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창호의 허튼소리] 수필가, 전 부여군 부군수

나창호 전 부여부군수, 수필가.
나창호 전 부여부군수(수필가).

올 겨울은 예년에 비해 눈도 자주오고 날씨도 무척이나 추웠다. 영하의 강추위가 연일 계속돼 부득이한 볼일이 아니면 밖에 나가기도 꺼려졌다. 독감마저 유행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삶이 어려운 서민들에게는 설상가상의 고통을 안겨줬다.

헌데 추운 날씨만큼이나 나라경제마저 을씨년스럽다. 경기가 안 좋고 장사도 안 된다고들 한다. 정부가 최저임금을 한꺼번에 대폭 올린 부작용 같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을 주창하며 올해의 시간당 최저임금을 (작년의 6470원에서 7530원으로) 16.4%나 가파르게 올렸는데, 되레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의 주장은 소득이 오르면 소비가 많아지고 내수가 진작돼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인데, 그 주장이 맞는다면 지금쯤 노동자들은 즐거워해야 하고, 요식업소들은 손님들로 넘쳐나 흥겨워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젊은이들은 아르바이트 자리도 찾기 어렵다며 죽을상이고 서비스 업소들은 장사가 안 된다고 아우성이라 한다. 무언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 소득은 오르지 않고 경제가 오히려 죽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최저임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체나 소상공인들은 오히려 직원을 감축하거나 채용을 줄이고, 겨우 현상 유지가 가능한 업소들은 종업원 근로시간을 단축해 임금을 작년 수준이나 약간 상회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려한다는 것이다. 어떤 음식점은 종업원을 아예 쓰지 않고 버티면서 저녁 시간대는 직장이나 학교에서 돌아오는 자식들의 도움을 받아 운영한다고 한다. 

필자가 독감으로 인해 여러 날을 고생하다가 모처럼 산행을 하고 일행들과  함께 자주 가던 칼국수 집에 들르니 ‘(근무시간) 조정으로 오후 3시부터 5시까지는 휴식시간입니다. 5시부터 영업합니다.’라는 안내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2시간 분의 최저임금을 주지 않으려는 방편이 아닐 수 없다. 전에도 오후 3시 넘어서는 대부분의 식당이 종업원들의 휴식시간이었지만 임금을 깎는다는 소리는 없었고, 부득이한 경우 손님들도 때늦은 식사를 할 수가 있었다. 

외출했다 돌아오다 우연히 경비실 창문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보니 ‘점심시간 2시간, 저녁시간 2시간은 휴식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또한 경비원들의 임금을 올리지 않기 위한 방편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이는 나은 편이다. 얼마 전의 언론보도에는 서울의 어느 아파트의 경우 경비원 전원을 해고했다는 기사도 있었으니 말이다. 마트에 들렸던 김에 종업원한테 “월급이 많이 올랐느냐?”고 물으니, “소용없어요. 시간을 줄였어요.”한다. 그 말을 듣고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분만 앞세운 최저임금 인상이 빛 좋은 개살구가 돼 사회 곳곳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아서다. 정도보다는 편법을 먼저 생각하는 비정상의 세상이 되고 있지 않나 싶다. 

얼마 전인가 청와대 정책실장이 최저임금 현장 홍보를 한다면서 서울 신림동의 한 김밥 집에 들려 “월급이 오르면 좋지 않으냐”고 말했다가 60이 넘은 김밥 집 아줌마로부터 “월급을 많이 받아도 경제가 좋아야 떳떳하죠.”하는 말을 들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또, 월급 190만원 미만 근로자는 임금을 정부가 1인당 13만 원씩 보조해준다고 선심 쓰듯 말한 모양인데, 보조금 신청비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종업원들이 4대 보험에 들어야 신청자격이 되는데 종업원들이 보험료를 차라리 월급으로 달라면서 가입을 꺼리고, 업소들도 올해 1년 지원을 받고나면 내년부터는 비용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기 때문에 신청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장 사정을 모르는 탁상행정을 펼친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급기야 공무원들이 대상 업체를 찾아다니며 정부 지원금 신청을 하라고 독려하는 모양인데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업체가 정부정책을 잘 몰라서 신청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아는 모양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대폭 인상한 최저임금의 문제점을 면밀히 분석하고 대책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 막연히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6개월은 지나 보아야 안다고 말할 일이 아니다. 자칫하다간 그동안에 우리 경제가 골병을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제는 예측 가능해야 한다. 정부는 우선 내년도의 최저임금을 어떻게 할지부터 밝혀야 한다. 올해 경제가 죽을 쓰는데도 내년도의 최저임금마저 대폭 올리겠다고 억지를 부리면 곤란한 일이다. 올해 수준으로 동결하거나 올리더라도 아주 소폭으로 올려야 옳을 것이다. 또 서울 같은 대도시지역의 물가와 시골지역의 물가가 같을 수 없고, 노동 강도가 강한 업종이 있는가 하면 서비스업 같이 비교적 노동 강도가 약한 분야도 있다. 따라서 지역간·업종간의 최저임금 적용을 달리하는 방안도 시급히 검토돼야 할 것이다. 정책은 결코 실험 대상이 아니다. 잘 되면 좋고 안 되면 할 수 없다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지금 미국과 일본은 경제가 아주 호황이라 한다. 미국은 실업률이 4%로 완전 고용에 가까운데 향후 더 낮아질 전망이라고 한다. 또 법인세를 대폭 낮추자 해외에 나갔던 기업들이 되돌아오고, 법인세로 절감된 비용 전액을 투자하겠다고 나선다 한다. 경제가 선순환 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도 일할 사람이 부족해서 해외에서까지 일할 젊은이들을 찾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세계경제가 호황으로 흐르는 물결에 올라타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족쇄들을 하루빨리 풀어줘야 한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최저임금 정책을 다시 들려다 봐야하고, 각국 선진국들과 달리 법인세를 올린데 대해서도 재검토 해봐야 마땅할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왜 국내투자를 꺼리고 해외로 빠져 나가려고만 하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경제정책에 자신이 없으면 자유시장 질서를 ‘통제의 손’으로 움직이려 하지 말고, 차라리 ‘보이지 않는 손’의 기능에 맡기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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