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필자는 언젠가, 당신 손자의 서울대 합격은 어려서부터 한자(漢字)를 가르친 덕분이라는 한 어르신의 말씀을 우연히 들은 뒤, 한자교육의 효과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7~8년은 넘은 것 같다. 그동안 한자 교육의 효과에 대한 여러 사례들을 접했다. 20~30번은 되는 듯하다. 한자교육의 효과를 의심하는 경우는 한 번도 못 봤다. 효과가 확실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고 효과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사람도 많았다.

중위권서 1등 오른 학생 “한자 공부 도움 됐다”

후배 아들의 학교 성적은 대체로 중위권이었다. 그런데 작년 고3이 되면서 성적이 오르더니 전교 1등을 했다.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하다가 맘먹고 공부해서 주위를 놀라게 하는 경우가 있다. 후배 아들도 그런 학생일 수 있다. 그러나 후배 아들은 “한자 공부가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한다. 그는 공부는 안 하면서도 초등학교 때부터 누나를 따라 한자를 배웠다. 물론 누나도 한자 덕을 보고 있다고 한다.

1등은 정말 한자 공부의 효과일까? 1954년 일본의 한 초등학교 1학년 담임했던 이시이 이사오(石井動) 교사의 한자교육실험에 의하면 한자 공부와 무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시이는 초등 1년생(45명)에게 한자 200자를 가르쳐 150자를 익히도록 하는 목표를 정했다. 목표를 초과하여 1년간 300자를 가르쳐 평균 200자를 습득시킬 수 있었다. 200자는 당시 문부성의 1학년 목표치(30자)의 6배가 넘는 분량이었다. 

이시이는 그 효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담임했던 학생들은 지금 중학생이 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거의 모두가 학습 능력에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고 있고, 학생활동에도 적극적으로 활약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연일까? 이시이는 그렇지 않다는 점도 밝히고 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표음문자(가나)를 볼 때는 좌뇌만 활동하는 데 반해 표의문자(한자)를 볼 때는 우뇌와 좌뇌가 함께 작동하면서 처리하고 있는 것이 증명되었다.”<漢字가 내 아이를 천재로 만든다 / 키출판사>

대학 한문학 강사한테 들었던 일화도 귀를 의심케 한다. 강사는 몇 년 전 봉사활동을 하면서 ‘불우 청소년’ 경수(가명)를 만났다. 가정 형편으로 부모에게 버림받고 복지시설에서 돌보는 중학생이었다. 그는 밥 먹듯이 사고를 쳤다. 누구말도 듣지 않았다. 강사는 경수에게 명심보감을 가르쳤다. 문장을 읽어주면서 외워보라고 하였다. 대성공이었다. 이젠 학교시험 기간 중에도 시험 준비 대신 한문 공부시간을 기다린다고 한다. 경수는 지금 고등학생이다. 완전히 다른 학생이 되어 있다.

필자가 ‘한문교육의 효과’냐고 물었더니 강사는 ‘한문 때문’인지 확신할 수는 없다고 했다. 강사의 정성이 경수를 변화시킨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명심보감’이 아니었어도 이 정도로 성공했을지는 의문이다. 좋은 소설이나 영화 한편이 사람을 바꾸기도 하고,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종종 제자들의 삶을 바꿔놓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에 있어서 고전(古典)만 한 것은 없다.

고전은 인류가 등장한 이래, 도덕성과 능력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성현)의 지혜를 모아놓은 책이라 할 수 있다. 동양고전의 원전은 대부분 한자로 되어 있다. 반드시 한자로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자를 조금이라도 알면 이해가 쉽고 맛도 깊어진다고 한다. 경수는 ‘한자로 된 명심보감’을 배우고 그 맛을 느낀 게 분명하다. 경수는 명심보감을 줄줄 외우고 다닌다고 한다. 한문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면서 부모님의 처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도 한자 교육에 부정적인 시각들이 적지 않다. 자랑스러운 한글이 있는데 굳이 한자를 배워야 하느냐, 영어 과외도 부담인데 한자 과외까지 시켜야 하느냐는 등의 이유다. 한자 조기교육을 문제삼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론 한자에 대한 거부감이다. 한글만큼 자랑스러운 유산도 없다. 그러나 그것이 한자를 배우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못된다. 그런 논리라면 영어도 배워선 안 된다. ‘한자 과외’도 기우일 수 있다. 이시이 교사에게 한자를 배운 초등학생들이 과외를 해서 1년 만에 200자를 익힌 것은 아닐 것이다.

사자성어와 한자의 효용성

‘한자의 효용성’과 ‘중국의 시대’를 감안하면 한자 교육은 피할 수 없다. 김지철 충남교육감은 새해 방침을 ‘행불유경(行不由徑)’으로 표현했다. “다닐 때 지름길로 다니지 않는다”는 뜻이다. ‘효율성이나 작은 이익 때문에 원칙을 저버리는 행정을 펴지 않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김 교육감이 ‘행불유경’이란 용어를 빌리지 않고, 우리 말로 “원칙을 저버리는 행정을 펴지 않겠다”고만 표현해도 뜻은 전달할 수 있으나 메시지 효과는 크게 떨어진다. 교육청 공무원들조차 며칠 못가 잊어버릴 것이다.

