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의 정치 톺아보기

염홍철 전 대전시장. 자료사진.
염홍철 전 대전시장. 자료사진.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건 책을 통해서다.  <제3세계와 종속이론>은 대학생이 되고 얼마 안있어 접한 내게 한국사회에 대한 새로운 문제의식을 키워나가게 한 많은 책들 중 하나다. 저자 '염홍철'의 이름도 자연스레 기억하게 되었다.

그런 그를 30년쯤 흐른 후에 처음 만났다. 공직에 있던 2015년 여름쯤이다. 예상보다 말씀이 과하지 않다는 느낌에 좋은 말씀도 많이 들으면서, 자리의 끝 무렵에 나의 솔직한 질문 겸 생각을 말했다. 권선택 전 시장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기에 “시장을 나오네 안나오네” 말이 많던 상황인지라 궁금하기도 했다. 

“시장님, 제가 중앙에서 내려와 공직생활하기 전만해도 어쩌면 실시될지도 모르는 시장보궐선거에 시장님 얘기가 나오면 솔직히 ‘언제 때 염홍철이야? 또 나와?’ 했었지요”

“...” 웃으신다.

“그런데 공직생활하며 놀라고 걱정되는 것이 있습니다.”

“뭔데요?”

“청와대나 국무총리실 등 제가 재직했던 공직도 그렇고 제가 알기론 다른 중앙정부부처도 마찬가지인데, 대전출신 고위공직자들이 극히 드문 상황입니다. 충청도 출신 전체적으로도 마찬가지지요.”

“걱정입니다.”

“시장님 같으신 분들이 나서서 인재를 키워야 합니다. 시장의 길을 다시 가시던 다른 무슨 일을 하시던 그건 제 관심이 아닙니다. 다만 시장님같은 대전의 어른이 하실 가장 중요한 일은 인재를 키우는 일이어야 합니다.”

“중요한 말이네요.”

박범계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염홍철 전 대전시장이 6월 지방선거에 나올지가 대전 정가엔 큰 관심거리다.

본인이 직접 '선수'로 뛸지 아닐지, 그 행보에 따라 선거판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어쩌면 마음 급한 언론사는 이미 염전시장을 포함해서 여론조사를 돌려봤을 것이다.
 
염홍철 전 시장은 고민이 많을 것이다. 걸어온 길이 있기에 ‘그 길에 부합하는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인가?’ 고민할 것이다. 그 고민엔 '아쉬움'이 많이 녹아 있을 것이다. 

그는 어쩌면, '대전의 JP' 나아가 '충청정치의 대부'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적잖은 대전 사람들 또한 그런 기대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물러섰다. 4년 전 갑작스런 대전시장 선거 불출마선언으로 시민들을 어리둥절케 하며 스스로 물러났다. 

그는 애초부터 2018 무술년을 준비하며 기다려온 지 모르겠다. 그는 지역신문에 매일 연재 칼럼을 쓴다. SNS로 돌려보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나도 자주 읽으며, '그는 무엇을 향해 글을 쓰는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의 글에 녹은 심중이, 인문학이 죽어가는 이 시대에 그저 독자와 세상을 향한 인문학 중흥 대부로서의 충고인지, 향후 시장이 되었을 때의 시정에 대한 그림이자 이의 구현을 위한 예고인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어쨌든 글의 많은 부분이 실제 이루어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그가 이젠, 그가 꿈꾸는 세상을 글로서만이 아니라 중앙이건, 지방이건 어느 위치에 서서 직접 이를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특히나 젊은 인재 육성을 위한 대전의 어른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나의 기대를 어떤 식으로든 답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는 권선택 전 시장이 재판에 묶인 동안, 늘 보궐선거 후보였다. 어떤 이들은 “권시장이 중도낙마 한다면 잔여 임기를 맡아 시정을 안정시키기엔 적합한 지도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의 정치적 비중은 대전지역 내에서 높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펜을 움직였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이젠 자신의 생각에 대해 입을 열 때가 됐다. 

대전 사람들의 기대는 컸지만, 화려한 정치적 사회적 경력 외에 그가 무엇을 남겼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쩌면 올해가 그 앞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인지 모르겠다. 출마든 다른 선택이든 그 선택과 향후의 모습이 국민에게, 대전 사람들에게 남을만한 '확실한 무언가'였으면 좋겠다.

김종필(JP) 전 총리는 올해 93세다. “다리가 아프고 말하는 것도 기운 없다"고 하면서도, 개헌문제에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설득 잘 안 하려는 모양”이라고 비판한다. 고령임에도 JP는 여전히 대한민국과 정치에 일침을 가한다. 그래서 어른이다.

강영환 정치평론가
강영환 정치평론가

그런 JP도 황혼에 서쪽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싶다고 했는데, 염 전 시장은 무엇을 할 것인지를 보여줘야 한다. 만약 시장으로의 길을 생각한다면 시장으로서 대전과 대전 시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보여줘야 한다.

대통령이든 작은 시골의 군의원이든 선출직은 자신의 힘으로 박차고 들어가야 한다. 이미 검증받은 그가 정치 초년병 같은 공약에 고민할 사람은 아닐 것이고, 꽃가마로 자신을 모셔가길 바라는 금수저 정치인도 아닐 것이다. 

여러 가지 그를 향한 비판의 눈초리가 신경은 쓰이겠지만, 염홍철 전 시장은 정치적 선택 앞에선 욕먹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된다. JP도  많은 욕을 먹었다. ‘유신의 하수인이 아니라 본류였다’고 욕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는 JP처럼, 대전의 어른이었으면 좋겠다.

펜과 함께 입을 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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