대 법무행정대학원장은 지방분권 개헌과 지역정당의 상관관계에 대해 이렇게 주장합니다. “지방분권을 한다는 건 지방정당을 허용한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지방정치가 중앙에 예속된 상태에서 어떻게 분권을 하나. 개헌 내용에 지방정당의 설립도 같이 허가해야 한다. 지방정당과 중앙정당이 연계를 통해 정책을 반영해야 한다. 다만 이번 개헌에서 이런 내용들이 다뤄지지 않으면 국회법 개정도 마찬가지로 어렵다.”

지방분권 개헌이 이루어져 지역정당이 생긴다면 지역의 시민단체 활동에도 변화가 예상됩니다. 시민운동가와 활동가들이 지역정당에 뛰어들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시민 참여가 활발해질 것이라는 긍정적 요인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역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지방정당이 생기면 굳이 시민단체가 필요할까요? 지역정당의 목소리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시민단체의 영향력은 그에 반비례할 수도 있습니다. 

지역정당의 출현의 부작용도 생각해야 합니다. 박재욱 신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정치학으로의 산책>(한울아카데미, 2014)에서 지방자치를 중앙과 지방간의 권한배분 문제로만 한정시킬 경우, 지방으로 이전된 권한이 지연이나 학연을 중심으로 한 소속단체들의 연고주의와 지역 토착‧토호세력에 의해 독점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다시 말해 ‘지방 민주주의’가 아닌 ‘지방 전제주의’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얘기지요. 

따라서 분권화된 권력이 소수에게 독점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정치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방분권 개헌을 통해 지역정당이 싹을 틔울 토양이 마련돼야 하겠지요. ‘분분한 낙화’와도 같았던 자민련과 선진당의 영화(榮華)는 ‘지역주의’라는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지방정치와 풀뿌리 민주주의가 제대로 꽃을 피우려면 지방분권 개헌을 통해 '이웃 같은' 지역정당을 길러내야 합니다.

다양한 시민들의 참여와 정책들이 지방정부를 바꾸고 지방정치를 바꾼다면, 머지않아 설 명절에 도란도란 모여 앉은 가족과 친지들은 정치를 안주삼아 차례 주 한 잔해도 옥신각신, 티격태격하는 일은 좀 줄어들지 않을까요? 남은 연휴 건강히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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