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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
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
  • 김경훈
  • 승인 2018.01.19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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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마음이 뒤숭숭 하다. 그러나 이런 내 심정은 당사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지금 내 아들의 심정은 어떨까. 가기 싫은 곳을 억지로 가는 기분? 두려운 마음? 초조한 심정? 사람들은 군에 입대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다 가는 곳이고, 군대에 갔다 와야 철이 든다고. 그러나 이런 말은 당사자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30년 전의 내가 그랬으니까.

내가 시작부터 군대 얘기를 꺼낸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눈치 빠른 분들은 금방 짐작 하셨을 것이다. 내 아들이 군대에 간다. 사흘 남았다. 그래서 우리 가족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무척 소중 하다. 가족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지만 그 마저 여건이 좋지 않다. 내 허리가 고장이 나서 오래 서 있거나 앉아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아쉽다. 아마 나는 아들을 군대에 보낸 뒤, 이렇게 변하지 않을까? 맛있는 것을 먹을 때마다, 재미난 영화를 볼 때마다, 멋진 풍경을 볼 때마다, 군에 있는 아들을 떠올릴 것이다. 아내는 나보다 더 할 것이다. 별다른 내색은 않고 있지만 밤마다 침대를 뒤척이는 아내의 모습에서 서운함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리저리 돌아눕는 바람에 나 역시 잠을 설치지만 짜증을 부릴 수는 없다.

문득 아들이 태어나던 때가 떠오른다. 20년 전의 여름이었다. 후텁지근한 습기가 낮게 내려 앉아 대기를 맴돌고 있었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진통이 시작되었다. 자기야, 일어나봐. 아기가 나오려나봐. 아내는 잠든 나를 흔들어 깨웠다. 양수가 터진 걸 보아 심상치 않을 것을 느꼈다.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짐을 꾸려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때까지도 산부인과 건물은 어둠에 점령당하고 있었다. 우리는 유리문 옆에 있는 야간 벨을 눌렀다. 아기가 나오려고 해요. 빨리 열어줘요. 그러나 급한 것은 우리뿐이었다. 간호사는 하품을 하며 언제부터 진통이 시작되었는지를 물었고, 지금 의사를 불러도 한 시간정도는 기다려야 된다고 말했다. 빨리 와달라고 부탁해 주시면 안 될까요? 내 말이 끝나자 간호사가 빙긋 웃었다. 진통이 시작 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한 시간 정도는 괜찮을 거예요. 그녀는 차분한 어조로 우리부부를 안심시켰다. 아내는 환자복으로 갈아입는 동안에도 연신 신음을 뱉어냈다. 한 시간쯤 병원침대에 누워 진통하고 있을 때 의사가 나타났다. 그는 아내에게 분만촉진제를 놓으며 지금부터 시작이니까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내의 손을 잡으며 나는 다 잘 될 거니까 걱정말라고 얘기 했지만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분만실로 들어갔다. 아내의 고통스런 표정이 자꾸 내 눈에 밟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간호사의 목소리가 분만실 밖까지 또렷하게 들렸다. 그러나 아기울음 소리는 좀처럼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두손을 모아 기도했다. 하느님, 처음으로 부탁드릴게요. 아기와 산모가 건강하게 해주세요. 나의 간절한 바람과 달리 시간은 계속 그 상태로 흘러갔다. 안에서는 아내의 기력이 다 했는지 더 이상 힘주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때였다. 분만실의 자동문이 열리며 마스크를 쓴 의사가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이 상태로는 산모와 아기가 위험 할 수도 있으니 수술을 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고 나는 그순간 개인병원은 수술을 권하니까 될 수 있으면 큰 병원으로 가라는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지금 그런 것을 따질 형편이 아니었다. 진통이 시작되고 이미 다섯 시간이나 지났기 때문이다. 산모와 아기의 건강만 생각하기로 하자. 그게 지금의 내가 할 일이다. 나는 그렇게 마음먹고 간호사가 내민 수술 동의서에 사인했다. 의사가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 시간 뒤, 분만실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너무나 우렁차고 씩씩했다. 내 인생에서 그렇게 감격스런 아기 울음은 처음이었다. 의사가 밖으로 나오며 3.3킬로의 건강한 아들이며 산모의 상태도 괜찮다고 말했다. 의사가 너무나 고마웠다. 그를 끌어안고 입이라도 맞추고 싶었다. 내 아들은 그렇게 태어났다. 분만실에서 아내의 품속에 안긴 아들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나는 세상의 모든 생명은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들의 손에 입을 맞추며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이 아이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줄 것이라고. 이 아이에게 나는 좋은 아빠가 될 것이라고.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아들은 우리 부부에게 많은 기쁨을 안겨주었다. 유치원에서 만든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주던 감동의 순간, 또 비뚤어진 글씨로 엄마와 아빠에게 편지를 써주기도 했다. 나는 그걸 읽으며 얼마나 기뻐했던가.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현관에서 아들은 내 가슴에 안기며 사랑해요, 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나는 감동했다. 그 고맙고도 가슴벅찬 환희의 순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소중한 아이, 그 아이가 이제 군대에 간다. 지금 이 순간, 서운함에 눈물이 쏟아 질 것 같지만 나는 울지 않을 것이다. 그건 대한민국에서 아들을 가진 모든 부모가 겪어야 할 당연한 일이니까. 아빠로써 인생의 선배로써 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들아! 낯선 환경은 누구나 두렵고 떨리는 법이란다. 그러나 막상 부딪혀 보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지. 그러니 지레 겁을 먹고 마음의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아빠는 내 아들 준석이가 이런 군인이 되어 주길 기대 한다. 동기와 선후배들을 먼저 배려하는 군인. 우리나라의 안보와 미래를 고민하는 군인. 그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젊은이의 모습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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