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지쳐 보였다. 많은 출혈로 자신의 존재가 희미해져가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 같았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권총을 다른 여종업원의 어깨에 올리고선 모습이 지칠 대로 지친 모습이었다.

그는 서른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동양계였다. 구레나룻을 기른 모습이 중국계로 보였다. 검은 머리칼, 우수에 젖은 눈빛, 까무잡잡한 피부, 다부진 체구........

그는 피가 흘러내릴 때마다 버릇처럼 헛바람을 내뱉었다. 총구 앞에 머리를 들이대고 있던 여종업원은 파랗게 질린 채 얼굴이 백지장으로 변해 있었다. 온몸을 오한 들린 것처럼 떨었다. 그럴 때마다 금발의 머릿결이 잔잔하게 물결을 이루며 어깨 위로 흘러내렸다.

문 밖에서 들리던 전투화 발자국 소리가 어떤 명령에 따라 우르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레스토랑 문을 경계로 주변을 에워쌌다.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 너머로 어두운 그림자가 언뜻언뜻 스쳐갔다. 쿵쿵거리는 발자국소리에 커피 잔이 잔 받침에 부딪쳤다.

완전 포위됐다. 인질을 풀어주라. 그렇지 않으면 사살하겠다. 순순히 자수하라. 다시 경고한다. 인질을 풀어주고 자수하라.”

코맹맹이 같은 메가폰 소리가 삑삑거리는 소음과 함께 들렸다.

나는 게으른 고양이처럼 레스토랑 바닥에 엎드린 채 혹시 그가 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숨을 죽였다. 그 때까지 나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내가 숨어있는 테이블 쪽에는 신경도 쓰지 못했다. 그는 은신처를 구한 너구리처럼 종업원을 다그치며 그들 속으로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나는 식탁 위의 커피 잔이 엎질러진 줄도 모르고 그를 주시했다.

식탁의 난간을 타고 흘러내린 커피가 머리맡에 떨어지며 얼굴에 점점이 튀어 박혔다.

! 개새끼들아. 들어오기만 해봐. 여기 있는 계집년들을 모조리 죽여 버릴 테니까. .”

사내는 고래고함을 지르며 레스토랑 문을 향해 권총을 쐈다.

요란한 총성과 함께 질긴 파열음이 긴 호텔 복도를 따라 쏜살같이 내달렸다.

자수의 기회를 주겠다. 앞으로 3분 동안 자수하지 않으면 사살하겠다. 인질을 풀어주고 순순히 무기를 버려라. 자수하라. 인질을 풀어주라. 그리고 자수하라.”

메가폰소리는 그의 악다구니 같은 고함에도 불구하고 기계적으로 계속 반복됐다. 문 밖에서는 경광음이 요란하게 들려왔고 추가 병력이 도착한 듯 또다시 한 무더기의 전투화 발자국소리가 물감이 번지듯 우르르 퍼졌다.

완전 포위됐다. 자수하라.”

메가폰소리가 최후통첩을 알리듯 숨 가쁘게 들려왔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는 눈치였다. 도리어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고 난 뒤의 여유 같은 것이었다.

경찰들의 포위망이 더욱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직감이 들자 그는 치통을 앓는 사람같이 이를 앙다물었다. 작은 눈에서는 새파란 살기가 배어나왔다. 듬성듬성한 콧수염의 푸르스름한 털이 빳빳하게 곤두섰다. 그 때 레스토랑 문이 밀쳐졌고 문간에 어설프게 쌓였던 테이블과 의자가 우르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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