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이야기 하나, 생각 하나]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생각 하나 11

척박하고 메마른 밭에서 자란 포도를 갖고 만든 와인의 색과 향이 깊다. 

살아있는 생명체인 포도가 고단하게 자연과 씨름하느라 힘을 모두 소진시켰기에 와인이 더 맑다. 

순박하고 선량한 사람처럼.
순박한 사람의 표정은 같이 있는 사람들을 한없이 선량하게 만들어 준다.

와인도 색이 예쁘고, 향이 깊으면서 맑으면, 그것을 마시는 사람의 영혼을 깨끗하게 씻겨준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고생한 사람, 내려놓은 사람에게 그런 선량함이 나온다.

도시에 사는 사람보다,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사는 사람에게서 순박함이 더 나오는 이유일 것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도시처럼 욕망하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은 뽐내지 않는다. 와인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와인일수록 라벨이 단순하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생각 하나 12

영동 송호유원지 와인 파크

인 비노 베리타스(In Vino Veritas): 진리는 포도주에 있다.
혀만 즐거우면 될 일이지 온 몸을 즐겁게 할 요량으로 들이부으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생각 하나 13

"애야, 쇠가 튼튼한 게 아냐./살이 더 튼튼해." (원시인 코난 중 툴사 둠의 말)
"애야, 쇠가 튼튼한 게 아냐./살이 더 튼튼해." (원시인 코난 중 툴사 둠의 말)

힘보다 회복력(resilience)이 더 중요하다.

갈대와 떡갈나무의 차이이다. 태풍이 불어 닥치면, 강철처럼 튼튼한 떡갈나무는 박살이 나지만, 나긋나긋하고 회복력이 있는 갈대는 낮게 몸을 숙였다가 폭풍이 지나가면 다시 벌떡 일어난다. 떡갈나무는 실패에 저항하려다 오히려 확실히 실패한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생각 하나 14

'인간의 길'을 다시 찾아보자고, 사서삼경 중 <대학>을 읽다가 좋은 사자성어를 만났다.
  
혈구지도(絜矩之道)
  
헤아릴 혈(絜)과 모서리 구(矩)자이다. '혈구'라는 '구부러진 자를 가지고 제는 것'이란 뜻이다.
네이버의 사전적인 뜻은 "자기를 척도로 삼아 남을 생각하고 살펴서 바른 길로 향하게 하는 도덕상의 길"이다.
  
쉽게 말하면, '나나 남의 모서리를 동시에 살피는 것'이다. 팍 와 닿는다. 우리는 나의 모서리는 보지 못하고, 남의 모서리만 본다. '위대한 개인'은 남의 모서리만 보지 말고, 자신의 모서리도 보고, 내가 그러하지 못하면 다른 이에게 충고나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우리 주변을 보면, 자신도 못하는 일을 다른 이에게  "그렇게 하라"고 충고한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생각 하나 15

리듬으로 산다.

"아무리 고된 노동이라도 노래에 실리면 힘든 줄을 몰라요. 리듬 때문이지요." (이성복, <무한화서> 47)

계단 잘 내려가다가도 '조심해야지'하면 걸음이 엉켜 비틀거린다.
몸이 원하면, 머리를 개입시키지 말란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생각 하나 16.

집단적 감정이나 조직의 논리에 따라 관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소신과 원칙, 감성과 인격의 목소리를 따르며 살아가는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눈과 귀가 번쩍 뜨인다. 모두가 집단의 명령에 굴복해 약자들을 짓밟을 때도 단 한 명만이라도 용기를 내어, 그 불의와 폭력을 향해 ‘아니요’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희망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인문학자 정여울의 글에서 기억하고 있는 내용이다.

이런 것이 어떤 극한상황에서도 우리를 끝내 인간이게 만드는 힘이 아닐까?
그건 인생의 우선순위를 승리나 경쟁에 두는 것이 아니라, 고통 받는 타인을 향한 자비와 공감, 존엄과 정의에 두는 것이 아닐까?
이런 것이 ‘무찔러야 할 적들’과 ‘지켜야 할 우리’를 나누는 삼엄한 경계를 뛰어넘는 용기가 아닐까?
‘지켜야 할 우리’의 경계를 끊임없이 확장하는 자비와 포용이야말로, 아직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 힘이 아닐까?

