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지법, 1970년대 말 실형 확정자 3명에게 모두 무죄 판결

최근 대전지법에서 40년전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기소돼 억울한 옥살이를 한 3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하는 판결이 내려졌다.
최근 대전지법에서 40년전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기소돼 억울한 옥살이를 한 3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하는 판결이 내려졌다.

최근 대전법원에서 의미있는 판결이 내려졌다. 지난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를 위반한 혐의로 구속됐던 3명이 해당 법조항의 위헌 판결로 모두 무죄가 선고된 사건이다. 당사자들은 모두 고인이 됐지만 40년만에 범죄자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대전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박창제 부장판사)는 대통령긴급조치위반 혐의로 기소된 3명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고 21일 밝혔다.

3명은 각각 다른 사건으로 기소됐다. 

한명은 지난 1978년 9월 16일 서울 동대문구에 있던 주거지에서 "유신헌법으로 인해 반공교육에 차질있다"는 제목으로 "유신헌법은 진정한 민주주의의 보루인 삼권분립을 찾아보기 힘들고, 긴급조치란 것으로 모든 일을 강압적으로 처리하고 있어 민주주의 이념에 배치된다. 이 체제대로 간다면 반공교육에 차질이 올 것이므로 유신헌법은 철폐돼야 한다"는 내용의 문서를 청와대로 송부했다. 유신헌법 철폐를 주장하며 청와대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또 한명은 1975년 9월 29일 대전 모처에 있는 노인회관 앞길에서 시민들이 있는 가운데 "자유당도 무너졌는데 공화당은 얼마나 갈 것이냐. 돈보따리를 싸다가 박정희를 주어서 살게 되었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또 다른 한명은 1975년 4월 초순께 대전교도소 인쇄공장에서 기결수 등을 향해 "대한민국 국민은 하루 벌어먹기도 힘들다. 그 이유는 정부에서 전부 착취하기 때문"이라는 등 수차례에 걸쳐 정부를 비판하는 언행을 했다.

당시는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가 발령된 시점이다.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는 유신헌법 철폐와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민주화운동이 거세게 일어나자 이를 탄압하기 위해 1975년 5월 13일 선포됐다. △유언비어의 날조·유포 및 사실의 왜곡·전파행위 금지 △집회·시위 또는 신문·방송 기타 통신에 의해 헌법을 부정하거나 폐지를 청원·선포하는 행위 금지 등을 처벌하도록 규정돼 있었다.

1979년 12월 7일 긴급조치 9호가 해제될 때까지 4년여 동안 지속된 긴급조치 9호 시대는 민주주의의 암흑기로 일컬어지며 8백여 명의 구속자를 낳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번에 무죄가 선고된 3명도 긴급조치 9호 중 유언비어 날조 유포 등을 한 혐의로 기소돼 모두 실형이 확정됐다. 적게는 징역 1년에서 많게는 징역 2년 6개월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살아야만 했다. 이후 이들은 범죄자라는 낙인속에 모두 세상을 등졌다. 

그런데 유죄가 확정된지 40년만에 새로운 세상이 왔다. 오랜 투쟁 끝에 민주화를 맞게 됐고 대법원이 긴급조치 9호를 전원합의체 결정을 통해 위헌으로 판결한 것이다. 지난 2013년 4월 18일자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긴급조치 9호는 그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긴급조치 9호가 해제 내지 실효되기 이전부터 유신헌법에 위반돼 위헌 무효이고 나아가 긴급조치 9호에 의해 침해된 기본권들의 보장 규정을 두고 있는 현행 헌법에 비춰 보더라도 위헌 무효"라고 판결했다.

검찰은 전원합의체 판단을 근거로 지난해 10월 20일 재심대상판결이 된 이들 3명의 사건에 대해 모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받아들였다. 그리고 재심개시이후 2개월만에 무죄가 선고됐다.

대전지법 제12형사부는 최근 판결을 통해 "이 사건 공소사실은 그 적용법령인 긴급조치 제9호가 당초부터 위헌 무효이어서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이 정한 '범죄로 되지 아니하는 경우'에 해당돼 죄가 되지 아니하므로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이미 고인이 된 3명 모두 유죄로 확정된지 40년만에 조금이나마 억울함을 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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