교수신문에서 연말마다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는 정곡을 찌른다. 2016년엔 ‘군주민수(君舟民水)’, 2017년엔 ‘파사현정(破邪顯正)’이었다. 이 역시 우리말로 설명할 수 있지만, 우리말로만 쓰면 압축효과가 떨어지면서 메시지의 효과는 사라지고 만다. ‘군주민수’를 “임금은 물이고 백성은 배를 띄우는 물이지만, 물이 성나면 배를 뒤집는다”로만 발표한다면 언론조차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사자성어에는 ‘인간 사회의 기본법칙’이 들어 있다. 요즘 말로 ‘인문학의 법칙’이라고 할 수도 있다. 성인(聖人)은 나면서 안다지만 보통 사람들은 안 배우면 알기 어려운 ‘세상사의 이치’같은 것이다. 가령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말을 모른다면 자신이 토끼를 쫓는 개와 흡사한 처지일 때 자신도 곧 삶아질 수 있다는 점을 모를 수 있다. 반대로 새옹지마(塞翁之馬)의 뜻을 익힌다면, 혹시 사업에 실패하여 시름에 빠졌을 때에도 이 때문에 오히려 다른 좋은 기회가 올 수도 있다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 도리는 물론이고, 누군가의 아랫사람이 되었을 때, 혹은 윗사람이나 사장이 되었을 때, 혹은 장차관이나 총리가 되었을 때, 혹은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 자리에서 무엇을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법칙을 고전은 알려준다. 고전은 케케묵을 옛것이 아니다. 학생에게도 어른에게도 유용한 현재의 기술이며 도구다. 이것을 안 배워도 살아갈 수는 있으나 전투 수칙을 모르고 전쟁에 나가는 꼴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인문학의 법칙’이 존재한다. 사자성어는 그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 문학 철학 사회학 심리학 경제학 법학 등 현대 학문의 여러 분야에서 이런 문제를 취급하고 있으나, 이것을 포괄적으로 다루면서 권위를 인정받은 기초이론이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수학을 잘하려면 구구단을 외우고 함수를 배워야 하듯 ‘세상사의 이치’를 이해하려면 고전을 배워야 한다. 고전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으려면 한자를 알아야 된다.

아직은 영어가 지배하는 시대다. 앞으론 중국어가 대신하게 될지도 모른다. 단순한 언어 문제는 인공지능으로 해결될 수도 있다. 이미 스마트폰 앱만으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세상사의 이치’는 네이버나 인공지능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이미 네이버가 세상의 모든 지식과 정보를 알려주고 있지만 ‘세상의 이치’를 모르면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물어볼 수도 없다. 인문학의 법칙은 스스로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초등학생들이 배우는 '국학(國學)'에는 논어 맹자는 물론 노자 도덕경의 내용까지 실려 있다. 한 노교수는 이 책을 보고 머리가 쭈뼛 섰다고 한다. 

노자 도덕경까지 배우는 중국 초등학생들

중국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2021년엔 국가 GNP가 미국을 앞서고, 중국(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엔 1인당 GNP도 미국을 능가하겠다는 게 중국의 목표다. 실현될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바로 이웃’인 우리에게는 지금의 미국 이상의 존재가 될 것이다. 우리가 중국을 더 잘 알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중국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으로 ‘G2시대’를 열었다. 중국경제가 우리를 초월하여 우리가 ‘乙’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국을 잘 아는 한 노교수는 중국의 경제발전보다 중국 초등학생들이 배우는 책을 보고 놀랐다. 중국 초등학교에서 가르친다는 ‘국학(國學)’에는 논어 맹자는 물론이고 학자들에게도 시비와 논란거리가 되곤 하는 노자 ‘도덕경(道德經)’의 “道可道 非常道(도를 도라고 하면 그것은 상도가 아니다)”구절까지 소개돼 있다.

그 교수는 “국학에는 경서(經書)와 당시(唐詩) 등을 포함하여 중국 고전의 지혜가 시대를 망라하여 실려 있다. 교수인 나도 모르는 내용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그 책을 보는 순간 머리가 쭈뼛 섰다고 한다. 북경사범대가 발행한 초등학생용 국학은 12책으로 모두 합하면 1000쪽 이상 분량이다. 중국의 역사와 철학 인문학을 국민들에게 가르치는 ‘지혜의 책’이다. 한 중문학과 교수는 중국 국학은 다른 대학에서도 발행하고 있으며 영재용이 아니라 일반 학생들이 배우는 교재라고 했다. 후진타오 주석 시절부터 ‘국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우리가 상대할 중국은 ‘잘 사는 중국’못지않게 ‘유식한 중국’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중국을 상대로 많은 물건을 사고팔면서 더 많이 왕래하고 교류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하는 말, 그들이 하는 생각을 못 따라 간다면 ‘중국의 乙’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중국의 시대’를 거부할 수 없다면 한자를 거부하기 어렵다. 꼭 중국의 시대여서라기보다 ‘세상사의 이치’를 보다 수월하게 알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이 한자에 있기 때문이다. 한자를 배우면 공부를 잘하는 건 이 때문이다.

노교수의 걱정 “이대로 가면 중국 머슴 된다”

우리는 우리 국사(國史)조차 시험 과목에 넣었다 뺐다 한다. 본격적인 고전 교육은 엄두도 못 낸다. 문재인 정부는 한자 300자를 초등학교 교과서에 병기(倂記)하기로 했던 정책을 뒤집었다. 한자 교육도 이전 정부의 적폐로 본 듯하다.  일본은 중국과 사이가 안 좋다. 한때 ‘우리(일본)가 (중국 글자인) 한자를 꼭 써야 하느냐’는 논란까지 있었다. 그런 일본도 유치원에서조차 한자를 가르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권세가와 부잣집은 ‘한자’를 넘어 ‘한문’까지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한자가 경쟁력의 중요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불쌍한 건 학교에서조차 한자를 배울 수 없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다. 가난한 사람들 편이라는 정부가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다. 정치적 적개심은 말리기 힘들다. 평등교육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도리어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대로 가면 우리 아이들은 중국의 머슴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노교수는 걱정한다. 정부는 대책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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