그래, 이런 인문정신이 절대 필요한 시기를 우린 살고 있다. 
인간답게 하는 힘을 위하여. 브라보!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문장 하나 17

 

사용하는 말, 한 가지만 바꾸어도 인생이 달라진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생각 하나 18

인도에는 '아힘사'라는 고대부터 내려오는 비폭력적인 삶의 모델이 있다. 
아힘사의 첫 번째 원리는 '해치지 말라'이다. 명쾌하지 않은가요? '헤치지 말라!'
남을 헤치는 것 중에 제일 많은 것이 말이다.

물리적 폭력도 무섭지만
언어의 폭력은 더 무섭다.
사람의 정신과 영혼을 해치고 상처내기 때문이다.
언어는 그 사람의 수준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언어, 말의 수준은 그가 속한 조직과 공동체의 품격을 나타낸다.

오늘 우리 시대에, 특히 '아힘사'가 필요하다.
정권이 바뀌니, 우리의 기득권자들이 아무 말이나 한다.
 
그 '아힘사' 정신은 언어의 정화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아무 말이 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너무 난무해, 힘들다.
성찰하지 않는 많은 백성은, 아직도 믿는다.
그래, 난 인문운동가로 나선 것이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문장 하나 19

인문학은 사람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은 책을 읽어서 단순하게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인간다운 행동을 위한 자양분으로 삼아야 한다. 인문학의 고전을 읽으면 어떠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에 대한 대처능력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둘, 생각 하나 20

어제는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산까지 따라갔다 왔다. 모처럼 시골 친구들과 '화광동진'의 정신으로 한 나절을 보내다 왔다. 마지막일 것 같은 우리나라의 장묘문화를 체험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갑자기 내가 꿈꾸는 '인문운동가'의 삶을 생각해 보았다.

인문학에서 학을 빼고 '인문'하면 이해가 쉽다.
인문이란 말 그대로 하면 인간의 무늬와 인간이 그리는 무늬, 둘로 나누어야 한다고 본다.
인문과 함께 우리가 쓰는 말 중에는 '천문-하늘이 그리는 무늬'이란 말이 있다. 그리고  '천지인'을 생각한다면 '지문-땅이 그리는 무늬'이라는 말도 사용할 수 있다.

천문과 지문은 '이'가 지배한다면, '이'란 옥돌에 새겨진 무늬란다. 인간과 별 상관없이 자연이 그리는 무늬인 것이다. 이에 비해 인문은 인간에게 새겨져 있고, 인간이 관여하는 무늬라면, 인문은 '이'보다는 '문'에 방점이 찍힌다. 인간은 좀 더 자유롭게 자신의 무늬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인간도 하나의 큰 무늬, 커다란 결 위에서 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인간 각자는 하나의 커다란 결속에서 움직이지만 각각 '다름'을 가진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인문이란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 근본적인 철학적 요소들과 인간 중심의 근원적인 사상을 다룬다. 그 이유는 좀 더 나은 삶, 지혜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나만 잘 살자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인간끼리 잘 살자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힘든 처지에 놓인 그 사람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이 사람 사는 맛이고, 이런 것을 '인문정신'이라고 한다.

요즈음 관심 받는 것도 관심을 주는 것도 꺼리는 각박한 요즈음, 우리에게 인간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는 것이 인간들이 그리는 '인문정신'이다.

인문정신은 지식, 즉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그저 따뜻한 열린 마음에서 나온다. 그런 마음으로 생각의 틀을 만드는 것이다. 이 생각의 틀이란 세계관이다. 세계관이란 세계와 관계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을, 아니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를 잘 알게 해주는 것이 '인문정신'이다. 이것은 문학, 역사, 철학에서 다루는 영역이다. 

이런 인문정신이 부족하면, 우리는 쉽게 정치적 판단을 한다. 예컨대, 좋다, 나쁘다, 마음에 든다, 안 든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이분법적인 방식은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이념들에 지배받고 있기 때문에 그런다. 그러한 이념으로부터 벗어나 세계를 보고 싶은 대로 봐서도 안 되고, 세계를 봐야하는 대로 봐서도 안 된다. 인간적으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다시 한 번, 인간적으로, 매우 인간적으로.

이런 인문정신은 매너리즘에 빠진 일상, 부정적 사고, 열정 없는 꿈들을 막아주는 방패이기도 하다. 이런 방패는 사유하는 힘에서 나온다. 생각, 아니 사유하는 힘이 인문정신이다.


박한표 인문운동가,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경희대 관광대학원 초빙교수, 프랑스 파리10대학 문학박사, 전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프랑스 문화원 원장, 와인 컨설턴트(<뱅샾62>)

박한표 인문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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