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블라디미르 선상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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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화여객선 조타실을 개조해 만든 블라디미르 선상 호텔 레스토랑은 조용했다. 하얀 벽면은 병원냄새가 날 만큼 단조롭게 처리됐으며 유리창마다 수술이 차랑거리는 미색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잔잔한 클래식음악 사이로 배의 엔진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렸다.

나는 그곳에 버려진 사내처럼 혼자 멍하게 앉아 있었다. 진한 커피향이 피어오르는 잔속에 낯익은 사내가 어른거렸다. 금테안경이 짙은 잔속에 반짝 거렸다.

길게 담배연기를 들이켰다. 푸른 연기가 음악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타며 허공으로 피어올랐다. 먼지를 일구며 언덕을 미친 듯이 내달리는 기마병같이 피로가 엄습해왔다. 다시 길게 끽연을 하고 깊게 패인 등받이 의자에 몸을 묻었다.

홀은 빈 병같이 비어 있었다. 금발의 호텔 여종업원들만 레스토랑 구석에 앉아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조용조용 주고받으며 연신 손을 놀려 하얀 수건을 고깔 모양으로 접었다. 잘 길들여진 손놀림이 수건을 접는데 익숙했다.

채린이 어디에 있을까.’

나는 몸을 벌컥 일으켰다. 팔이 부르르 떨렸다. 뜨거운 커피를 엎지를 뻔 했다. 호텔 종업원들은 내가 뜨거운 커피를 조심성 없이 마신 뒤 속이 뜨거워 몸서리를 치는 것으로 본 모양이었다. 재미있다는 듯이 키득거렸다.

나는 다시 매캐한 연기를 가슴깊이 들이키고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파란 연기에 그을린 속이 매스꺼웠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생침이 입 안에 가득 고였다.

오후의 블라디보스토크 항은 잔잔했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항구에는 정박에 지친 선박들이 촘촘히 꽁무니를 들이대고 출항을 기다리고 있었다. 경주마들이 출발 선상에서 좁은 문이 활짝 열리기만을 숨 가쁘게 기다리는 모습과 흡사했다.

내가 막 고개를 돌렸을 때 낡은 회색빛 화물선의 유리창이 햇살에 빛나며 날카로운 광선이 내 눈알을 예리하게 찔렀다. 광선은 끝이 뾰족한 화살처럼 눈알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순간 나는 움찔 놀라며 눈을 감았다.

 

아내가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극동대로 유학길에 오른 것은 나의 제의에 따른 것이었다. 그녀는 늘 꿈을 펼쳐 보고 싶어 했다. 도르르 말린 그림을 펴보고 싶어 하는 아이처럼 보채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녀의 눈빛에서 그것을 읽고 있었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그녀는 강단에 서는 것이 꿈이었다. 동료들 가운데 기대를 모았던 그녀가 결혼이라는 화사한 유리벽에 갇혀 발버둥치는 모습은 줄곧 나를 괴롭혔다.

시간만 나면 서재로 들어가 책 속에 파묻혀 사는 그녀의 모습은 내게는 또 하나의 고문이었다. 늘 지식에 목말라 몸부림치는 그녀가 사랑스러웠고 한편 측은했다.

아내가 그렇다고 가정에 소홀한 모습을 보인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털벙거리기 일쑤였기에 그녀는 그 빈 공간을 메우느라 늘 바쁜 일상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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