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대전시의회 의장 선출 때 김경훈 더불어민주당 시의원이 민주당 당론을 어기고 출마해서 대전시의장이 되었다. 민주당 대전시당위원장인 박범계 의원은 노발대발했다. “의원총회의 결정에 개인적인 의견과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의원총회 결정은 더불어민주당 당원으로서 준수해야 할 당의 추상같은 명령과 진배가 없다”며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민주당 시의원은 단식 농성까지 벌여야 했다. 김 의원은 시의장이 되었으나 민주당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김 의장은 이후 민주당에 계속 사과의 뜻과 함께 복당을 노크해왔다. 그때마다 민주당의 입장은 냉랭했다. 김 의장의 복당 요청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은 대전 정치권의 관심사 가운데 하나였다. 이 문제는 단순히 특정 정당, 특정 정치인의 잘못된 처신에 대한 문제를 넘어, 밥 먹듯 뒤집히는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을 정치권 스스로 바로잡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였다. 그러나 정치인들 스스로 바로잡는 것은 역시나 어렵다는 점이 또 한번 확인되고 있다.

박 위원장은 최근 김 의장의 복당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화끈하게 사과하지 않았느냐”며 긍정적 메시지를 당에 전달했음을 공개했다. 박 위원장은 대전시민과 동료 시의원들에게 머리를 숙여 사과한 점, 제명 이후 정치적으로 고초를 겪은 점,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 당선을 위해 노력한 점, 다른 당 입당을 위해 기웃거리지 않은 점 등을 거론하며 나름대로 평가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관용의 미덕이 보기는 좋다. 그러나 원칙없는 관용은 적폐를 쌓는다. 우리 정치에서 가장 큰 적폐는 ‘정치인의 말바꾸기’와 ‘배신을 통한 영달이 가능하다고 보는 믿음’이다. 말을 바꾸고 배신을 해도 얼마든지 권력을 잡고 권한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게 있다. 배신을 해도 사과만 하면 된다는 사고가 팽배하다. 사과도 진실하지 않은 전략적인 사과가 대부분이다. 김 의장에 대한 복당 허용은 우리 정치의 가장 큰 고질병인 ‘정치적 적폐’를 한번 더 쌓는 것이다.

‘배신에 대한 믿음’만 강고하게 하는 관용 아닌가?

민주당의 복당 허용은 ‘말바꾸기 적폐’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미다. 박 위원장은 이에 대한 언급은 없는 것 같다. 만일 올 6월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뒤, 대전시의장 선출에서 제2의 ‘김경훈 사태’가 난다면 박 위원장은 어떻게 할 것인가? 또 노발대발하다가 사과하면 받아줄 것인가? 배신→사과→용서→배신→사과로 점철되는 게 우리나라 정치의 악습이다. 배신 못하는 사람이 바보로 보일 정도다. 이걸 바꿔보자고 노래를 불러도 사건이 날 때뿐이다. 

박범계 의원은 누구보다도 적폐청산을 부르짖는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장을 맡고 있다. 말과 행동을 뒤집는 정치인도, 화끈하게 사과하면 용서해주고, 우리 당에만 계속 충성하면 관용을 베풀어주는 게 적폐청산인가? 적폐청산위원장이 가장 큰 정치적 적폐를 한번 더 쌓고 있는 것 아닌가? 대안 없는 관용이 ‘성공한 배신에 대한 믿음’만 더 강고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복당을 허용한다면 이 부분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민주당의 대책은 무엇인가?

박 위원장은 “(복당 여부는) 전적으로 당원자격심사위원회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했지만, 현 정권에서 박 위원장의 정치적 위상을 보면 복당은 기정사실로 보인다. 박 위원장의 결심 과정도 궁금하다. 부정적이었던 복당 허용을 갑자기 바꾸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박 위원장이 복당 허용을 결심하는 과정에서 대전시당 차원의 의견을 들어보는 과정은 거쳤는지 궁금하다.

‘김경훈 사태’는  대전 충청의 정치권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다. 복당 허용이든 불허든 최소한의 절차는 거쳤어야 맞다. 만일 박 위원장 혼자의 결심이라면 ‘지금 민주당 대전시당’은 박범계의 사당(私黨)에 불과한 셈이다. 사당이라면 적폐 문제를 거론할 가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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