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열흘 넘게 안희정 충남지사의 종적을 알 수 없었다. 도지사는 하루 아니, 한나절도 자리를 비우기 힘든 자리다. 잠시라도 비우게 되면 그에 따른 대비책이 필요한 자리다. 이 때문에 불가피한 사정이 아니라면 도지사 일정이 매일 공개된다. 충남도는 홈페이지를 통해 도지사 일정을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7일부터 열흘 이상 충남지사의 일정은 묘연한 상태였다. 

‘충남도지사 1월 일정’에는 절반 이상이 비어 있다. 도청 홈페이지의 ‘도지사 일정’조차 열흘 넘게 공란이다. 이달 들어 30일 현재까지 근무일수 21일 가운데 11일은 도지사 일정이 없다. 비정상이다. 다른 시도지사들은 한달 일정이 빼곡하게 기록돼 있다.

시도지사는 연봉 전액 저축 가능한 '완전한 공인'

시도지사는 완전한 공인(公人)이다. 시도지사들은 재산공개 때마다 1억 연봉에 가깝게 재산이 불어나는 게 예사다. 이들은 보통 사람들과 달리 자기 월급을 쓸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바쁘고 힘든 자리다. 따라서 ‘보통 사람들은 월급 가지고 생활비도 모자라는데 시도지사들은 어떻게 봉급 전액을 저축할 수 있느냐’고 시샘하는 건 합당하지 않다. 시도지사는 대통령처럼 완전한 공인이다.

그런 만큼 시도지사는 직무를 게을리 해선 안 되며 시간을 쪼개 도민과 대화하고 민원인들의 얘기를 청취해주어야 할 의무가 부여된다. 이게 월급을 생활비로 다 써야 하는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이면서, 시도지사 일정을 단 하루도 어둠 속에 가려져선 안 되는 이유기도 하다. 공인이란 그런 자리다. 200만을 대표하는 도지사의 일정 절반이 오리무중의 상태라면 도지사직에 대한 심각한 해태다.

도지사를 만나야 할 사람들은 날마다 줄로 서 있다. 공무원들은 시급한 결제 때문에 시간을 다투고 도민과 민원인들은 일 때문에 도지사에게 시간을 얻으려 목이 빠진다. 모두 도지사의 일정과 관련된 수요다. 일시적이고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도지사 일정 공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공개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안 해도 되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그건 절대권력 황제에게나 가능한 방식이다. 그런데 충남지사 일정 공개는 그런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 같다.

도지사 일정 남기는 충북, 지우는 충남

충남은 달이 바뀔 때마다 ‘도지사의 일정’을 지우고 있다. 서울 충북 등 다른 시도들은 그렇지 않다. 충북도 홈페이지에는 도지사의 1월 일정이 빼곡하게 기록돼 있다. 몇 년 전 일정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충북은 도지사가 열심히 일한 흔적을 남겨놓고 있지만, 충남은 도지사가 일한 흔적을 열심히 지우고 있다. 남겨두기 민망한 일정표 때문 아닌가 한다.

안 지사가 도정 성과로 내세우는 것 중 하나가 투명한 행정이다. 행정혁신의 성과라고 자랑한다. 공무원들에겐 투명한 행정을 요구하면서 도지사 자신은 일정조차 숨기고 다니는 상황인데 행정이 정말 투명해졌을지 의문이다. 위에서는 감추고 가리는데 아래에선 투명하게 하겠는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이다.

도지사의 과도한 해외출장(월1회 꼴)은 말릴 방법이 없다. 본인이 하고 싶으면 도지사 일정표를 숨기면서도 가는 거다. 도민들은 못 만나는 한이 있더라도 외부 특강은 안 할 수 없다는 도지사의 고집도 말릴 재간이 없다. 그러나 안 지사는 이 때문에 도지사 일정조차 가리고 다녀야 하는 처지가 되어 있다. 설사 대선후보로서 해외에 나가 배우는 게 많고, 특강 가서 자신을 홍보를 할 수는 있겠으나 정치인으로서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는 본인도 알 것이다.

다보스 포럼이, 도지사 일정표까지 가리고 참가해야 할 행사였다면 얻은 게 있을 것이다. 안 지사는 갔다 와서도 일언반구가 없다. 29일 출근했다는 안 지사는 정무팀 및 일부 간부들과 티타임을 가졌다고 한다. 간부 티타임 직후엔 도지사가 기자브리핑 등을 통해 도민들에게 견학 보고든 성과보고든 하는 게 마땅한데 그냥 뭉개는 것 같다. 

안 지사는 지금 본인이 충남지사 신분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거나, 아니면 도민들을 너무 우습게 여기고 있거나 둘 중 하나다. 그렇지 않다면 도지사로서 이런 식으로 행동할 수는 없다. 도청의 한 공무원은 “대권을 노리는 사람이 작은 구멍가게(도청)에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고 말한다. 대권을 노리는 지위에 있는 (혹은 있던) 사람으로 ‘하찮은 도지사 자리’를 맡고 있기 때문이라면 도민에게도 본인에게도 도지사는 단 하루라도 불행한 자리다. 안 지사는 남은 기간 ‘도지사 일정 공개’만이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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